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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Feb 23. 2024

요르단에서 집청소를 열심히 하게 된 이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죠

손님방도 매주 청소했다.

  난 청소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부자리 정돈하고, 종종 털고, 이불 빨고, 바닥이 머리카락과 먼지로 조금 더러워 보이면 닦고 끝. 기본의 기본만 하는 것이 내 청소 방식. 나는 아무리 시간을 들여서 청소를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 한 번은 몇 시간 동안 책장 정리를 하고 뿌듯한 마음에 깔끔해진 책장 사진을 찍어 동생한테 보냈다.

  "흰눈아, 내 책장 어때?"

  "청소 좀 해."

  "지금 하고 보내준 건데?"

  "아 저게 정리한 거야?"

  나는 몇 시간 동안 무엇을 한 걸까. 위아래로 겹쳐놓았던 책을 가지런히 꽂아두었는데 그것도 티가 안 날 정도인가 싶었다. 반면 내 동생은 청소를 하면 빨래를 하든, 설거지를 하든, 방 청소든 청소를 한 티가 난다. 핑계같이 들리지만 동생 믿고 청소 열정은 진작 꺼버렸다.


  그랬던 내가 요르단에서는 청소를 꾸준히 했다. 나만의 공간이 생겼으니 잘 꾸며놓고 살아보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니다.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첫 번째 이유는 개털. 2층에 사는 집주인이자 친구 S는 골든 레트리버(이하 모래)와 산다. 딸이 데리고 온 강아지인데 타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다고 한다. S는 모래가 마당과 집 안을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현관문을 열고 지낸다. 그리고 영리한 모래는 2층에서 내가 사는 1층으로 내려와 "왈왈"하고 나를 부른다. 그 소리를 듣고도 문을 안 열어 줄 수가 없는 나는 문을 열어주고 모래는 이방 저 방을 활개치고 다닌다. 그리고 그 골든레트리버는 털이 많이 빠지는 견종 중 하나다. 모래가 나와 놀고 떠난 자리에는 내 옷과 거실, 부엌 곳곳에서 모래의 황금빛 털이 남아있다.


  두 번째 이유는 요르단이 한국과 달리 입식문화이기 때문이다. 그 말인 즉 집에서도 신발을 신고 활동한다는 뜻이다. 가정용 슬리퍼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신발을 신고 들어오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신발을 신고 들어가요."라며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바닥을 쓸고 닦았다. 신발 신고 들어왔던 사람이 떠나면 또 열심히 쓸고 닦고.


거미 때려잡다가 수명 다한 빗자루

  세 번째 이유는 벌레. 요르단에 가면서 제일 걱정했던 부분이 벌레다. 한국에서 벌레가 나오면 기합을 넣고 잡으려다가 안될 것 같으면 곧바로 아빠나 엄마를 불렀다. 그러나 요르단에서는 불러도 와줄 사람이 없으니 방제가 답이다. 다행히 요르단에는 모기, 거미 등의 벌레가 별로 없었다. 1년 동안 모기 5마리 잡았나? 사해나 페트라 쪽에 가면 살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파리가 있지만 암만에서는 파리도 거의 못 봤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곤충인 개미가 종종 출몰했다. 한 번은 며칠 동안 설거지도 안 하고, 쓰레기도 안 내놓았다.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어나 부엌에 갔는데 개수대 옆에 검은색 선이 생겨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개미 무리였다. 말라 붙은 음식물과 가스레인지 옆 부스러기, 설탕, 꿀 등에도 움직이는 검은색 점이 잔뜩이었다. 소리 지를 것 같아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찍어, S에게 연락해 방역을 요청했다. 방역을 하니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움직이는 검은 줄을 마주한 뒤 설거지와 쓰레기 처리는 바로바로 한다.


열심히 청소하던 중 뚝 끊어져버린 내 스퀴지

  위 세 가지 이유에 한 번 깔끔하게 살아보자는 다짐까지 더해 주기적으로 청소를 했다. 주변 사람들 청소하는 걸 보고 따라한 요르단식 청소법! 좌식 생활을 하는 한국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집뿐 아니라 상점에서도 이런 식으로 청소를 하더라.


  제일 먼저 청소기나 빗자루로 바닥에 있는 먼지와 모래(그리고 개털)를 쓸어준다. 그다음 단계가 조금 다르다. 요르단에서 나무바닥 있는 집을 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가능한 청소법이다. 바닥에 물과 세제 또는 바닥 청소용 액체를 뿌리고 잠시 기다리며 신발 자국을 비롯한 각종 때를 불려준다. 부엌에는 뚜껑을 열 수 있는 배수관이 있는데 청소를 위해 뚜껑을 미리 열어 둔다. 바닥 때가 잘 불려졌으면 스퀴지 밀대(고무로 된 청소도구로 물이나 기름을 닦을 때 사용, squeegee mop)로 가장자리부터 배수관 쪽으로 이동하면서 물을 흘려보낸다. 미끄러울 수 있으니 세제 없이 물만 뿌려 같은 행위를 한 번 더 반복한다. 배수구는 부엌에만 있지만 바닥에 때가 것은 다른 방도 마찬가지이므로 똑같이 물과 세제를 이용해 닦아준다.


  몇 시간 동안 쓸고 닦은 바닥은 반짝반짝하다. 내 눈에만 반짝거리는 것 같아 보이는 건가.


  요르단의 봄, 여름에 빨래하는 일은 꽤나 즐겁다. 한국은 여름에 비도 많이 내리고 습도도 높아 건조기 없이 빨래 말리기가 힘들다. 반면 요르단은 여름 내내 낮 기온이 35도가 넘고 비가 내리지 않아 자연 건조가 가능하다. 건물 내에 공용으로 쓸 수 있는 야외 빨래 건조대가 있어 여름에는 무조건 밖에 빨래를 널었다. 이불 커버는 매주 빨아줬는데 세탁 후 야외에 널어두면 1시간 안에 말랐다. 뜨거운 햇볕 아래 건조 된 이불에서는 따뜻한 여름 냄새가 난다. 밤에 잘 때 이불을 덮고 청소의 즐거움을 느낄 정도로 따뜻한 햇살향. 1년 내내 여름일 줄만 알았던 요르단에 가을이 왔을 때 눅눅해진 이불을 덮고 여름을 그리워했다.


 

*한국에서는 원목 바닥 청소 시 물청소를 하지만 나무가 습에 약해 바로 치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관문이나 타일이 있는 곳에서는 비슷한 방식으로 청소하지만 방 기준으로 이야기한 것.

  한국에서는 액체를 치울 때 대걸레를 이용하지만, 요르단에서는 무조건 스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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