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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Nov 29. 2020

미국 명절에도 갈비찜을 먹어요

명절 음식 = 갈비찜


추수감사절: 전통적인 북아메리카의 휴일로 미국의 경우 11월 넷째 목요일에 기념한다. 추수감사절에 미국인들은 한국의 추석과 같이 가족들끼리 모여 파티를 열어 칠면조를 비롯한 여러 음식들을 만들어 먹고 감사의 덕담을 나눈다. (출처: 위키백과)



땡스기빙데이인데, 갈비찜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지난 목요일은 추수감사절이었다. 미국의 대명절. 한국인에겐 흔히 추석과 같은 개념으로 여겨지는 명절이다. 미국인은 아니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주민으로서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 설레는 마음이 된다. 아무래도 긴 연휴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듯 하다.



남편은 이 시기만 되면 ‘갈비찜’ 타령을 한다. 추수감사절에는 터키 음식을 먹는 게 보통인데, 터키는 아무래도 우리 입에 안 맞으니, 갈비찜을 먹자는 논리다. 우스운 점은 한국의 추석 연휴에도 미국에서 갈비찜을 먹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가족은 한국 추석, 미국의 추수감사절 두 날 모두 갈비찜을 먹으며 우리만의 명절을 즐기고 있는 것.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와 남편은 명절 음식 = 갈비찜 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나와 상관없는 미국 명절이라지만 평소보다는 더 잘 차려 먹고 싶은 마음이 들긴 했다. 아이들에게도 특별한 하루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기도 했고. 남편의 갈비찜 먹자는 제안을 큰 고민없이 바로 수락한 후 마켓을 향했다.



배와 양파를 갈아 갈비를 재우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던 우리집은 아빠가 둘째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명절과 각종 제사 또한 엄마 몫이었다. 엄마는 명절 때만 되면 갈비를 잔뜩 사서 명절 당일 맛있는 갈비찜을 상 위에 푸짐하게 올려주곤 했다. 어른들과 아이들의 상이 분리되어 있던 명절의 어느 풍경. 아이들 상에 올려진 갈비찜을 사촌들과 빠른 속도로 먹어 치우며, '한 그릇 더!'를 외치던 나.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 버렸다.



어느새 나이가 들어 나만의 가정을 이룬 난 비행기로도 10시간이나 더 떨어진 미국에 거주하며 미국의 명절에 갈비찜을 재고 있다니. 내가 처한 상황의 이질감에 묘한 슬픔을 느꼈다. 과거의 추억들은 언제나 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데, 현재의 내가 자꾸 과거의 나로부터 멀어지고 있어 이따금씩 서글퍼지곤 한다. 생의 유한함을 점차 알아 버려서. 당시 풍경에 있던 누군가의 빈 자리를 아는 나이가 되어 버려서.



서글픈 감정도 잠시, 남편은 배가 고프다고 언제 갈비찜이 되냐며 보채기 시작한다. 갈비는 충분히 재워야 맛있는데...당장 갈비찜을 먹고 싶다는 남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1차 갈비찜을 만들었고 보기 좋게 대실패했다. 갈비찜은 하도 자주 만들어서 자신이 있는 요리에 속하는데, 재워지지 않은 갈비로 마술을 부리지는 못했다. 갈비찜만큼이나 ‘기다림의 미학’을 몸소 보여주는 요리도 또 없는 듯 하다.



다음 날 2차 갈비찜 만들기에 돌입했다. 충분히 재워진 갈비에 양념을 부어 넣고 1시간 푹 끓이니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때깔부터 어제의 갈비찜과는 달랐다. 남편은 부엌을 가득 메운 갈비찜 냄새에 입맛을 다시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아직 완성되려면 30분이나 남았다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갈비찜은 남편의 소울푸드이기도 하다. 명절을 떠나 그냥 아무런 날에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뭐야’ 물으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갈비찜이라고 답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남편의 장모님이기도 한 우리 엄마는 남편이 우리 집에 오는 날이면 갈비찜을 해야했다. 사위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먹이고 싶은 장모의 마음으로. 우리 커플은 결혼식이 끝난 당일에도 신혼여행에 가기 전 우리 집에 잠시 들려 갈비찜으로 배를 채웠으니, 남편의 갈비찜 사랑은 말해 무엇 하나 싶다.



갈비찜으로 배를 두둑이 채운 땡스기빙데이 연휴 기간의 어느 점심.

미래의 언젠가 이날의 갈비찜을 떠올리며 남편과 입맛을 다시며 키득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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