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간 이 외지인을 잘 부탁합니다
요르단 생활은 7월 중순 시작되었는데 어느덧 7월 말이 되었다. 첫 출근 후 같이 지낼 사람들 얼굴과 이름을 겨우 외웠을 때쯤인가. 퇴근 후 침대에서 쉬다가 문득 '올 때는 무지한 상태로 왔지만 돌아갈 때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국가를 여행하면서 느낀 건데 사람이 붐비는 시장이나 슈퍼만큼 현지인 생활을 생생하게 구경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곧바로 몸을 일으켜 꼭대기 층에 상주하는 숙소 사장님에게 가서 짧은 인사를 나누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요르단이 처음이라 이 근처 돌아보고 싶은데 아는 게 없어요. 숙소 근처 현지인이 자주 가는 슈퍼나 쇼핑몰 추천해 주세요."
타국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요르단에 산다는 사장님은 진지하게 질문을 듣더니 옥상 테라스로 따라오라고 했다. '갑자기 왜 테라스?'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조용히 뒤를 따랐다. 사장님은 숙소 옥상에서 보이는 건물을 가리키며 바로 저 건너편이 바라카몰, 그 옆이 애비뉴몰 그리고 저~기가 갤러리아몰이라고 알려줬다. 자기 숙소 위치가 좋다는 자랑도 덧붙였다. 위치가 정말 좋은 것 같다는 자랑까지 받아 준 뒤 고맙다는 말을 하고 바고 숙소를 나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아랍어도 몰라, 아랍 문화도 몰라. 요르단에 대해 아는 게 전무한 나는 지갑과 휴대폰만 들고 당당하게 길을 나섰다. 번화가에 위치한 것은 좋았는데 어딜 가려면 언덕을 오르내려야만 했다. 한여름의 뙤약볕이 식기에는 이른 오후 5시. 구글 지도를 보며 목적지인 갤러리아 몰을 향해 걷는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목적지는 위쪽에 있고, 위쪽으로 향한 지도의 푸른빛을 보고 걷는데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휴대폰 위치 추적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반대편으로도 걸어봤는데 내 위치를 알리는 푸른색 점이 숙소 쪽으로 휙 이동해 버린다. 이런 경우 무식하고 용감한 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
"실례합니다. 길 좀 여쭤봐도 될까요? 갤러리아 몰에 가고 싶은데요..."
"No English(영어 못합니다.)"
곧바로 조금 자유롭게 옷을 입은 여성 무리로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아랍어를 못합니다.(아나 마 바키 아라비*). 영어로 물어봐도 될까요?"
"영어로 물어봐도 괜찮아요."
상대방은 호쾌하게 웃으면서 휴대폰을 보여 달라는 손짓을 했다. 곧바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여기에 가고 싶은데 GPS가 잘 작동하지 않아서요. 저희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주변을 둘러보더니 내 휴대폰 구글 지도를 확대했다 축소하더니 질문과 함께 답을 줬다.
"잘 가고 있었어요. 골목길로 가지 말고 저쪽 큰길로 나가서 쭉 걸어가면 보여요. 어디서 왔어요? 중국? 일본?"
"한국이요. 남한이요."
해외에서 한국이라 하면 남이냐 북이냐 물어서 남쪽이라고 덧붙였다.
"알죠 남한! 한국! 저 한국 드라마 좋아해요. 요르단에 왜 왔어요?"
길만 물어보고 조용히 떠나려 했지만 요르단까지 온 이유, 어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요르단 첫인상은 어땠는지 등을 물어왔고 20분 가량 성실히 답해줬다.
"요르단에 온 걸 환영해요. (Welcome to Jordan)"
친절하면서도 면접관 같았던 요르단 여성 무리는 요르단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당당한 외국인에게 환영의 인사와 앞으로 잘 지내라는 인사를 건네고 떠났다.
길을 물어보려 붙잡았던 현지인의 친절함과 환영한다는 말 한마디에 요르단 생활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려준 대로 큰길로 나가 직진했더니 도로가에 있는 갤러리아 몰이 보였다. 꽤 넓고 둘러볼 것이 많은 몰을 층마다 돌아다니며 요르단 물가와 식문화를 구경했다. 구경 중 여러 명의 현지인이 "요르단에 온 걸 환영해요. (Welcome to Jordan)"라며 인사를 건넸다.**
* 요르단에 가기 전 간단한 인사말과 문구를 익혔다. 아랍어도 국가별로 단어가 조금씩 다른 것도 몰랐기에 요르단식 아랍어가 아닐 수도 있다. 저 당시 내가 한 아랍어가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는 여전히 모른다. 요르단에 살게 된 김에 아랍어 과외도 좀 받았는데 실패했다. 1년 동안 요르단에서 아랍어라고는 기본 인사말과 "저 아랍어 조금밖에 못해요."라는 말만 익혔다. 아예 못하는 거니 그 문장을 외워야 했지만 "아랍어 쪼~끔 해요."라는 문장이 더 쉬워서 저걸로 외웠다. 아나 슈웨이 슈웨이 아라비.
** 구시가지에서 호객행위 하는 사람들이 요르단에 온 걸 환영한다며 말을 걸어온다. 길에서도 어쩌다 현지인과 눈을 마주치면 잘 왔다고 인사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진심 어린 환영이든 호객행위든 환영한다는 데 기분이 나쁠 수가 없다.
갤러리아몰 안에는 마트 외에도 은행, 휴대폰 대리점, 패션잡화점, 어린이들 놀이공간 등이 있다. 한 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다. 현지인 여성은 대부분 히잡을 썼고 일부는 부르카를 착용하고 있었다. 남성 한 명이 둘 이상의 여성과 같이 다니는 것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 더 강하게 적용되는 이 나라에서 저 사이는 친구 사이가 아닐 확률이 더 높다. 사람들을 좀 구경하고 제일 먼저 간 곳은 몰 안에 있는 까르푸. 반찬코너로 보이는 곳에서 작은 가지, 장아찌 같은 오이, 올리브, 무 등이 눈에 띄었다.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나라라서 마트에서도 돼지고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식물이 보여서 사진을 찍어서 현지인 친구한테 보여줬다. 선인장 열매라고 했다. 나중에는 껍질을 까지 않은 선인장 열매도 혼자 까먹기에 이르렀다. 씨가 많은 잘 익은 홍시 같은 맛이 난다.
요르단에서 놀란 것. 대부분의 슈퍼마켓에 불닭볶음면이 있다. 큰 곳에만 있는 거 아닌가 했는데 동네에 있는 작은 슈퍼에도 불닭이 있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던 불닭볶음탕도 있다. 외국에 맵기로 유명한 불닭이 널려있어 꽤 놀랐다. 한국 음식 못먹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 라면 시장이 커졌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도 했다.
임시 숙소에서 지낼 때는 숙소 근처 식당에서 먹거나, 음식을 싸와서 먹었다. 귀찮을 때는 배달 음식도 시켜 먹었다. 한 번은 훔무스, 팔라펠, 얇은 빵 등의 알찬 패밀리 세트를 시켰다. 한국에서도 종종 먹던 훔무스와 아직까지도 뭔지 모를 콩요리 세 개가 왔다. 어떤 건 위에 뭔지 모를 초록색 양념이 얹어져서 왔는데 시큼한 맛 때문에 한 입 맛보고 그대로 뚜껑을 덮었다. 모든 음식이 어찌나 짠지 빵에 곁들여 먹어도 고소한 콩 맛보다 소금맛이 강해 물을 잔뜩 들이켜야 했다. 요르단 생활 초반, 더운 나라라 땀을 많이 흘려 소금으로 보충하나 보다 하면서도 음식을 먹을 때면 언제나 '역시 짜다'라고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정도 짠맛에는 익숙해지더라.
숙소 사장님이 숙소 근처에 치킨 요리를 잘하는 가게가 있다고 알려줬다. 어느 날 퇴근 하고 너무 피곤해 밥을 먹고 들어가려 식당에 들러 메뉴판에서 제일 먹음직스러워 보였던 구운 치킨을 하나 주문했다. 받자마자 치(킨)밥이라며 좋아하며 한 입 먹었는데 너무 짰다. 맛집에서 일하는 직원은 자기 가게의 음식이 아시안에게도 맞는지 궁금했는지 "맛이 어떤가요?" 물어봤고, 나는 "맛있어요"라고 답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엄지 척이 무색하게 두 조각을 꾸역꾸역 먹고 전부 포장했다. 왜 안 먹고 포장하냐는 질문에 회사 일을 해야 한다고 답하며 퇴근 후에도 일을 하는 일에 미친 아시안 이미지를 굳혀줬다.
요르단 음식을 체험하고 싶어서 요르단 식당에도 자주 갔지만 요르단에서 한국 음식 구하기 난이도는 하. 아시아 마트가 있어 비비고, 종갓집, 오뚜기 등에서 나온 제품을 한국에서처럼 쉽게 살 수 있다. 게다가 회사 상급자들은 요르단 문화에 문외하고 아랍어도 못하는데 당차기만 한 새 계약직에게 한국 음식을 나눠주었다. 초반에만 챙겨주실 거라 생각했지만 1년 내내 작고 큰 나눔이 이어졌다. 좋은 사람들 덕분에 1년 동안 낯선 나라에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