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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 대한 오마쥬-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괴도 박둥둥의 월급루팡 도서리뷰

by 박둥둥


요즘 <대온실>로 화제의 중심에 있는 작가 김금희의 단편이다.

내가 이 작가의 작품 중 먼저 접한 건 <경애의 마음>이라는 작품이었는데 그때 내가 받은 인상은 한마디로 '노련하다'는 느낌이었다.


글쓰기 외에도 인생 전체에 관해 마치 아주 익숙한 것처럼, 자주 쓰는 공구함의 공구를 놀리듯 지나가는 매일을 사용하여 하루하루 채워가는 사람이라는 게 <경애>를 읽었을 때의 감상이었다.


그래서 <한낮>은 젊고 미숙한 연인의 내용이라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미숙함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고 표현하는 건 젊은 작가라 그렇겠지 하고 작가소개를 봤더니 <경애>의 그 작가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 이력 전체를 찾아봤다. 아니, 나는 이미 <페퍼로니>도 보고 (심지어 알라딘에서 준 우산도 쓰고 있었다) <체스>도 보고 다른 것도 몇 개 읽었는데 머릿속에서 그게 한 작가 김금희의 것이라고 드디어 합쳐지게 된 것이었다.


문학에는 진짜 아버지 찾기 모티프처럼 진짜 어머니 찾기 모티브도 있다.

매일매일 삶에 급급한 저 아버지가 내 친아버지일리가 없다며, 어딘가 있는 친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게 아버지 찾기라면, 어머니 찾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친어머니 찾기가 주제가 된다.


그 어떤 여자를 만나도, 그 얼마나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도, 마음속 아름다운 어머니에 비하면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그래서 어머니 찾기의 주인공들은 어머니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에게는 무섭게 분노를 표출한다. 다들 읽었을 황순원의 <별> 이 여기에 해당하는 스토리라면, 김금희의 <한낮>은 이에 대해 밤의 시간을 한낮으로 돌린 멋진 패러디다.


<별>의 플롯은 언제나 나를 받아주고 용서해 주는 누나가 실은 나의 컨트롤 아래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아득히 넘어서는 존재, 오히려 나를 컨트롤하는 큰 존재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는 구조이다. 누나에게 막말을 하고 일부러 누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짓만 골라해도 나를 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던 누나는 실은 넉넉하게 나를 지배하는 더 큰 존재임이 점점 드러나는 구조인 것이다.


김금희의 <한낮>은 여기에 사랑이라는 변수를 더한다.

화장 안 한 맨얼굴, 낡은 옷을 도저히 가릴 수조자 없는 한낮의 두 사람, 필용과 양희.

나의 연인,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너 같은 여자일리 없다는 필용의 강한 부정이 이어질수록 오히려 그의 마음에서 양희는 지배권을 넓혀가고,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양희 앞에서 필용은 햇살 아래 가난도 부모도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 추하고 성스러운 양희를 재확인한다.


마치 그녀 자신처럼 공란으로 비어있는 연극을 보며 필용은 어떤 것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으로 잠겨있는 것‘이냐 묻고 싶어 한다. 말 그대로 어머니는, 어머니가 부족하고 추한 존재라는 사실은 마음속에 잠겨 있을 뿐 아무리 없다 부정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별>이 밤의 아름다움과 모호함을 빌어 누나와 어머니가 별로 상징되는 아름다움의 세계로 결국엔 흡수되는 듯 그렇지 않은 듯한 열린 결말을 보여준다면 <한낮>은 그런 낭만성으로 숨길 수 없는 현실성이 그린다. 그러나 이 남루함이 드러나는 한낮의 시간은 그래서 매우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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