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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Oct 21. 2021

미운 사람 한 명 없이 살 수 있을까

지금보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 아버지가 충고를 한 마디 했는데 아직도 그 말이 기억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위대한 개츠비-


살면서 누군가가 싫고, 미워지려 할 때면 어김없이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상대는 나와는 다른 상황에 놓여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가정을 하게 되면, 삐죽삐죽 가시처럼 튀어 나와있던 누군가를 향한 미운 마음이 어느정도 수그러든다.


학창시절 반이 바뀔 때마다 내 신경은 온통 곤두서있었다. 1년 동안 친하게 지낼 친구들이 누가될 지, 누구와 친해지고 싶은 지, 반 분위기는 어떤지에 대해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다. 개학 후 1~2개월 동안 반 내부에서 관계 형성을 무사히 마치고, 친구관계가 안정적인 단계에 접어들면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공부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고 다이어리에 끄적였다. 그저 좋은 친구들과 함께 1년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는 게 당시 가장 큰 소망이었다. 공부는 혼자서 하는 것이라 내가 열심히 하면 그만이지만, 관계는 나만의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신이 있다면 좋은 친구를 달라고만 기도했다. 공부는 스스로 하겠다고, 그것까진 도와주지 않으셔도 된다고도.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의 엔프피(ENFP)는 '관계'를 통해 행복함을 느낀다. 반대로 말하면 관계로 인해 불행함을 느끼는 일도 잦다. 말하자면 사람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엔프피 유형의 행복과 불행이 달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누군가를 향한 미움이라는 감정이 슬금슬금 올라오려 할 때면 상대의 입장에 대해 상상해본다. 내가 가진 몇 가지의 단서들을 쫓아 상대가 왜 내게 서운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추측하고, 그 과정을 통해 미움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증발하기를 기다린다. 효과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지만 노력하는 횟수가 거듭될 수록 성공확률은 높아졌다. 지금의 나는 미워하는 사람 한 명 없이 살고 있다. 물론 눈엣가시같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겠냐만은 적어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들도 사정이 있겠거니, 그러려니,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긴다. 


굳이 내면 세계에서 미움이란 감정을 떨치기 위해 노력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날 위해서다. 타인을 미워하는 일은 내 안에 부정적인 기운을 채워 넣는다. 타인을 미워하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일이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좀먹는 일이다.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난 '미움받을 용기'와 '미워할 용기' 두 가지 모두가 결여된 사람인지도 모른다. 미움 받고 싶지도 않고 누굴 미워하기도 싫은 나약한 사람. 그런데 어쩌겠나. 그게 나인걸. 난 그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설령 상대가 나를 미워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들을 사랑하면서 (적어도 미워하진 않으면서) 사랑이 가득한 삶을 일구고 싶다. 인생에서 주어진 시간은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기에도 부족하니까. 써놓고 보니, 이 무슨 예수그리스도, 석가모니 같은 성인들이나 가능한 이야기를 늘어놓나 싶긴 하다. 그래도 뭐, 그냥 노력해 보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라며 내게 거슬리고 성가신 어떤 것들을 쿨하게 넘겨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나에게는 좋은 것만 건네는 일. 그건 내가 날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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