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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에서 불편을 견디는 법

전기, 물, 인터넷 인프라 부족의 불편 속 발견한 삶의 여유

by 아이릿

탄자니아에 가기 전, 나는 심리적으로 지쳐 있었다. 보통 출국 전 여행 정보를 찾아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국가 정보조차 제대로 찾아보지 못했다. 아프리카 대륙은 거대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일부 국가 제외하면 사회기반시설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만 있었다.


통계로만 보아도 2025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GDP는 34,640달러, 탄자니아는 1,280달러로 약 27배 차이가 난다. 즉 교통, 통신, 전력, 수도, 위생 등 일상 생활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각오하고 왔기에, 큰 두려움 없이 탄자니아에 입국했다. 기반 시설의 차이는 통계가 아니라 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1년을 지내 본 결과, 적어도 다르에스살람은 '불편하지만, 못 살 수준은 아닌 곳'이다. 전기가 종종 끊기지만 다레살람 내 한국인이 거주하는 건물에는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정전이 나더라도 수 분 내 다시 복구된다. 수질은 다레살람보다 킬리만자로 지역이 더 좋은 듯하다. 샤워기 필터가 하루 만에 갈색으로 변하고, 입에 넣는 모든 것은 정수기 물을 사용해야 하지만 수질로 인한 심각한 피부병을 겪진 않았다. 인터넷은 느리지만 업무 속도 저하를 야기하는 것 빼곤 큰 문제 없다. 간혹 나처럼 이상한 집에 들어가면 와이파이 문제로 1년 내내 디지털 디톡스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되지만 오히려 뇌 건강 지켜 좋았다.


<언제 끊길 지 모르는 전기>


다행히 내가 근무하는 회사 건물에는 전기발전기가 있어서 정전이 일어나도 금방 복구된다. 주말이나 휴일같이 관리자가 사무실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면 절대 복구되지 않는다. 문제는 나는 주말이나 휴일에도 회사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점이다.


탄자니아 근무지에 도착하여 선임에게 인수인계를 받았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사무소의 모든 컴퓨터에는 UPS가 연결되어 있어요. 몇 개는 새로 구매했는데 정전이 잦아서 새로 구매해야할 수 있어요. 예산 관리 시 시 참고하세요."

"UPS가 뭐예요?"

"정전 시 컴퓨터가 꺼지지 않도록 해주는 장치예요"

후에 찾아보니 무정전 전원장치(Uninterruptible Power Supply, UPS)로 정전 시 연결 된 기기에 일정 시간 전력을 공급해주는 장치였다. 당시엔 탄자니아의 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단순히 "네, 알겠습니다!"하고 넘겼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내 일상이 될 현실을 마주했다.


어느 날 사무실 전체가 암흑으로 변했지만, UPS 덕분에 급히ctrl+s를 눌러 파일을 저장했다. 발전기를 갖춘 건물이라 10분 정도 지나니 전기가 돌아왔다.


몇 개월이 지나니 이 불규칙하면서 비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정전에 익숙해졌다. 다만, 30분, 1시간, 3시간 이상 전기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실 분들은 알겠지만 나는 탄자니아에서 처음 알았다. UPS도 전기가 30분 이상 복구되지 않으면 더는 버티지 못한다. 그렇게 컴퓨터까지 꺼지는 정전이 발생하면 업무 종료 후 귀가.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정전 후 UPS는 쉼없이 소리를 내고, 불빛을 반짝이며 일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하필 사무소에 설치된 UPS는 문제가 생기면 삐---- 삐---- 소리를 낸다. 몇 시간 동안 이 소리를 들으면 여기가 사무실인지, 병원인지 분간이 안 된다. 그 삐----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업무를 이어간다. 일부 UPS는 극한에 다다르면 더 긴 삐------이 소리를 내며 UPS 생을 마감한다. 퇴근 시간이 되도록 전기는 돌아오지 않아 그대로 업무를 마무리 한다. 전기는 끊겨도, 일은 끊을 수 없는 탄자니아 근무 일상.


숙소에서도 정전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샤워 도중, 전자레인지에 밥을 돌릴 때든. 처음에는 놀랐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는 베란다로 나가 암흑인 된 도시를 바라보았다. 요란하게 작동하는 발전기 소리가 건물을 울리면 바깥 풍경이 변하는 것을 본다.


<이번에는 물>


나는 한국에서도 수자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물을 아끼는 편이었다. 한 번은 배관 공사한다며 10시간 이상 물 사용이 제한된 적이 있었다. 그 때야 깨달았다. 물이 없다면 지금의 깔끔한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는 잠깐의 불편이었고, 복구 예상 시간도 안내 받았으니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탄자니아에선 아니다. 심각한 위생 문제는 없었지만 물과 관련된 불편이 꽤 잦았다. 사무실 내 화장실과 탕비실에 물이 나오지 않아 40일 넘게 불편을 겪은 적도 있다. 이는 건물 관리 문제였지만, 다른 지역 이보다 더 열악하다. 학교뿐 아니라 병원조차 수도가 없는 곳이 있다. 한국에서는 흔한 수세식 화장실조차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곳이 대다수이며, 보통은 구덩이를 파서 사용한다.


평소에는 19L 짜리 물을 주문하곤 한다. 요리할 때, 과일 또는 채소를 씻을 때, 양치 후 이를 헹굴 때나 세수를 마무리를 할 때 항상 생수를 사용한다. 비록 탄자니아에서 근무한 뒤 30대가 된 후로는 나지 않던 여드름이 나고 피부가 점점 안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심각한 피부 질환으로 고생을 한 적은 없다.


출국을 몇 주 앞둔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 '물을 아껴 써달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다레살람에 물을 공급하는 공기관인 DAWASA(다와사, Dar es Salaam Water and Sewerage Authority)에서 단수 공문을 내린 것이다. 결국 건물 자체적으로 외부에서 물을 구매해서 각 가정에 공급하고 있으니 아껴쓰라는 내용이었다. 평소에도 물에서 좋은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이 시기엔 비염 환자인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이상한 냄새가 났다. 하루는 누렇게 된 물을 받아, 건물 관리직원에게 문의하니 "여기는 문제 없는 거예요. 제 집은 다레살람 외곽인데 거긴 아예 물도 안 나와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야기를 나눌 수록 한국에서 온 이방인이 얼마나 현실을 모르는지 깨달았다.


실제로 다레살람 외 타 주(州)나 시골은 수로 연결이 잘 되어 있지 않아 몇 시간씩 물이 끊기는 것은 물론이고 깨끗한 물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일상이다. 대신 빗물, 우물물, 강물을 생활용수로 사용한다. 흙탕물에 손을 씻기도 하고, 같은 물에 과일이나 채소를 씻기도 한다. 이들에게 흙탕물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그저 귀한 물일 뿐이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 더러운 물을 쓰는지 의문을 가졌지만, 곧 각자의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지인의 삶을 조금은 이해했지만, 직원과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인근 슈퍼로 향했다. 그리고 생수를 잔뜩 구매하여 배달 요청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수십 개의 생수병을 받고 행복해진 나는 '당연했던 물'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탄자니아에서의 물 문제는 불편함을 넘어 현지인의 삶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끝판왕은 인터넷(와이파이)>


회사에서 인터넷이 작동되지 않은 날은 손으로 세어보자. 손가락 발가락을 다 사용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전기 공급과 인터넷 속도 저하가 일상인 곳, 바로 탄자니아. 다레살람 정도면 괜찮다고들 하는데 업무 중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인터넷 속도만 빠르면 이 업무 10분 안에 끝낼 수 있는데...'


다행히 내가 사는 곳만 유독 문제가 많았을 뿐, 다른 회사 동료의 인터넷 속도는 괜찮았다. 하지만 나는 1년 내내 인터넷으로 고생하니 모두가 이런 말을 했다. "왜 이런 일은 아이릿에게만 일어나는 걸까."


모든 것은 바로 숙소의 인터넷 문제 떄문이다. 인터넷 기사라고 속인 현지인한테 2-3개월치 와이파이 이용 요금 약 21만 실링(한화 약 11만 원)을 사기당했다. 업무 적응하기도 벅차 2개월 이상 참다가 관리인에게 이야기했다. 자기 건물 소속이 아닌 사람한테 돈을 준 내 탓도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사기꾼이 다른 직원들과 리셉션에서 돈을 요청하고 받았는데, 직원들은 공범이란 말인가. 적응하기도 버거운 초반,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편히 연락 못했는데, 현지인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빠르게 쌓였다.


다레살람에는 고 파이버(Go Fiber), 주쿠(Zuku), 리퀴드(Liquid), 보다콤(Vodacom) 등 여러 인터넷 공급 업체가 있다. 처음에는 화웨이(사기꾼이 화웨이 소속 직원이었다)를 썼지만, 업체를 바꾸고 싶었다. 건물 내 설치할 수 있는 업체가 지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새로운 회선 설치하려면 망 설치비를 추가로 지불해야 했다. 결국 건물 지정 업체에 연락하여 설치 기사를 불렀다. 방문 일자를 잡는 데만 몇 주가 걸렸다. 결국 우리나라 4대 국경일에 맞춰서 설치기사를 불렀는데, 10시에 오기로 한 직원은 13시가 넘어서 왔으며 무려 여섯 명이나 왔다. 1~2 시간 넘게 작업을 했지만 인터넷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 와이파이 설치를 포기했고, 계획에도 없던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시작되었다.


거의 반 년 이상 심카드를 새로 구매하여 충전하며 지냈다. 탄자니아의 인터넷 비용은 생각보다 비쌌고, 내가 데이터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보다콤 기준 약 25기가 요금제 25,000원, 한 달 사용량이 50기가를 넘으니 월 5만원 이상을 지불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속도는 보장되지 않았다. 인터넷은 둘째치고 문자나 전화까지 불가능한 일이 낮았다. 결국 또 다른 방법을 찾았다.


탄자니아에서는 현지인 신분이 아니면 와이파이 라우터를 구매하기 어렵다. 현지인 직원의 도움을 받아 보다콤과 에어텔 중 고민하다가 조금 더 저렴한 에어텔 라우터를 구입했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였다. 내가 사는 곳은 전파가 약해 정말 느리게 작동했다. 290Kbps는 양반이었고 그보다 더 느린 날도 있었다. 돈은 돈대로 쓰고, 인터넷 속도는 바닥을 쳤다. 왜 내가 사는 곳만 이랬는지 떠나는 날까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현지인 동료들과 인터넷 문제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현지인 동료들의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집에 와이파이 기계? 사치지!"

"업무시간이 아니면 데이터는 항상 꺼둬요. 날씨가 궂어 재택근무하면 연락 받기 어려워요."

"재택근무 중엔 인터넷도 개인 노트북도 없어요. 그냥 쉬어야죠"


나의 삶의 질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인터넷 속도 문제는 와이파이조차 없는 내 동료들에게 배부른 불평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 후 깨달았다. 이 사람들은 인터넷 세상 보다 개개인과의 관계에 더 집중한다는 것을. 강제 디지털 디톡스를 하며 분노했지만, 덕분에 기다림과 여유를 배웠다. 적응하고,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반년 이상 걸렸지만 뭐라도 깨달았으니 된 거 아닐까.


참고자료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NY.GDP.MKTP.CD


인스타 구경하기: https://www.instagram.com/i_kiffe/

블로그 구경하기: https://blog.naver.com/kim_eyo/223753560090(탄자니아 와이파이 기계 구매 및 설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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