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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Dec 16. 2020

랜선으로 함께 읽는 책

랜선라이프 예찬-2) 독서

고백하자면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며 살아온 지난 약 10년이라는 기간동안 원서로 된 책을 '내가 원해서' 읽은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과제, 공부, 일 등을 위해 강제적으로 읽어야 하는 글만 읽었을 뿐, 여가시간을 즐기기 위해 원서를 집어든 적은 없었다.


아 물론 시도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몇 권의 책을 사보기도 했고, 며칠간 소설을 읽어보기는 했지만 늘 끝까지 완독하지는 못했다.


뭐랄까, 원서로 된 글을 읽는 건 나에게 휴식이 아닌 '일'처럼 여겨지곤 해서 굳이 여가시간에까지 모국어가 아닌 글로 이뤄진 책을 읽어야 하나, 싶었다. 모국어로 된 책을 읽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아늑함, 그리고 그 맛깔나는 문장들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 굳이 한국어로 된 책만 찾아 읽었다. 한국으로부터 배송받아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감수하며.



그런 내가 지난 11월 한 달간 세권의 원서 책을 완독했다. 스스로 원해서 읽은 원서책을 완독하는 일은 처음이었는데, 그에 더해 한 권도 아닌 무려 세 권의 책을 다 읽은 것이다.



원서책 세 권 완독이 가능했던 건 모두 '원서 함께읽기 온라인 모임' 덕분이었다.




원서 함께읽기 모임은 내가 즐겨 시청하는 유튜버 '돌돌콩'님의 주최로 진행됐다. 10월 말쯤이던가, '돌돌콩'님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원서를 함께 읽는 온라인 모임 참여자를 구하고 계신다는 글을 게시했고, 난 그 글을 읽자 마자 '이거다!' 싶었다.


마침 다이어트도 친구들과 함께 랜선으로 진행하다 보니 도움이 되었던 차여서, 원서 모임 읽기 또한 랜선을 통해 타인과 함께 한다면 시너지가 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불이나케 참여를 원한다는 이메일을 보냈고, 그렇게 11월 동안 원서 '2챕터 읽기 챌린지' 모임의 일원이 됐다.



12월 진행되고 있는 '투챕터 챌린지' 원서읽기 모임 사이트 캡처

하루 원서 2챕터를 읽고 인증사진과 글을 네이버 밴드로 구성된 온라인 사이트에 게시하는게 미션이었다.


매일 네이버 밴드 모임 사이트에서는 매일 '인증글 쓰기' 버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었다.


원서읽기 모임답게 타지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중국, 호주, 유럽 등지 등 여러 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이 원서 읽기 온라인 모임에 참여했다. 모두들 나처럼 원서읽기를 일상에 습관처럼 습득하고 싶은 마음이 큰 듯 했다. 우리는 날마다 본인이 읽은 책의 내용 또는 그날의 사진 등을 담은 인증글을 게시하며 서로의 약속을 함께 지켜나갔다.




일과 육아에 치인 날이면 원서고 뭐고, 책을 전혀 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공동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어떤 모임에 속해 있다는 건 나에게 엄청난 강박감을 느끼게 했다.


책을 읽기 싫은 날이면 '읽어야돼...이렇게 챌린지에 실패할 수는 없어. 모두가 열심히 하고 있는 걸. 나도 최선을 다하자'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따라다니며 내 옷자락을 물고 늘어졌다. 에이, 이렇게 찝찝한 마음에 시달릴 바에는 그냥 읽어버리자라는 생각에 결국 책을 손에 쥐었다.


사람에게 습관이란 건 참 무서운 일이다. 매일 원서책을 적어도 20~30 페이지씩 읽다보니 점차 원서책을 읽는 일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택한 책이 로맨스 소설류이기도 했기 때문에 점차 뒷내용이 궁금해져 2챕터 보다 더 많은 양을 읽은 날도 있었다. 줄거리에 빠져들고, 주인공들의 서사에 집중하다 보니 책이 영어로 쓰였든, 한국어로 쓰였든 그 문제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한국어로 된 책을 읽듯이 맛깔나는 문장을 음미하는 통쾌함은 없었지만, 그래도 과거처럼 원서에 대한 거부감은 줄어든 게 확실했다.




원서 모임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은 점이 있다면 미국에서 서점에 가는 일이 한국에서 만큼이나 큰 재미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내 취미는 서점가기.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시간을 내서 서점에 가곤 하는데, 그건 내게 일종의 취미생활이었다. 서점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 평화,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작가들이 내게 들려주고자 출판된 책들의 향연을 바라보고 있을 때 느끼는 설렘...서점은 내게 놀이공원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미국서점에 가서는 그 설렘과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물론 약간의 즐거움이 있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느끼던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하지만 원서모임을 시작한 후, 미국 서점에 가는 일은 한국에서 서점에 가는 일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재미나지기 시작했다. 다음 달 원서모임에서 읽고싶은 책을 한 권, 두 권씩 미리 사모으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다는 기본 마음에 원서모임에 함께 참여하는 회원들과 재미난 책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까지 더해져 책을 구매하는 재미가 몇 배는 커졌다.



집 앞 '반스앤노블' 서점을 갈 때 마다 무슨 책을 구매할까, 설레는 마음이 드는 요즘이 참 좋다.





랜선 독서모임의 장점

1) 꾸준히 습관처럼 책을 읽게 된다

2) 타인과 공유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읽게 된다

3) 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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