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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Sep 30. 2021

동심을 달래는 착한 '깍두기룰'

깍두기

「1」 무를 작고 네모나게 썰어서 소금에 절인 후 고춧가루 따위의 양념과 함께 버무려 만든 김치. ≒홍저.

「2」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이나 그런 신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깍두기의 사전적 의미다. '오징어게임'을 본 사람들이라면 깍두기에 대한 의미를 새삼 곱씹었을 것이다. 소외된 약자를 버리지 않는다는 '깍두기룰' 덕분에 한미녀는 죽지 않았다. '오징어게임'의 네 번째 게임을 앞두고 두 사람씩 짝을 지으라는 주최측의 명령에 한미녀만 짝꿍을 정하지 못했다. 전체 인원이 홀수였으므로 한 사람은 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짝을 정한 참가자들은 게임을 하러 입장하고 뒤에 남겨진 한미녀는 비명을 지르며 감시자들에게 끌려갔다.  

네 번째 게임은 구슬치기였다. 그곳에서 친해진 사람과 짝을 이룬 팀들은 둘 중 한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말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다. 결국 승패는 결정나고, 이긴 사람만 살아남아 숙소로 돌아오니 그곳에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한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미녀는 모두에게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소외된 약자를 버리지 않는 게 옛날 아이들이 놀이할 때 지키던 아름다운 규칙이라며 그들이 살려줬다고.

당연히 한미녀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TV 속 사람들이나 TV 밖 사람들의 머리를 한 대 후려친 반전이었다. 나 역시 한미녀가 죽었다고 생각했다가 '깍두기룰'을 부르짖는 한미녀를 보고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그동안 한결같이 비호감이었던 한미녀에게 친근감마저 느껴졌다. 

나도 어린 시절 깍두기를 도맡아 한 적이 있다. 어릴 때 친구들이 별로 없었는지, 아니면 언니랑 같이 놀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보다 네 살 많았던 언니를 그렇게 따라다니며 귀찮게 했다. 나를 매몰차게 떼놓지도 못하고(엄마한테 혼나니까), 그렇다고 나까지 데리고 다니며 친구들하고 놀 수 없었던 언니는 일단 나를 언니와 친구들 무리에 끼어주었다. 깍두기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언니와 친구들은 깍두기인 나와 몇 번 숨바꼭질을 하다가 내가 술래가 되어 "하나, 둘, 셋.."을 세는 사이에 어디론가 다 가버렸다. 열까지 다 센 나는 눈을 뜨고 언니와 친구들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고, 혼자 남은 나는 엉엉 울었다. 

그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도, 매번 나는 언니와 친구들이 같이 놀아준다는 사실이 기뻤기 때문인지 기꺼이 깍두기가 되어 놀았다.

그때는 그저 잘 못하고 나이 어린 아이를 인심쓰듯 게임에 끼어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외된 약자를 저버리지 않는 옛날 아이들의 아름다운 규칙이었다니,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어린 시절 깍두기를 도맡아 했던 입장에서 말하면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깍두기라도 되어 놀이에 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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