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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Oct 07. 2016

인생의 충고들은 엉망이었다

가장 많이, 오래 사랑했던 그와의 이별 뒤에 

인생의 충고들은 엉망이었다. 나와 또래인 조언자들은 “너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는데 무슨 나쁜 남자냐, 정신 차리고 지금 남자 친구나 잘 만나”라고 했고, 30대 중후반의 회사 선배들은 하나같이 “아직 어리니까 괜찮다, 마음 가는 데로 해”라고 했다. 사람들은 다 자기 관점에서 자기주장이 맞다며 떠들어댄다. 


나는 눈에 눈물이 가득히 고인 채로 입을 떼려고 노력했다. 상처 주는 주제에, 울기는. 나쁜 년! 겨우 모기만큼 작게 말했다. “우리,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당당하게 말하려 했는데. “헤어지자”라고. 여지를 주면 더 힘들 것 같아서, 차갑게 말하려고 했는데. 내 목소리는 그가 들었나 싶을 정도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마치 그 이야기가 정말 내가 하려던 얘기가 맞는 양, 설명을 해댔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널 향한 내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 것 같다고. 내가 듣기에도 별 의미 없는 문장들을 읊어대던 내 앞에서 그 아이는 딱 한 가지 만을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거니? 네가 결정한 거야?” 나는 힘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한숨과, 정적이 우리를 괴롭혔다. 우리가 만나온 그 기나긴 시간에 비하면 끝나는 순간은 정말로 짧았다. 할 얘기는 끝났으나, 나는 발을 뗄 수가 없었다.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차로 돌아오는 데, 거리가 너무 낯이 익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낮에도 바로 이 동네 한의원에 들렀었는데. 4년 동안 사랑했던 그 아이와 헤어진 거리가 이렇게 낯익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제 전기, 가스 고지서들은 누가 챙겨주지. 이제 막 산 볼링공은 누구랑 연습해야 하나. 내가 제일 좋아하던 그 아이의 손. 다시는 못 잡겠구나. 정신이 다 나간 채로 운전대를 잡았다. 두 번째 신호등을 지날 때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 착한 아이였는데, 정말 나를 사랑해줬는데. 다시는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나에게 얼마나 잘 해주었냐 면, 내가 회사에서 3개월 동안 연수를 다녀올 일이 있을 때, 하필 이사 날짜가 맞지 않자, 작은 트럭에나 실릴만한 엄청난 내 세간을 손수 트럭을 불러 창고에 옮겨주고, 내가 돌아올 쯤에는 내가 살 집을 미리 계약해서 다시 짐을 옮겨놓아 주었다. 투덜대긴 했지만 진심으로 나를 원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아이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15분 뒤, 그 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손 잡아주지나 말지……” 그 말이 맞다. 하지만 그 아이의 들뜬 눈과 사랑스러운 볼을 본 순간 나는 와락 안기고 싶은 걸 참고서 손만 겨우 잡은 거다. 정말 이기적이다. 나쁜 년! 미안하단 말도, 정말 사랑했단 말도, 그 아이가 이미 알고만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답장을 하지 못했다.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정말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그 아이가 정말로 아플까 봐, 답장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일 것 같아서 손 잡고 싶었단 말은 내가 정말 나쁜 년 같아서, 답장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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