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은 끝났어도 꾸준히 글쓰기
16주간 수업을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행사로 4회 정도는 수업이 없었더라. 이걸 수업이 끝난 지 반년도 더 지난 이제야 깨닫다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화의 날에는 안 갔던 것 같다. 숙제도 그렇다. 자기소개 글쓰기는 어렵고 막막해서 안 썼는데 그 뒤로 한 번 더 안 냈다. 어떤 주제의 숙제를 안 낸 건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브런치에 글쓰기 수업 정리를 안 했으면 나는 쭉 '열여섯 번 수업 나갔고, 하나 빼고 숙제는 다 낸 수강생'이라고 착각하며 살았겠지.
3월 말에 시작된 수업은 7월 중순에 끝이 났다. 첫 수업처럼 마지막 날 수업도 두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그동안 같이 수업을 들은 수강생과 인사를 나누느라 바빴다, 는 거짓이다. 나와 몇 살 차이 안나는 분들부터 30살 이상 차이나는 분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이뤄진 수강생들과 전혀 친목을 쌓지 못했다. 이야기하며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걸 놓쳐버렸다! 당시의 나는 꽤 우울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글쓰기 수업 신청 전의 나는 30살이 되기 전 제대로 이뤄둔 것이 없다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해보고 싶었던 것도, 하고 싶다던 것도 안 해보고 그런 생각을 하냐 머저리야!!!'하고 소리치며 신청한 게 이 수업이다.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은 있었지만 내가 먼저 다가갈 용기와 힘은 없었다.(거의 매일같이 인사만 잘했다.)
인적 교류 대신 작가 선생님이 나눠준 시 모음집과 (내가 구매해서 읽을 리 없는 장르나 주제의) 책을 읽으며 두 달 넘게 수업만 들었다. 평소 즐겨 읽지 않던 시와 에세이를 수 백장 넘게 읽었다. 쓰고 싶다고 생각만 했지, 쓸 생각은 하지 않았던 글도 썼다. 땀 뻘뻘 흘리며 수업 들으러 갔는데 수업 잘 듣고, 숙제 잘 제출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보고 싶어서.
처음에는 내 이야기를 남들에게 들려주기가 부끄러웠다. 마이크를 들고 내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는 것도, 내 글을 읽어주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생경했지만 작가 선생님의 수업을 따랐다. 그리고 다른 수강생들의 글을 들으며 자극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3주 차던가. 숙제로 받은 주제로 글로 남들에게 감추고 싶었던 것을 담아서 써냈다. '이거 참... 남들 앞에서 읽을 수 있긴 할까?'라며 글을 썼는데 의외로 잘 읽었다. 그리고 그날 드러낼수록 부끄러운 감정은 옅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을 쓰며 날 괴롭히던 열등감, 강박관념, 완벽주의의 원인을 알게 되었고, 남들에게 들려주고 다른 의견을 받으며 그 문제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좋지 않았던 기억과 감정이 일부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시간이 쌓일수록 어느새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자리 잡았다.
그 욕심으로 브런치 글쓰기 작가 신청을 시도했다. 두 번의 실패 끝에 작가가 되었다. 예술품을 창조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 뒤로 여러 번의 글쓰기 공모전에 글을 보냈지만 수상은 단 한 번도 못했다. 그래도 글은 계속 쓰고 싶다. 브런치에서는 주 2회 글 발행을 하고 싶다. <글쓰기 수업> 편이 끝났기에 다른 주제를 찾아봐야겠지만. 그렇게 쓰고 싶었던 글을 쓰게 된 것과 적긴 해도 봐주는 사람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어서 기쁘다.
+) 같이 글쓰기 했던 사람들 단톡방이 있었는데 실수로 방을 나가버렸다. 글쓰기 선생님도 있는 방이었는데... 다시 초대해달라는 말을 못 했다. 그동안 교류를 제대로 못한 탓이지. 다들 꾸준한 글쓰기를 하고 있으려나.
세 달 간의 글쓰기 수업을 통해 배운 것.
1. 글은 쓰면 쓸수록 는다.
좋은 책에 나온 방법을 따라 하면 더 빨리 는다. 사람들과 같이 읽고 개선점을 찾으면 더 좋다.
2. 나의 치부를 보여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는 그 점에 대해 덜 부끄럽고, 당당해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3. 글쓰기를 하면 마음이 정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