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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Jan 09. 2022

글쓰기 여덟 번째 수업: 사계절

계절 하면... 인생이지!


  여덟 번째 숙제로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중 하나의 계절을 정해서 시나 짧은 글을 써야 했다.'아~ 너무 쉽네! 좋아하는 계절에 있었던 일을 하나 써야지!' 하며 글 쓰기를 차일피일 미뤘다. 막상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니 어떤 계절을 써야 할지 막막해졌다. 새로운 싹이 피어나는 봄도 좋고, 그 싹의 초록빛이 점점 진해지고 짙은 풀향이 나는 고온 다습 여름도 좋다(그럴수록 풀내음이 짙게 난다). 초록빛이었던 잎이 빨갛고, 노랗게 변해가는 잎을 보는 가을도, 잎이 다 지고 휑해진 겨울도 좋다. 예전에는 사시사철 푸른 침엽수가 아닌 이상 헐벗은 것 같은 나무를 보는 것이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겨울이 지나면 언제나처럼 봄이 온다는 걸 아니까 슬프진 않다. 사계절이 다 좋은데 어떡하지. 결국에는 사계절 중 하나를 콕 집어서 글을 쓰길 포기했다.


  대신 시를 쓰기로 했다. 봄부터 겨울까지의 이야기를 인생에 빗댄 시.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0여 년 전에 고등학생 때 시험에 나오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읽었던 시뿐이니까. 그 뒤로 시를 읽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영문학을 전공하며 영미시를 잔뜩 읽은 것은 별개) 생각이 많이 요구되는 시보다 대부분의 내용을 풀어서 알려주는 장문의 소설이 좋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책을 읽는 내게 무엇보다 시를 해석하는 일은 또 하나의 스트레스였다. 그런 내가 글쓰기 수업에서 시를 낭송하더니(매주 수업 때마다 나눠주는 시를 읽고 의견을 나눈 시간을 꼭 가졌다.) 쓰기까지 해 보다니! 엄청난 변화다, 이건.


  나는 '우울함을 털고', '온갖 핑계를 대면서 미뤄온 오래 전의 꿈'을 이루고 싶어서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그리고 여덟 번의 수업까지 오면서 내가 가진 어두운 부분을 글로 썼다. 내가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열등감, 편견, 상처... 한쪽에서 한 장 정도의 글을 짧게 썼을 뿐인데 놀랍게도 감정이 추스러졌다. 이번에도 그러길 바라며 내 선택을 사계절에 빗대 시를 썼다. 


  시 속에서 나는 농부. 멋진 싹이 트길 바라며 땅을 잘 고르고 씨를 잔뜩 뿌린다. 푸르게 자라난 싹을 보며 더 열심히 일한다. 잡초도 뽑고, 땅도 고르고, 죽어가는 싹은 미리 뽑아버린다. 열심히 일을 하니 어느새 추수의 계절. 고생한 것들을 거둘 때가 되어서야 고개를 들어 다른 농부들의 땅을 본다. 알이 꽉 차고 성한 곳이 있어도 판매 가치 있는 상품들을 보고 기뻐하는 모습이다. 고개를 돌려 내 밭을 보는데 내 땅은 여전히 잡초와 이름 모를 싹이 자라다 만 모양새다. 나는 계속해서 땅을 고르고 잡초만 뽑는다. 내가 심은 작물이 자라지도 않는 땅. 겨울을 대비하여 털장갑 끼고, 모자 쓰고, 방한복을 입고 밭일을 한다.


  시에서라도 많은 양의 작물을 수확하는 농부가 될까 했는데 현실 도피 같아 있는 그대로를 썼다. 형식이나 운율 뭐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를 완성하고 몇 번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누군지 알 수 있는 주인공과 주제지만 부모님께 보여줬다. "나 힘들어."라고 직접적으로 말할 용기는 없던 나였기에. 그 짧은 시를 읽고 부모님은 "네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구나. 편하게 살자, 우리."라는 말로 오래전 내 나이대의 본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글쓰기 수업 8주 차.


내 시를 낭송하면서 처음으로 낭송을 했던 때처럼 얼굴이 붉어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너무 당연하게도 혹평을 받았다. 이런 것은 시라고 부르기 애매하다 했다. 시에는 내가 쓴 것처럼 직접적인 내용보단 함축적인 것이 담겨야 한다는 조언도 듣고. 다른 수강생들의 시와 내 시를 비교하니 확실히 느껴지긴 했다. 고칠 것이 많지만 여전히 고치지 않은 시. 초등학교 때 써 본 동시를 제외하면 거의 처음으로 쓴 시.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그래도 나의 상태를 부모님께 보여줬다는 것과 부모님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은 것은 만족스러웠다.


묻어놓고 삭혀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나를 작게 만드는 감정이 그런 것 같다. 그런 것들은 우선 꺼내서 보여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내 편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왜 묻어놨을까 싶을 정도로. 글쓰기 수업이 이어질수록 우울한 감정이 옅여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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