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구해준 임시 숙소는 말 그대로 임시라서 한 달 안에 다른 숙소를 구해 나가야 했다. 숙소 사장님이 친절하게 도움을 준 것도 많아 감사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하루빨리 숙소를 벗어나고 싶었다. 다름 아닌 벽지, 침대, 천 소파 등 모든 곳에 찌든 담배냄새 때문.
요르단의 흡연 문화를 도착 첫날 바로 경험했다. 공항으로 마중 나왔던 현지 직원은 출발 전 양해를 구하더니 급하게 담배를 한대 폈다. 숙소에 도착해서 한 달 숙박 서류 작성 하는 동안에도 사장님과 현지 직원 그리고 한국인 직원은 바로 옆에서 담배를 뻑뻑 피웠다. 서류고 뭐고 대충 끝내고 담배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연기때문에 눈물 흘려가며 빈칸 채우기를 마치고 나답지 않게 재빠르게 도망쳤다. 이럴 수가. 방에서도 담배 냄새가 났다. 압축팩에 넣어둔 내 옷들을 꺼내고 싶지 않아서 여름옷만 몇 장 꺼내 다림질을 하고 출근 준비를 했다
첫 출근 후 곧바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임시 숙소 상권은 좋았지만 매일같이 택시로 출퇴근을 해야 해서 그 지역은 후보지에서 탈락시켰다. 시내라 장 보거나 문화생활은 즐기기 쉽겠지만 너무 시끄러운 것도 단점. 회사에서 소개받은 부동산업자에게 연락하기 전 살게 될 집이 갖추었으면 하는 것 몇 가지를 적어보았다
내가 찾는 집
1. 예산 이내
2. 방 2개, 화장실 2개
3. 버스 정류장 가까운 곳
4. 하리스비*가 비싸지 않을 것
5. 방에서 담배냄새가 나지 않는 곳
내가 찾는 집 기준을 잡고 부동산 업자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oo사의 아이릿입니다. 회사에서 번호를 받아 연락드립니다. 1년가량 지낼 집을 찾습니다. 예산은 xxxx달러이며 압둔 거주 희망합니다."
예상치도 못한 답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산이 xxxx달러 맞나요? 압둔은 불가능하고 다른 동네에서는 알아봐 드릴 수 있습니다."
"xxxx달러로는 불가능할까요?"
"압둔 지역은 집값이 비싼 곳이라서 안타깝게도 불가능합니다. 현재 매물도 거의 없고요. 다른 지역이라도 원하신다면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는 무척 간결하게 끝났다. 예산에 맞는 집이 없다는데 어쩌겠나. 근무지가 있는 곳 비싼 지역이라고 사전 안내는 받았지만 이렇게 비쌀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전화를 마치고 터덜터덜 자리로 돌아와 무엇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내가 찾는 집' 목록을 바라보았다. '발로 뛰어야 할 때가 왔다.'며 잠시 고민 후 여전히 서먹한 옆자리에 동료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G 님, 시간 되면 나중에 저랑 집 한 번 보러 다녀줄 수 있어요?**"
"음... 네!"
퇴근 후 시간을 빼앗는 일이라 조심스럽게 부탁했는데 흔쾌히 들어줬다. 이제 방문할 집을 알아볼 시간. 부동산 업체를 통해 집을 못 구할 경우 건물 외벽 '임대(FOR RENT)/전화번호'를 보고 연락해 약속을 잡은 뒤 찾아가면 된다고 한다. 퇴근 후 곧장 숙소로 가는 대신 뙤약볕을 걸으며 회사 근처 건물 외벽을 열심히 쳐다봤다. 몇 개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50평 이상이었다. 그렇게 포기하고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잘 가꿔진 정원에 골든 리트리버가 뛰놀고 있는 집이 보였다. 고개를 드니 '임대'문구도 보인다. 곧바로 연락을 해 약속을 잡았다. 다음 날 바로 G님과 정원이 이쁘고 귀여운 개가 있는 집을 방문했다.
5층짜리 건물에는 빈 방이 3-4개 정도 있었다. 원룸 맞은편에 방 2개, 화장실 2개, 거실, 부엌으로 나뉜 방이 있었다. 월세를 물으니 예산을 50~60만 원 이상 초과했다. 살면서 월세 깎아달라고 빌어본 적이 없는데 무식해서 용감한 자가 된 김에 "조금 (많이)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하며 흥정을 시도했다. 물론 주변에서 월세 흥정 가능하대서 실행한 거지 무턱대고 빈 건 아니다. "반년치 월세 한 번에 지불"을 외치니 표정이 좀 풀리는 듯 보였다. "아시안 알죠? 집주인도 아는 회사 다니는 내 체면도 있어요"라며 다시금 체면 생각하는 아시안 이미지를 굳혀줬다. 마지막으로 장화 신은 고양이의 눈은 없지만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짓고 합장하고 집주인을 바라보았다. 집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좋아요. 그 가격에 들어와서 지내요."라며 흥정에 응해줬다. 그렇게 나는 집주인 S의 세입자가 되었다.
*요르단에서 건물 관리인을 하리스라고 부른다. 내가 거주하는 집 관련 문제(수도, 난방, 각종 수리 등)와 쓰레기 처리, 정수기 물 채워주기, 정원 관리 등의 업무를 한다.
**요르단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닐 때 남자를 한 명 데리고 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
내가 찾은 집
1. 예산 이내
> 집주인에게 빌고 빌어 예산에 맞는 집을 구했다.
2. 방 2개, 화장실 2개
> 나는 방과 화장실이 각 1개여도 상관없었다. 회사 상급자는 집에 방과 화장실이 2개씩 있어야 손님 방문 시 편할 것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집순이인 데다가 누굴 초대할 상황이 올까? 했지만 결과적으로 방과 화장실이 2개씩 있는 집 구한 거 아주 잘한 일 중 하나.
3. 버스 정류장 가까운 곳
> 회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집을 구한다면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지만 대부분이 여자 혼자 버스 타는 것을 비추천했다.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해 버스 정류장이 중요하지 않아 졌다. 계약한 집 근처에 버스 정류장이 있지만 1년 동안 딱 1번 타봤다. G님 타고 다녀서 궁금해서 경험 삼아 탄 게 전부다.
4. 하리스비*가 비싸지 않을 것
> 관리비를 많이 내는 곳은 달마다 3만 원 이상(15JD~) 지불한다. 내가 머물던 집은 정식 관리인이 없어서 약 2만 원(10JD)만 지불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저렴한 가격이었다. 10만 원 가까이 내는 분도 보았다.
5. 방에서 담배냄새가 나지 않을 곳
> 이전 세입자가 비흡연자였는지 아니면 관리가 잘 된 건지 어떤 곳에서도 담배냄새가 나지 않았다.
요르단 흡연 문화
요르단 보건부에 따르면 요르단 전체 흡연율은 43%(한국은 20년 기준 성인 20.6%, 청소년 4.4%)에 달한다고 한다. 전체 흡연자 중 남성이 66%, 13~15세 청소년이 25%. 길을 걷다가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으로 담배를 피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도, 어디서든 궐련형, 전자 담배를 피우는 성인을 볼 수 있다. 심지어 회의 중에도 담배를 피운다. 요르단에 와서 오랜만에 재떨이를 보았다. 식당, 카페, 회의실 등 어디에든 있다.
그래서인지 요르단에서 가장 쓸모없는 문구는 'NO SMOKING, NO VAPING (일반 담배, 전자 담배 흡연 금지)'같다. 우리나라의 '쓰레기 버리지 마시오', '당기시오' 같달까. 쇼핑몰, 공공문화시설, 식당, 카페, 버스 등에서 금연 문구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담배 피우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저 문구를 붙였을 사장님이나 그 직원들도 그 바로 옆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고 있다. 식당에서 담배냄새를 안 맡고 싶어 금연 구역을 요청한 적이 있다. 직원이 금연 공간이라며 데려간 방에서는 사람들이 물담배를 피고 있었다. "금연 공간이라고 하지 않았어요?"하고 물으니 "저건 담배가 아니라 후카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온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