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릿 Feb 21. 2024

이슬람 국가 요르단에서 돼지고기가 먹고 싶다면

돼지고기 정육점으로 갑시다

  요르단은 국가 율법에 따라 할랄과 하람이 있다. 돼지고기과 알코올이 포함되지 않은 식품과 음료를 할랄(Halal, حَلَال), 두 가지를 포함한 것 외에도 알라의 이름으로 도축되지 않은 고기, 마약 등을 하람*(Haram, حَرَام)이라 다. 금지되지 않은 것과 금지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는데 술과 돼지고기가 하람에 속해 구하기 쉽지 않고 값도 비싼 편이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술을 구하기 어려운 요르단에서의 생활이 오히려 좋았다. 회식을 할 일도 없고, 술 마시자고 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문제는 돼지고기. 1년 동안 살아야 하기 때문에 돼지고기 하나 정도는 참아보자고 결심했다. 애초에 고기보다는 생선, 과일, 채소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다. 내가 요리에 돼지고기를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반찬이 필요하면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사서 불고기, 제육볶음, 돼지고기 김치찌개 등을 요리해 먹었더라. 양, 소, 닭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돼지는 아니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하람(금지된 것)이기 때문이다.


  요르단 생활 3개월이 넘어갈 즈음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내 상황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돼지고기 때문에 짜증이 날 수도 있다는 것에 놀랐다. 처음 출근하고 회사분들이 돼지고기 살 수 있는 곳을 알려주었지만 "저 1년 간 돼지고기 안 먹고 지내보려고요."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3개월 뒤, 돼지고기를 살 수 있는 곳을 여쭤보고 돼지고기 정육점이 있다는 스웨피예 빌리지(Swefieh Village)로 향했다.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이 자주 이용하는 소고기, 양고기 전문점 미트 마스터(Meat Master) 맞은편에 있는 작은 가게였다. 돼지고기와 돼지고기 훈제(Pork Meat Gammon) 간판을 달고 있어 쉽게 찾았다. 매장 입구 우측에는 돼지고기 소시지, 베이컨 그리고 좌측에는 냉동 돼지고기가 있다. "삼겹살 있나요?(Do you have a pork belly?)" 여쭤보니 "삼겹살 있어요(We have 삼겹살)."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삼겹살을 한국어로 말하는 걸 보니 한국인이 자주 방문하는 것이 틀림없다. 조금 두껍게  삼겹살을 한 근 넘게 구매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래 돼지고기가 깔려있다.

  저렴한 가격도 아닌 데다가 보관도 잘 되지 않아 메마른 냉동 돼지고기. 오랜만에 돼지고기 김치찜을 끓여보았다. 아시아마켓에 한 달 뒤에나 입고된다는 귀한 비비고 김치를 한 팩 다 넣어서 끓였더니 과장 많이 보태 천상의 맛이었다. 육즙이 없어도 지방 부분은 쫄깃했고 얼마만의 김치찌개인지. 며칠 동안은 점심시간에 샤와르마나 햄버거를 시키는 대신 집에 가서 돼지고기 김치찜에 밥을 먹었다.


  돼지고기 못 먹어서 짜증 났던 마음을 돼지고기로 잘 달랬다. 재미있게도 이날 이후 돼지고기, 적어도 냉동 돼지고기는 더 이상 사 먹지 않았다. 1년간 돼지고기 없이 살아보기를 실패하나 싶었는데 돼지고기보다 더 맛있는 것을 찾았다. 요르단에 놀러 온 친구랑 관광객 필수 방문지 중 한 곳인 구시가지 레인보우스트릿에 있는 식당 수프라(Sufra Restaurant)에서 양고기 구이를 맛본 것이다. 양고기 구이(Lamb Cutlet)라고 적혀있었는데 양고기 특유의 냄새도 없는 데다가 어찌나 잘 구워냈는지 겉이 바삭 속은 육즙 팡팡이었다. 적당히 지방까지 있어서 쌈 싸 먹고 싶을 정도. 대신 한국의 김치처럼 식탁에 놓인 올리브를 꺼내 곁들여 줬다.


  수프라를 다녀온 후 돼지고기 대신 양고기를 찾아 먹었다. 정육점에서 양갈비(Lamb chop)를 사서 구워 먹으며 '환상적이야'하며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혼자 먹지 못하고 여기저기 알리는 성격의 소유자라 사람들을 초대해 양고기를 구워줬다. 다들 요르단에서 양고기 사 먹은 적 없다며 맛있게 먹었다. 돼지고기가 없었어도 대체할 것은 넘쳐나 행복했던 요르단 생활. 돼지고기가 먹고 싶은 분들 양갈비 한 번 드셔보세요. 미트마스터 양갈비 뉴질랜드산을 추천한다. 루마니아, 요르단 양갈비도 먹어봤지만 집에서 굽기엔 뉴질랜드 산이 딱이다. 한국에 와서는 맛있는 양고기 파는 곳을 찾고 있다.


*하람에는 이자 등으로 돈을 버는 고리업, 남에게 해악을 끼치고 재물을 얻는 것, 간통 살인 절도 행위 등이 있다.


덧붙이는 말

  요르단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으며 22년 기준 인구의 약 97%가 이슬람교 나머지 소수는 기독교이다. 국교가 이슬람교일 뿐 종교를 배척하지 않는다. 그래서 암만 인근 푸헤이즈(Fuheis)와 마다바(Madaba)에는 기독교 신자가 있어 이들은 돼지고기를 자유롭게 먹는다. 현지인 친구 S의 말에 따르면 기독교 동네에 가면 조금 더 신선한 돼지고기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슬람 신자들이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지만 마시는 사람은 잘 마시더라. 슈퍼나 대형 마트에서는 술 구매가 불가능하지만 곳곳에 주류 전문 매장이 있다. 고급 식당, 호텔, 외국인이 많은 곳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 술을 판매하기도 한다. 라마단 기간 현지인은 술을 판매하는 매장에 접근할 수 없는 듯하다. 외국인인 것을 확인하고 입장한 적도 있다. 주류 전문 매장은 라마단 기간 문을 닫지만 따로 연락하면 술 배달도 해준다.


요르단 암만에 있는 한국 식당(돼지고기 주문 가능)


인스타 구경하기: https://www.instagram.com/i_kiffe/

블로그 구경하기: https://blog.naver.com/kim_eyo  

이전 01화 요르단의 여름 과일을 소개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