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은 혼돈 속 질서
한국-요르단 직항이 없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요르단이 어디 있는지도 잘 몰랐으니 알 턱이 있나.
한국에서 요르단까지 최대한 빠르게 가기 위해서는
1. 카타르 항공(도하)
2. 터키항공(이스탄불)
3. 아랍에미리트 항공(두바이)
위 세 개 항공사 중 하나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세 항공사를 이용해야만 20시간 이내에 요르단 도착 가능. 그 외 항공사는 경유 시간이 길었다.
나는 카타르 항공을 이용했기에 도하에서 경유를 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새벽 1시 3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10시간 25분 후 도하에 도착했다. 도하 시간 새벽 5시 55분. 도하 공항에서 꼭 봐야 한다는 노란 곰돌이 조형물을 구경하고, 식음료 코너에 가서 음식 가격 보고 놀랐더니 대기 시간 2시간 40분이 금방 지나갔다. 도하에서 암만은 가까워서인지 상대적으로 작은 항공기를 타고 이동했다. 넓은 좌석 앉겠다고 출구 자리 신청했다가 피곤에 절어있는 상태에서 승무원과 영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했다. 그래도 넓은 자리와 인천-도하 노선에 비해 맛있는 기내식에 만족스러웠다. 3시간 후, 한국에서 출발한 지 약 16시간 만에 요르단 수도 암만 땅을 밟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비자를 잘 구입하고, 입국 심사 하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입국 심사 중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요르단 회사 상급자는 아직 주거지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한 지역구를 이야기하라고 안내해 줬다. 앞사람이 한 명씩 빠지고, 출입국 심사대에 가까워져 직원들을 쭉 훑어보았다. 웃는 낯이 없고, 건조하게 도장만 찍어주는 듯한 직원이 눈에 띄었다. '저 직원은 안 걸리게 해 주세요' 했는데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나는 그 직원한테 배정되었다. 모른 척 다른 길로 새려 했는데 손을 들어 자기한테 오라 한다. 긴장은 했지만 웃는 낯으로 다가갔지만 직원은 나를 조용히 보내줄 것 같지 않은 눈이었다.
웃음기를 띠고 있는 게 더 의심스러웠는지 직원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질문했다.
"얼마나 지낼 건가요? 어디서 일하나요?"
이미 정해진 사항이라 어렵지 않게 바로 답할 수 있었다.
"1년간 암만에 있는 한국 회사에서 일할 예정입니다."
이 정도면 보내주겠지 하고 긴장을 풀려는 순간 질문이 하나 더 날아들었다.
"어디서 지낼 건가요?"
"어..."
분명히 어디서 지낼 거라고 얘기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 '어디'가 기억나지 않았다. 압둘라, 모함마드, 암만, 알...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을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지어내기도 힘들었고, 겨우내 핸드폰에 저장해 둔 회사 구글 지도 사진이 떠올랐다. 누가 봐도 당황한 사람처럼 주머니를 뒤적여 휴대폰을 꺼내 저장해 둔 회사 위치를 보여줬다.
"여기. 여기서 지낼 예정입니다."
지도 위 회사를 가리키며 여기서 지내겠다고 했다. 나는 졸지에 회사에서 사는 사람이 되었지만 직원은 처음의 무미건조한 표정을 유지하며 휴대폰 화면을 슬쩍 보고 입국 도장을 쾅 찍어줬다.
입국 승인을 축하하는 쾅 소리와 함께 긴장이 풀렸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회사 직원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공항 주차장을 나가려 했는데, 주차장 입구에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공항 직원과 회사 직원이 차주를 찾는다고 15분 이상을 허비했다. 차주가 어디에선가 여유롭게 걸어왔고, 그제야 우리는 공항을 벗어날 수 있었다. 1년 동안 함께 일할 회사 분들을 만나러 퀸알리아 국제공항에서 시내 가는 길. 도로 위 중앙선이 보이지 않아 3차선인지 2차선인지 4차선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다들 폰 보고 운전하고, 깜빡이도 켜지 않고 끼어들고, 경적소리로 가득 찬 도로. 운전자도 아닌 나도 조마조마한데 다들 평온하다. 내가 살아온 환경과 다른 곳에서 지내려면 마음 가짐을 바꿔야 한다. '긴장 좀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요르단 생활이 시작되었다.
항공사 이용 시 언제나 특별식을 신청해서 먹는 편이다. 인천-도하 노선도 특별식을 신청했는데 항공기가 변경되면서 특별기내식과 신청 좌석이 누락되었다. 승무원이 와서 안내해주면서 제일 짜지 않은 기내식을 갖다주었다. 내가 워낙 짜지 않게 먹어서 그런지 여전히 짰다. 도하-암만 노선에서 먹었던 기내식이 제일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