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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Feb 08. 2022

09. 좋아하는 향기 속에 싸여 있기

킁킁, 몸에서 좋은 향이 나요

@i_kiffe

아이릿의 일상 행복 찾기

(일상 행복 찾기는 자주 우울함을 느끼던 아이릿이 찾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씁니다.)

#09. 좋아하는 향기 속에 싸여 있기


이번에 쓰는 행복해지는 방법은 동생(이하 흰눈이)한테 배웠다. 흰눈이는 3살 차이 나는 내 동생인데, 돼지띠라서 그런 건지 돼지코가 따로 없다. 비염이 있는 아빠와 나는 그렇다 쳐도, 비염이 없는 엄마도 전혀 맡지 못하는 냄새에도 반응한다. 혼자만 잘 맡는 냄새 종류가 591,087개가 있지 않을까 싶다. 생선이나 고기를 구워 먹고 환기를 덜 시켰는데 동생이 집에 온다? "집에서 냄새나!!" 하며 (날씨가 어떻든) 창문을 열거나, 향초에 불을 붙여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한다. 그리고 좋은 향이 나면 "집에서 좋은 냄새나!!!" 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게 바로 돼지코 흰눈이다.


그래서인지 흰눈이의 스트레스를 해소법은 향수, 향초, 향주머니 구매다. 내 몸에서 났으면 하는 향이 나는 모든 것을 사모은다. 반면 나는 크림은 무향을 제일 좋아한다. 이런 나지만 흰눈이가 향수를 사러 나가면 꼭 따라 나간다(나가 줘야 한다). 흰눈이의 의식을 지켜본다. 매장의 향수 매대에 서서 여러 향수를 종이에 뿌려 살짝 흔든 뒤 마스크에 바싹 붙여서 향을 맡는다. 세 겹으로 된 마스크를 뚫고 들어간 향을 겨우내 맡으면 표정이 조금씩 변한다. 마음에 들면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이 향 어때?" 하며 종이를 들이 밀고, 너무 강하거나 취향이 아니면 초점 잃은 눈으로 "맡아봐."하고 들이 민다. 나는 그 표정을 읽고 재빨리 다음 말을 선택한 뒤 향을 맡고 '무조건' 동의(또는 비동의)한다. 내 의견과 상관없이 본인 마음에 드는 향수를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언니도 향수 좋아하면 좋은데(그래야 나도 뿌려보자). 기분 좋지 않아(그렇다고 해)?"라고 조잘거린다.


흰눈이가 향수를 살 때마다 따라갔지만 향수든 좋은 향의 크림이든 내게 큰 감흥을 주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한테 선물로 받은 향수 핸드크림을 발랐다. 그리고 처음으로 크림을 바른 손등을 킁킁거리는 내 모습을 보았다. 흰눈이가 말한 게 이런 건가. 향에 기분을 조종당하는 기분? 그 후로 나는 향의 매력에 50% 정도 넘어갔다.


이제는 향수를 뿌렸을 때 처음에 나는 향, 그 뒤 나는 향, 마지막까지 남는 향(탑-미들-베이스 노트)을 하나씩 맡으려 한다. 비염이 있어 미세한 향까지 맡지는 못하지만 기분이 나아지는 게 느껴진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책상 위에 올려둔 핸드크림 중 하나를 짜서 손등에 문지른다. 처음 선물 받았을 때는 향수 핸드크림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향에 담긴 오일을 음미하는 나, 멋있어...(?) 


향으로 심신 안정을 취하는 아로마테라피가 이런 걸까. 또 하나의 취향 기호가 생겼다. 이렇게 하나씩 즐기는 것을 만들어 가는 거 꽤 괜찮은데?


냄새와 같은 특정 자극이 있을 때 그것과 관련된 기억이나 감정이 되살아난다는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가 살짝 걱정되긴 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쓰는 향만 따로 골라 놔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 향 덕에 진정된 기억이 남으려나?


이번 주말에는 기분 전환을 위해 향수 코너에 가볼까. 시원하고 포근한 향(땅냄새 좋아요)을 가진 향수 추천 받아요.


흰눈이는 "언니도 향이 주는 행복을 느끼면 좋을 텐데."라는 말을 수 백 번은 더 했을 거다. 향수의 매력을 나한테 제대로 알리고자 했다면 말만 하지 말고 향수를 사줬어야 한다. 보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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