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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Nov 04. 2021

직업공개가 가장 재미있는 이유

직업은 그 사람의 인생을 보여준다

남편과 연애시절부터 <짝> 프로그램 애청자였다. 짝이 방영하는 수요일 저녁이면 맥주 한 잔하며 당시는 남자친구였던 남편과 <짝>을 시청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연애하는 사이에 연애 프로그램을 같이 보는 일은 상대의 연애 성향, 이상형 등을 간접적으로 알아보는 데 유용하다. '만약 저곳이 출연했더라면 출연자 중 누구를 택했을 거냐'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며, 상대가 이성을 볼 때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탐색할 수 있다. 


안타까운 사건이 촬영 중 발생하는 바람에 <짝> 프로그램이 폐지됐을 때, 남편과 나는 아쉬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우리의 수요 데이트 코스가 소실돼 버린 것이다. 이후 숱한 연애 프로그램들이 방영했지만, <짝>만큼이나 맛깔나는 연애 프로그램을 찾기는 어려웠다. <짝>은 연예인이 꿈인 사람들이 TV 출연을 하기 위해 나오는 곳이 아니라, 진짜 '짝'을 찾기 위한 일반인들이 출연한 곳이었으니까. 지나가다 볼 법한 일반 사람들의 연애 이야기는 갓 담은 김치를 먹을 때 만큼이나 신선했고, 묵은지 만큼이나 익어 있었다. 


그러다 <짝> PD님이 10년 만에 들고 온 프로그램 <나는 솔로>. 기존 <짝> 프로그램과 거의 흡사한 포맷을 가지고 있다. 짝 애청자들은 나와 남편만큼이나 신이났다. 강산이 변할 만큼의 긴 기간 동안 <짝> 프로그램을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피디님이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시다니, 이토록 감사한 일이! 이제는 부부가 되어 버린 나와 남편은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나는 솔로>를 함께 시청하기만 손꼽아 기다린다. 일주일 중 우리 부부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애 프로그램에서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직업공개 시간이다. 직업공개 전과 후로 출연자에 대한 생각이 180도 변하기도 한다. 왜일까. 


물론 세속적인 시각으로 직업공개 시간에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눈길이 한 번 더 가는 건 사실이다. '오, 생각보다 괜찮은데!'라며 직업 공개 전보다 호감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잠시뿐이지, 단지 좋은 학벌과 직업을 가졌다는 사실이 별로였던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까지 뒤집을 수는 없다. 


다만 직업 공개 시간이 가장 기다려지는 이유는 출연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단서를 주기 때문이다. 고작 몇 시간 편집된 영상 안에 담긴 출연자의 일부 모습으로 그들을 평가하는데는 한계가 따른다. 하지만 그들의 직업을 통해 그들의 진짜 삶을 조금이나마 엿보고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직업은 단순히 '매일 하는 일'으로만 정의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적어도 하루 8시간 이상을 일을 하며 살아간다. 워라밸을 추구하며 사는게 요즘 시대의 추세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워라밸을 가진 사람이라 할 지라도 개인시간이 하루에 차지하는 비중은 일하는 시간보다 현저하게 작을 수 밖에 없다. 


월, 화, 수, 목, 금. 평일의 대부분의 시간은 일로 채워지게 되는데, 때문에 '직업'에는 한 사람의 꿈, 과거, 현재, 미래, 희망, 절망 등 삶의 모든 희노애락이 담겨있다. 어떤 직업을 가지기까지 그 사람이 과거에 해왔던 노력들과 그 사람의 내면에 채워진 꿈과 희망, 삶의 가치관 등 직업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가령 어떤 사람이 경찰이라면, 나는 막연하게 생각할 것이다. 법을 준수하는 사람, 커뮤니티를 위해 일하는 사람, 바른 사람이라고. 물론 모든 경찰이 바르고, 법을 준수한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보편적으로 그럴 것이다'라는 가정은 하게 된다. 


일은 그 사람의 하루를 보여주고, 한 달을 보여주고, 1년을 보여준다. 그 사람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형성하는 요소들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직업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보고 마음껏 상상하는 일. 연애 프로그램에서 직업공개 시간이 큰 묘미로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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