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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Oct 20. 2021

밖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

엔프피에게 외출이란

집순이 vs 바깥순이


사람은 크게 집순이와 바깥순이로 나눌 수 있는데, 집순이가 집에 있는 걸 더 즐기는 사람이라면 바깥순이는 기어코 밖에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MBTI로 따지자면 I와 E의 차이랄까. MBTI를 구성하는 네 가지 알파벳 중 첫번째 알파벳 I와 E는 각각 내향형과 외향형을 일컫는다. 내향형은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에 에너지를 얻고, 외향형은 밖에서 사람들과 소통함으로써 힘을 얻는다. 엔프피(ENFP)인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바깥순이다.


하루에 한 번은 꼭 밖에 나가야 힘을 얻는 사람, 아무 약속이 없더라도 홀로 카페에 가거나 산책이라도 가야하는 사람이 나다. 1년에 한 번 한국에 방문해 날 설레게 하는 일들은 집에 있다가 심심해질 때면 쪼르르 아파트 상가로 나와 커피 한 잔 픽업해 동네를 산책하는 일, 동네 미용실 또는 네일샵 직원분들과 수다떠는 일, 집에 있다 남동생과 급 집 앞 편의점에 가는 일 등으로 대개 급작스러운 '외출'인 경우가 많았다. 차 없이 생활하기 힘든 미국에서는 급 나간다고 해도 대부분의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기 마련인데, 한국에서는 걸어서 내가 가고자 하는 거의 모든 곳을 갈 수 있었기에 재미가 쏠쏠했다. 집 앞 산책만 나가도 구경할 게 천지였고, 굳이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바깥 공기를 쐬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됐다.


그렇다면 비교적 심심한 미국에서 바깥순이인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코시국 회사의 재택근무 방침이 나를 살렸다.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와 출근이 반반인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재택근무 날 누릴 수 있는 소소한 바깥 활동이 나의 정신건강을 안전지대로 옮겨놨다. 아무리 바깥순이라 할 지라도 잦은 출근은 싫은 법이다. (출근은 내가 원하대로 시간을 쓸 수 없기에)



산책


현재 난 일주일에 세 번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재택근무를 하는 날의 아침은 평화롭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나 홀로 공원을 향하는 산책길은 사뭇 비장한 표현인 듯 하지만 내겐 해방의 순간과도 같다. 일과 육아로부터 벗어나 고요하게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시간.


내가 거주하는 곳은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로 사시사철 여름 날씨다. 선천적으로 추운 날씨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내게 고온건조한 여름 날씨는 덥고 짜증나기 보다는 따스하고 에너지를 전해주는 쪽에 가깝다. 산책길에서 마주하는 자연, 공기, 햇살은 ‘살아있다’는 감정을 가장 강렬하게 체감하게 해준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에게 ‘좋은 하루 보내, 사랑해’ 하고 손을 흔들며 뒤돌아서 씩 웃는 엄마의 숨겨진 얼굴을 아이는 전혀 모르겠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공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아이와 잠시 이별하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아이가 안다면 배신감을 느낄테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무려 1년 반 동안 집에 갇혀 있던 나로서는 백신 접종 후 찾아온 지금과 같은 미완성의 자유가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집에서는 왠지 모르게 몸이 아프고, 피로한 반면 외출만 하면 신바람이 난다. 사람을 만나도 좋고 만나지 못해도 좋다. 그저 바깥공기를 쐬는 일만으로도 힘이 나니까. 팟캐스트를 들으며 공원을 몇 바퀴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앞뒤로 사람이 없을 때는 마스크도 벗고 걷는다. 맑은 하늘 한 번 쳐다보고, 길가에 꽃과 나무를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이런게 행복이 아닐까...하며 씨익...)


홀로 카페가서 일하기


노트북과 읽을 책 한 권 정도를 챙겨 동네 카페를 향한다. 이상하게 카페에서 일하고 싶은 날이 있다. 이사 후 나만의 서재 공간을 마련해뒀기에 집에서도 일의 능률이 좋은 편이지만, 사람 구경을 하고 바깥 공기를 더 쐬야겠다 싶은 날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으며 기분전환을 한 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는데, 커피를 마시며 테라스에 있기 때문인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 보다는 내 시간을 자유로이 보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된다. 


코로나19 사태 전에 매일 출퇴근을 했을 때, 카페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의 삶이 얼마나 부럽던지. 같은 일을 하더라도 회사에서 8시간 이상 앉아있는 건 너무나 힘들다. 불편한 옷을 입고, 꼿꼿한 자세로 앉아 동료들과 서로의 감시자 역할을 하며 사무실에 박혀 있어야 했던 삶, 되돌아보니 그 시절엔 어떻게 견뎠나싶다.


역시 내가 기자란 직업을 좋아하는 큰 이유는 취재를 나간다는 사실이었다.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있는 건 엔프피에게 곤욕스럽기 그지 없으니까. 지금은 재택근무를 하며 취재를 위해 종종 나가기도 하니까, 최상의 근무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동네 친구와 브런치


엔프피는 갑작스러운 만남도 환영이다. 내향형 사람들은 예고없이 '나올 수 있어'라는 친구의 연락을 받으면 기가 빨린다고들 하는데, 난 정반대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설레기까지 한다. 엔프피 관련 댓글에는 '갑작스러운 만남, 충동구매, 새 친구 소개, 각종 이상한 짓 등을 제안했을 때 가장 먼저 눈 반짝이며 튀어나오는 MBTI 1위'라는 문장이 있었다. 고개를 절로 끄덕일 수 밖에 없던 문장. 엔프피는 계획하지 않은 새로운 모든 순간들을 사랑하는 재주가 있다.


최근에도 동네에서 친해지게 된 학부모가 '커피 마시러 나올래?'라는 카톡을 보내왔기에, 다른 일을 하다 말고 바로 뛰쳐나갔다. 혼자서도 외출하는 마당에 타인과의 급만남은 반가울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은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해'라며 미안한 내색을 보였지만, '아냐! 난 엔프피라구. 엔프피는 이런 만남 환영이야'라며 응답했다. 그 날 난 동네 친구와 브런치를 먹으며 에너지를 잔뜩 충전하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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