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릿 Jan 02. 2022

07. 친구들에게 편지 쓰기

말보다 오래 남는 기록

@i_kiffe

아이릿의 일상 행복 찾기

(일상 행복 찾기는 자주 우울함을 느끼던 아이릿이 찾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씁니다.)

#07. 친구들에게 편지 쓰기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곤 했다. 어버이날이나 부모님의 생신날에 맞춰서 편지를 썼다. 친구들의 생일에도 편지는 빼먹지 않았다. '생일 축하해.'라고 말하면서 '생일 축하해. 너의 친구 아이릿이'라고 한 줄 쓴 편지를 주는 게 취미였다. 그리고 나 역시 선물만 받는 것보다는 편지도 같이 받는 걸 좋아한다. 같은 문장이라도 입 밖으로 나가 사라지는 말과 달리 편지는 버려지기 전까지 기록으로 남아있으니까. 편지를 오랫동안 간직한다면 더 오래 내 곁에 남아있을 말들. 힘들 때 편지를 꺼내 친구가 써 준 힘나는 문장을 곱씹으며 다시 일어서 나아갈 힘을 얻기도 하고, 방 정리를 하다 우연히 찾은 편지가 뻘하게 웃겨서 소리 내 웃기도 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똑같은 상황이라면 반성을 하기도... 그래서 편지가 좋다. 꺼내서 읽는 순간 그때의 감정이 밀려와서. 친구들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난 가끔 말로 하기 힘들 말을 편지로 대신하기도 한다.


  때마침 연말이 되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과는 종종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타지에 사는 친구들에게는 여행지에서 보낸 엽서 정도가 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랜만에 친구들한테 연락을 했다. "주소 좀 알려줘!!!!". (요즘 누가 주소 물어보나 싶겠지만 물어본다면 편지(또는 선물)를 보내려 하는 것일 테니 놀라지 말자.) 친구들은 "주소는 갑자기 왜??" 하면서도 순순히 알려줬다. (보이스피싱이 아니라 친구라는 확신이 들 때만 주소를 알려주세요.) 나는 아주 쉽게 얻어낸 친구들의 주소를 공책에 적어뒀다. 그리고 귀여운 편지지를 사기 위해 목도리까지 두르고 문방구로 향했다. 요즘 편지지는 정말 귀엽고 또 귀엽다!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엽서, 접으면 편지봉투로 변하는 편지지, 편지를 잘 접고 붙일 스티커나 고급스러운 끈까지 동봉된 편지지 세트까지. 심지어 커플들이 주고받기에 딱 좋은 편지지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친구들의 성격이나 닮은꼴 캐릭터를 떠올리며 오리가 그려진 노란 편지지, 붉은 꽃과 끈이 동봉된 분홍 편지지(이자 편지봉투), 강아지가 그려진 깔끔한 편지지 세트까지 골고루 구매했다. 귀여워서 그런지 값은 평소에 구매하던 편지지의 두 배였다. 그래도 기분 좋게 구매해서 카페로 향했다.

 

  다크초코에 우유 거품이 올라간 다크초코 두유 라테와 에그타르트를 시켜놓고 각 친구들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에 대한 기억이 너무 흐릿하다. '그래 원래 친구들은 언제 만났는지 모르고 이어지는 거야.'라며 첫 만남에 대한 추억은 빼고. 지금과 달리 위대한 위장을 가졌던 20대의 우리가 뷔페에서 수많은 메뉴를 끝장 내던 날. 비 오는 날 만화카페에서 뒹굴거리던 날. 해외여행을 같이 가서 옥신각신했던 날. 말도 안 되는 계획을 할 수 있다며 몇 주동안 만나서 프로젝트를 했던 날. 같이 일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울었던 날(그럼에도 불구하고 치킨은 맛있게 잘 들어가던 날), 신나는 노래 틀어 놓고 흔들던 날, 취직 스트레스로 한참을 떠들던 날... 수많은 시간을 훑었다. 그리고 올해 있었던 몇 가지 이야기와 함께 추억을 살짝 담아 글을 썼다. 문맥은 맞지 않아도 한 명, 한 명 친구들에게 그동안의 고마움을 담아 편지를 마무리했다. 차갑게 식어가는 초코 라테를 들이켜고 미리 받아둔 주소를 적고 주소가 틀리진 않았는지 한 번 더 확인한다. 집 가는 길에 있는 우체국에서 발송까지 끝. 


  며칠 뒤 친구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편지를 잘 받았다는 인증을 해 보였다. "네/언니 주소는 어디 있어(요)??"라는 말과 함께. 보내기 바빠 내 주소 적는 걸 잊었다. 이번에는 내 주소를 알려줬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 친구들의 답장이 왔다. 따뜻한 말과 함께. 내 마음을 전할 생각만 했는데 더 크게 되돌아오다니. '앞으로는 연말이나 연초가 아니라 분기마다 한 번씩 편지를 보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2021년이 마냥 즐겁기만 했던 해는 아니었지만 마지막만큼은 따뜻했다. 나라는 사람을 응원해주고, 위로해주고, 안아주는 친구들 덕분에. 사람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지만, 다시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추신. 친구를 생각하며 문장에 마음을 담아 글을 적다 보면 추억이 하나씩 정리되는 듯하다. 한 번 맛 들이면 '이거 꽤 재밌는데?'하며 수 십 장의 편지지를 구매해야 할 수 있으니 주의할 것!(편지지가 저렴하진 않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