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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Dec 06. 2021

06.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음식 먹기

갬성 말고 정성

일상 행복 찾기  

일상 행복 찾기는 자주 우울해하던 아이릿이 찾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씁니다.  

#06.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음식 먹기


  지난번에 이어서 일상의 행복을 음식에서 찾는 이야기. 나는 먹는 것에 있어서는 다른 것보다 조금 더 까다로운 편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보이는 갬성(나는 약간 비꼬는 말로 사용함) 카페나 식당 방문은 안 하려고 하는 편이다(친구가 가보고 싶다고 하면 못 이기는 척 끌려가서 체험은 하는 편이다). 혹자는 색다른 인테리어나 조금 더 특별한 디저트나 음료를 맛보는 것도 새로운 문화를 즐기는 하나의 행위라고 말한다. 변해가는 카페나 식당 문화를 새롭게 경험해보는 것 역시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나는 못 즐기겠다. 오래 앉아있기도 불편한 데다가 친절도 찾아보기 힘들고 음료의 맛도 평균 이하인 곳에서 돈을 쓰고 시간을 보낼 만큼 성격이 좋지 못하다. 그 값을 지불할 만큼의 여력도 없거니와 맛없는 걸로 배를 채우며 세끼 중 한 끼를 날리기는 더더욱 싫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디저트를 더 좋아했다. 저기압일 때는 고기 앞으로 가라는 말과 달리 나는 저기압일 때 디저트 앞으로 갔다. 전에는 케이크 가게를 추천받거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신상 카페를 찾아갔다. 들어가기 전부터 화려함이 느껴지거나 어울리는 색들로 깔끔하게 꾸며진 매장에는 귀여운 쿠키, 케이크가 있다. 디저트는 주로 전시실의 미술품처럼 냉장 쇼케이스가 아닌 밖에 전시되어 있어 열심히 관람을 한다. 내 마음대로 몇 개 고르고 사장님의 추천 디저트를 추가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버스를 타고 가서 사람들을 뚫고 구매한 그 이쁜 디저트를 한 입 먹으면... 그렇게 맛이 없을 수도 없다.

  

  새로운 카페를 뚫지 않고 가던 카페만 가다가 우연히 새로운 카페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말 적당히 달고, 부드러운 제누아즈에 고소한 크림을 맛보았다. 사장님은 동물성 크림만을 사용한다고 했다. 그때서야 크림 종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동물성 크림만 쓴다는 카페를 찾아다녔고 그렇게 수 십 개의 카페를 돌고 난 뒤에야 좋은 버터나 크림이 무엇인지와 정성이 들어간 맛이 어떤지 알게 되었다(사장님이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안 하고는 맛과 크게 관계가 없다는 것도). 큰 기공 때문에 폭신폭신하기만 한 제누아즈(무게감이 전혀 없다)에 혀 위에서 녹지 않는 형형 색색의 크림을 덮은 식물성 크림 케이크. 달기만 하고(또는 시큼하기만) 부드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레몬 마들렌. 식물성 크림을 채워 넣어 느끼하기만 한 슈크림... 이젠 대강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다음은 양식. 파스타에 빠져 친구들과 점심이나 저녁을 꼭 파스타로 정했다. 언젠가는 친구의 추천으로 평점이 꽤 괜찮은 양식집에 갔다. 디저트를 알아갈 때 배웠듯 "내가 맛보지 않고 맛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 먹어보고 맛없다고 하자!"는 마음으로 따라갔다.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당시의 핫플에는 꼭 있던 네온사인 전광판이 빛나고 있었다. 네가 제일 이뻐라고 쓰여있었던가... 직원은 추천 메뉴 몇 개와 잘 팔리는 음식을 안내해주고 사라졌다. 우리는 인기가 좋다는 피자, 파스타 그리고 리조또를 하나씩 시켰다. 마트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 또르띠야에 시판 토마토소스를 발라 치즈와 베이컨 등을 올려놓고 구운 걸 피자라고 내줬다. 바삭함은 있다만 쫀득함이 없고 새로운 향도 없는 피자. 대체 이게 왜 12000원이나 하는 건지 의아했다. 그 뒤로 나온 파스타는 느끼하기만 했고 리조또는 밍밍했다. 나와 친구는 잔뜩 실망해서 대충 먹고 나왔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식당은 인기가 좋았다(지금은 폐업). 디저트 때와 마찬가지로 수십 개의 양식집을 가본 뒤 내 입맛을 찾아가게 되었다.


  언젠가 가족의 기념일에 조금 값이 있는 양식집을 갔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자부심이 넘치는 주방장이 있는 곳 같았다. 깔끔하게 꾸며진 매장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직원은 수제로 뽑은 파스타 면과 수제 소스 그리고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요리들을 하나씩 소개해주었다. 메뉴판에서도 어떤 거짓이나 과장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가 무엇인지 자세히 쓰여있을 뿐이었다. 최고라는 단어는 자기네 음식이 아닌 제철 재료 앞에만 붙였던 것 같다. 지금 먹으면 최고로 좋다 했던가. 파스타, 샐러드, 스테이크를 골고루 시켰다. 음식을 내줌과 동시에 재료를 어떻게 조리했는지 하나씩 설명을 해주는데, 맛을 보면 왜 구태여 설명해줬는지 알 수 있다. 알고 먹으니 더 맛있다. 제철 식재료의 신선함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색다른 양념 맛에 잠들어 있던 수많은 미뢰들이 반응을 했다. 그 요리를 하는 주방장의 정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뒤로는 그런 곳을 찾아간다.


  방문하는 카페와 식당이 늘어갈수록 내 입맛을 알게 되는 것과 함께 '정성스럽게 조리된 음식' 여부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값이 저렴해도 정성이 담긴 곳도 있지만 아무래도 식당이나 카페는 이익집단이기 때문에 정성이 담기면 값도 른다. 문제는 정성과 값이 반비례로 움직이는 곳이다. 소위 핫한 곳에 생기는 곳이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들은 주로 내 또래인데 그곳에 가면 그들의 태도나 요리가 마치 나를 비롯한 요즘 세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꺼려진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기를 원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난 능력도 없어 요행을 바라면 내가 원하는 성공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더 피하게 된다. 래서 최선을 다하여 상대방에게 '최고'의 요리를 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는다. 그런 곳은 계속해서 가고 싶다. 그들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으면 맛이 좋아 기분도 좋아지고, 운 좋게 이야기까지 나누면 더 나은 나를 위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울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정성이 담긴 음식이 좋다. 그런 음식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더 좋고.


  요즘의 감성 식당은 손님과의 약속도 쉬이 깨버리는 듯하다. 내가 맞춘 케이크를 찾으러 가는 날 갑자기 일이 생겨 다른 곳에 맡겼다고 해서 알겠다 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친구들이랑 놀러 간 거라던가. 쉬는 날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갔는데 사장님의 분노조절장애로 인해 쉰다거나 놀고 싶어서 쉰다거나 장난스러운 문구를 보면 안 그래도 헛걸음인데 더 헛걸음을 한 것 같다. 마치 그들에겐 음식을 팔고 그러는 것이 장난인 듯한. 자신의 일에 누구보다 진심인 주방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문구를 두 번 보면... 유쾌하진 않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노포를 운영하는 어르신들이 위대해 보인다. 비록 위생적인 부분에서는 조금(가끔은 많이) 아쉽지만 1년 365일 새벽부터 장을 봐서 반찬을 하고 육수를 내고 저렴한 값에 음식을 파는 분들. 티끌 모아 태산이라지만 하루 24시간의 절반 이상을 노동에 쓰시는 분들. 노동 강도 대비 적은 수익을 보면서도 열심히 하려고 하는 분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성실함이 눈에 보인다. 나의 무엇이 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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