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릿 Jan 16. 2022

글쓰기 아홉 번째 수업: 영화 속 명장면

My heart will go on


  아홉 번째 숙제는 <영화 속 명장면>을 써오는 거였다. 숙제를 할 때마다 '이거 참 쉬운 듯 어렵네.'를 습관처럼 되뇐다. 이제까지 보았던 영화를 추리고, 뇌리에 깊이 남은 몇 장면을 쭉 떠올려 본다. 내가 본 대부분의 영화는 SF/액션물이라 생각보다 많은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유일하게 내가 10번 이상 본 영화인 '타이타닉' 속 탭댄스 장면과 여러 명장면. 어쩌다 2번을 영화관에서 본 '라라랜드' 속 커플의 대화 장면. 자기만의 신념으로 일을 해결해나가는 주인공이 나온 '미스 슬로운'. 이 외에도 많은 영화가 스쳐 지나갔지만 정확한 장면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결국 '생생하게' 떠오르는 영화 타이타닉에 대한 글을 썼다.


  엄마 말에 따르면 나는 어려서부터 잘생긴 사람이라면 정신을 못 차렸다고 한다. 시장에 가서 야채가게 사장님 아들이 잘생겼다고 한참을 쳐다봐서 겨우 끌고 왔다는 이야기부터 잘생긴 애 앞에서는 몸을 배배 꼬는 것은 기본. 언젠가는 결혼은 절. 대. 안 할 거라고 친척들 앞에서 선전포고를 하더니(결혼하면 친척들한테 100만 원씩 주기로 했다고 한다) 전학생이 온 날 걔 잘생겼다고 "걔랑 결혼할 거야!!"하고 또 친척들 앞에서 외쳤다고...... 그래서일까 같은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성격이 아닌 내가 그 시절의 리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반해 5번 이상을 봤다. 그러니 다른 영화는 모르겠어도 '타이타닉' 속 명장면은 확실히 기억난다.


  내가 타이타닉을 처음 본 건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같은 반이던 남자애랑 노래방에 가서 "My heart will go on"을 나름대로 열창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리코더로도 노래를 부르겠다고 악보를 외웠었다. 10살 좀 넘었던 내가 처음 타이타닉을 보고 느낀 거? 기억은 거의 안 나지만 '와. 리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진짜 잘생겼다. 동화 속에 나오는 왕자님이 저런 느낌일까. 나 저런 남자 만날래요 엄마, 아빠.'가 아니었을까. 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 대학교 졸업 후 타이타닉을 2년에 한 번은 꼭 본 것 같다. 특선영화로든 아니면 무료 영화로든. 결국에 힘들 때마다 얼굴 보고 행복해지려고 구매를 했다. 진작 구매할 것을.


  성인이 되어서는 타이타닉을 조금 더 현실적인 상황에 빗대어 보았다. 로즈와 잭의 신분 차이는 물론이고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남자한테 쉽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던 로즈네 가문의 상황. 10살 초반의 내가 처음 본 타이타닉은 그저 사랑하지만 갈라질 수밖에 없었고, 이뤄질 수 없는 절절한 사랑이야기였다. 그저 잘생긴 잭 만나서 사랑하는 로즈가 부러웠던 어린 나. 중학생이 되어서는 조금 더 성숙(하지만 여전히 미숙한)한 사랑이 보였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계급에 대한 것이 보였다. 성인이 되어서는 배에서 로즈가 1등석에서 지내고 잭이 (내기로 딴) 3등석에서 지내는 것보다 더 확장된 계급. 1등석 안에서도 가문의 이름만 겨우 유지하는 로즈네와 돈이 넘쳐나는 남편감 칼네 가문이나 죽음을 앞둔 인간의 본성이나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 처음에는 디카프리오의 미모에 반해서 본 영화지만 반복해서 볼수록 다른 것들이 들어왔다.


  차근차근 글을 써 내려갔다. 초등학생 때 처음 본 영화 타이타닉, TV 화면을 뚫고 나오는 리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화려한 미모. 거적때기를 입혀놔도 저 외모를 가릴 수는 없다는 것을 보고 깨달은 '잘생기고 이쁜 게 최고지.'라는 인생의 진리. 교육과정에 따라 성장하며 다시 본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의 외모 말고 또 보인 것들. 하지만 역시 최고는 로즈와 잭이 3등석 식당에서 신나게 탭댄스를 추던 장면이 아닐까 싶다. 가문의 짐이나 돈 계급에서 자유로워진 로즈가 잭과 그 순간을 즐기던 때. 1등석 식당에서 비싼 밥을 먹고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해 보였던 로즈의 표정.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 타이타닉호를 본 로즈의 마지막 행동.


  수십 년 전에 처음 본 타이타닉을 꽤 오랜 시간 곱씹어보았다. 영화 한 편이 이렇게 오래 기억되다니. 내가 쓰는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모두에게 읽힐 수 있는 멋진 글을 쓰고 싶다. 언젠가는 꼭 그럴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면.


글쓰기 수업 9주 차


수강생들은 서로의 영화 속 명장면을 가져왔다. 내가 보지 않은 류의 영화가 다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언맨이나 어벤져스 보고 명장면 쓰는 게 고수가 아닐까. 솔직히 타이타닉을 안 썼다면 나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썼을 거다. 그 마지막 장면이 최고의 액션 장면이자 감동스러운 장면이니까. 마블 기존 영웅들을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최고의 장면!!! 절대 잊지 못해 3000!


수강생들의 영화는 '내 머릿속의 지우개', '너는 내 운명'... 대부분 사연 있는 슬픈 영화였다. 각자에게 최고의 영화와 그 영화 속 명장면을 적어 온 글을 낭독했다. 그때는 들으면서 '저 영화 꼭 봐야지!!' 하며 적어뒀는데 반년이 넘게 기억만 하고 있다.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는 듯하다. 타이타닉을 한 번 더 보고 새롭게 보이는 것을 찾아보는 쉽겠지만 그래도 시도해봐야지.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취향에 한 번 녹아들어 가는 것이 제일 빠른 듯하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최고의 영화와 그 영화 속 명장면은 무엇인가요. 궁금해요! 



이전 09화 글쓰기 여덟 번째 수업: 사계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