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오래 사랑했던 그와의 이별 뒤에
인생의 충고들은 엉망이었다. 나와 또래인 조언자들은 “너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는데 무슨 나쁜 남자냐, 정신 차리고 지금 남자 친구나 잘 만나”라고 했고, 30대 중후반의 회사 선배들은 하나같이 “아직 어리니까 괜찮다, 마음 가는 데로 해”라고 했다. 사람들은 다 자기 관점에서 자기주장이 맞다며 떠들어댄다.
나는 눈에 눈물이 가득히 고인 채로 입을 떼려고 노력했다. 상처 주는 주제에, 울기는. 나쁜 년! 겨우 모기만큼 작게 말했다. “우리,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당당하게 말하려 했는데. “헤어지자”라고. 여지를 주면 더 힘들 것 같아서, 차갑게 말하려고 했는데. 내 목소리는 그가 들었나 싶을 정도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마치 그 이야기가 정말 내가 하려던 얘기가 맞는 양, 설명을 해댔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널 향한 내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 것 같다고. 내가 듣기에도 별 의미 없는 문장들을 읊어대던 내 앞에서 그 아이는 딱 한 가지 만을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거니? 네가 결정한 거야?” 나는 힘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한숨과, 정적이 우리를 괴롭혔다. 우리가 만나온 그 기나긴 시간에 비하면 끝나는 순간은 정말로 짧았다. 할 얘기는 끝났으나, 나는 발을 뗄 수가 없었다.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차로 돌아오는 데, 거리가 너무 낯이 익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낮에도 바로 이 동네 한의원에 들렀었는데. 4년 동안 사랑했던 그 아이와 헤어진 거리가 이렇게 낯익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제 전기, 가스 고지서들은 누가 챙겨주지. 이제 막 산 볼링공은 누구랑 연습해야 하나. 내가 제일 좋아하던 그 아이의 손. 다시는 못 잡겠구나. 정신이 다 나간 채로 운전대를 잡았다. 두 번째 신호등을 지날 때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 착한 아이였는데, 정말 나를 사랑해줬는데. 다시는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나에게 얼마나 잘 해주었냐 면, 내가 회사에서 3개월 동안 연수를 다녀올 일이 있을 때, 하필 이사 날짜가 맞지 않자, 작은 트럭에나 실릴만한 엄청난 내 세간을 손수 트럭을 불러 창고에 옮겨주고, 내가 돌아올 쯤에는 내가 살 집을 미리 계약해서 다시 짐을 옮겨놓아 주었다. 투덜대긴 했지만 진심으로 나를 원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아이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15분 뒤, 그 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손 잡아주지나 말지……” 그 말이 맞다. 하지만 그 아이의 들뜬 눈과 사랑스러운 볼을 본 순간 나는 와락 안기고 싶은 걸 참고서 손만 겨우 잡은 거다. 정말 이기적이다. 나쁜 년! 미안하단 말도, 정말 사랑했단 말도, 그 아이가 이미 알고만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답장을 하지 못했다.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정말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그 아이가 정말로 아플까 봐, 답장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일 것 같아서 손 잡고 싶었단 말은 내가 정말 나쁜 년 같아서, 답장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