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칠 때 자주 가는 곳이 카페라서 제목에는 카페를 썼다. 카페가 아니어도 좋다. 집만 아니면 된다.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거나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도서관, 영화관, 쇼핑몰, 식당, 미술관, 호텔... 그 어디라도 좋다.
나는 엄청난 집순이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다. 고등학생 때지만 집에서 한 달을 지낸 적도 있다. 베란다에서 소풍놀이(?)하고, 책도 읽고, 친구도 초대하고... 그 기간이 길어지면 문득 홀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 생각은 나를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지치게하는 것이 집에서 벌어지는 일이거나 취업과 관련되었을 때 더욱더 간절해진다. 그런 시기가 찾아오면 집이 좋음과 동시에 싫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읽다 그 이유를 정확하게 표현해놓은 구절을 발견했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작가 김영하는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지역이나 국가에 (놀러) 가는 이유뿐 아니라 집을 떠나고 싶은 이유도 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집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꾸며놓은 편안한 방이 아닌 다른 곳을 찾게 되는 이유.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부엌에는 설거지거리와 대충 욱여넣은 찬장의 양념통, 락앤락 반찬통, 베란다에는 빨래통에는 잔뜩 쌓인 빨랫감, 책장에는 몇 년간 나를 괴롭히는 구직 관련 도서... 좋아하는 공간에 너무 오래 머물다 보니 유쾌하지 않은 것들까지 곳곳에 쌓였다. 진저리가 나서 가볍게 읽을 책이나 그림을 그릴 태블릿을 가방에 넣어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목적지로 정해둔 카페와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카페나 조용한 사람들이 선호할 듯한 분위기의 카페다. 즉 인기 있는 핫플 카페는 내가 혼자서 갈 일이 없다는 뜻이다(친구들이랑 신상 카페 부수기 하는 건 좋아한다). 책을 보거나 탭을 쓸거라 의자가 편해야 한다. 또커피를 못 마시기 때문에 커피 아닌 음료도 최소 3종류 이상 있어야 한다. 내가 주로 마시는 음료는 따뜻한 차 종류나 탄산수를 넣은 에이드지만 개인 카페라도 두유나 귀리 우유로 바꿀 수 있다면 초코나 녹차라테를 시키기도 한다. 이 조건을 갖춘 카페를 찾는 건 은근히 쉽지 않다. 그러다 운 좋게 몇 군데를 찾았다. 햇볕이 잘 들고 다른 손님들과 거리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은 뒤 음료를 주문하고 돌아온다.
카페는 벽 색상, 조명, 가구 등 모든 것이 (내 방과 달리) 조화를 이룬다. 깔끔하게 색 조합을 잘 맞춘 인테리어, 손님을 맞는 공간이라 정돈도 잘 되어있다. 카페에서만 들을 수 있는 원두 가는 소리, 커피 내리는 소리, 얼음 소리와 같은 백색 소음은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기기 딱 좋다. 원두 내려진 향, 갓 구워진 쿠키 향은 침샘을 자극한다. 한라봉 차가 나오기 전 매장 내부 사진을 여러 장 찍어본다. 처음에 왔을 때는 입구에 가게명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었는데 이제는 넓은 창 귀퉁이에 하나만 크게 붙어있는 게 눈에 띈다. 제일 폭신한 소파에 앉았는데 책 읽다가 잠들기 딱 좋아서 조금은 딱딱해도 등받이가 있는 의자로 옮긴다.
온갖 소음으로 가득한 카페 내부와 달리 잔잔해지는 내 마음. 챙겨 온 책을 펴서 한 장씩 넘기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듯한 햇살에 졸음이 밀려와 책을 덮는다. 책읽기는 빠르게 포기하고 공책을 꺼내 22년 계획을 다시 확인한다. 조금의 수정이 필요해 보여 이것저것 고친다. 새롭게 시작한 일과 그를 어떻게 운영할지고찰해본다. 취직에 대한 걱정도 조금 해야 하는데 하기 싫다. 그에 대비하여 다른 수입원을 짠다. 내게 익숙한 공간이 아닌 곳에서 더 편안하게.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의 늪으로 빠지던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 책에서는 이런 행위(내 고통이 묻은 공간에서 탈출)를 여행의 이유라 했지만 지금은 자유로운 여행에 제약이 생겨버렸고, 내 지갑은 얇다. 대신 나는 낯선 곳으로입장을 한다. 낯설어봤자 카페, 도서관, 영화관이지만 충분하다.
*김영하,『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2019년, 64쪽.
카페가 아니어도 된다. 하지만 내게 그런 공간은 카페다. 도서관도 좋지만 옆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뭔가 자극(?)을 받게 된다. 영화관은 영화를 보느라 내 생각은 할 수 없다(대신 잡생각을 떨치기엔 완벽하다.). 그 외의 다른 공간도 집이 아니라 괜찮긴 하다만 최고는 카페다.
내가 들을 일 없는 노래를 틀어주고, 내 방에서는 듣지 못할 소리, 맡지 못할 냄새, 사람들의 대화 소리 또는 키보드 치는 소리... 카페를 이루는 요소는 모두 비슷한데 공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인지 카페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정리되지 않아서 답답하던 기존의 생각이 갑자기 풀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