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운동과 영화, 책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한 시간
지난 주말은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일상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새벽에는 운동을 하고 낮 시간에는 아이와 함께 수영과 물놀이, 카페 데이트. 그리고 틈날 때마다 책을 읽으며 한가한 주말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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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새벽에는 과천 관문체육공원 트랙에서 달렸습니다. 천천히 웜업을 하고, 1000미터 3분 20초 페이스로 4세트. 400미터 76초 페이스로 4세트입니다. 혼자 했다면 중간에 멈추고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합리화했을 텐데, 다른 분들과 함께 달린 덕분에 끝까지 달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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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에서 달리며 몸의 무게중심을 올려 몸을 띄운 채 ‘유지’하는 감각에 집중했습니다. 흔히 사이클은 신체 무게중심을 낮추는 운동, 러닝은 무게중심을 올려 몸을 띄우는 운동이라고 합니다. 제가 놓치고 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착지와 도약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러닝 동작에서 저는 도약 부분에서만 몸을 띄우는 것에 집중을 했었는데,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착지 단계에서도 몸을 띄우고 있지 못하면 둔근, 허벅지 근 등에 부하가 걸리며 경기 후반부로 갈수록 피로가 급격하게 쌓이고 하체의 탄력이 저하되기 때문입니다. 달리기를 폴짝폴짝 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내 머리 정수리를 잡아당기고 ‘올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달려야 합니다. 마치 다리는 대롱대롱 매달려서 앞으로 가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하면 고관절 각도도 확보되어 다리가 훨씬 수월하게 움직입니다. 최근 읽었던 <다니엘스의 러닝 포뮬러>에서 읽었던 구절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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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착지의 충격을 줄일 수 있을까? 간단히 말하면 한 걸음 한 걸음 바운딩하지 말고(뛰어오르지 않고) 마치 지면을 구른다는(롤링) 생각으로 달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몸은 양다리의 위쪽으로 떠오르듯 움직이게 된다(굴러가게 된다).”
저는 그동안 뛰어오르며 바운딩하듯 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야 롤링의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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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느긋한 아침 식사를 하고 낮에는 아이와 함께 수영장에 갔습니다. 어느덧 유아풀보다 성인 풀이 더 좋다며 자기 키보다 더 깊은 물속에 풍덩 들어갑니다. 아이와 함께 수영을 하면 ‘기술’ 면에서도 저에게 좋은 점이 있습니다. 요즘 수영을 하며 물을 잡고 당겨서 밀어내는 감각에만 집중하다 보니 수영할 때 가장 기본인 ‘몸 띄우기’ 감각에 소홀하기도 한데요. 아이는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시킨 것도 아닌데 저절로 몸을 띄웁니다. 저처럼 보통의 수영 초보 어른들은 항상 가라앉고 띄우질 못해 문제입니다. 신기하게도 아이가 물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며 따라 하기만 해도 나 자신의 감각 또한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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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마치고는 이 동네에서 유명한 집 근처 빙수 집에서 팥빙수 2개를 포장했습니다. 집에서 아내와 아이랑 함께 먹는데 정말 맛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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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새벽에는 거실에서 사이클 트레이닝을 했습니다. 운동 훈련이 목적이기도 했지만 안장 위치와 각도, 에어로 핸들 바 위치를 조절하며 내 몸에 맞추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로라 트레이너에 사이클을 연결하여 페달을 돌리며 작년에 이어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스포츠 다큐멘터리 <투르 드 프랑스> 시즌 2 시리즈 영상을 봤습니다. 올해 투르 드 프랑스 레이스가 토요일부터 시작되었는데, 딱 좋은 타이밍에 나왔네요. 시즌 2는 시즌 1보다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현재 세계 최고의 사이클리스트 라이벌인 타데이 포가차와 요나스 빙에고르의 인터뷰와 장면들이 훨씬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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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상은 작년 레이스 때 촬영된 것이다 보니 이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 숨겨진 이야기들, 최고의 레이스에 참가하는 선수들과 스텝들에게 이 대회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속 사정들을 알 수 있으니 더 몰입하게 되고 더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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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빙에고르의 2연패로 막을 내린 작년 투르 드 프랑스 레이스 내용도 재미있었는데, 21개 스테이지를 전체 8회 분량에 담아낸 영상들 중에서 저는 6회, 스테이지 17 내용이 유난히 인상 깊었습니다. 스테이지 17은 가장 난도가 높은 오르막 코스로 설계된 퀸 스테이지였습니다. 하루 전 스테이지 16 타임트라이얼 코스에서 요나스 빙에고르가 타데이 포가차르를 압도하며 승부를 결정지었는데, 다음 날 17에서도 두 선수는 접전을 펼쳤고 전 세계 사이클 팬들을 흥분시켰던 것으로 아직도 기억합니다. 넷플릭스로 다시 보니 그때가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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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스테이지 우승은 AG2R 시트로앵 팀의 펠릭스 갈 선수였는데, 저는 이걸 기억도 못 하고 있었거든요. 넷플릭스를 보며 뒷이야기들을 보니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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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2R 팀은 호주 출신 벤 오코너 선수를 리더로 투르 종합 포디엄을 노렸던 팀인데, 감정 기복이 심함 벤 선수가 투르 초반부터 무너지며 단 한 번의 스테이지 우승도 못할 위기에 처합니다. 90년대 이후 투르 드 프랑스에서 단 한 번의 스테이지 우승도 못한 적은 없었던 AG2R 팀 투르 중반 리더를 벤 오코너에서 오스트리아의 펠릭스 갈 선수로 교체합니다. 종합 순위 기록에서 도움 선수(도메스티크)였던 펠릭스 선수 기록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도움 선수였던 펠릭스 갈은 리더로, 리더였던 벤 오코너는 도움 선수로. AG2R 팀으로서는 유일하게 스테이지 우승 가능성이 있던 17 퀸 스테이지였는데, 레이스를 앞두고 팀 디렉터(감독)은 선수들을 독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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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잠시고 포기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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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대로 스물다섯 살의 오스트리아 펠릭스 갈은벤 오코너의 도움을 받아 ‘라 로즈’ 오르막을 고통을 견디며 오르고 모두의 예상을 깨며 우승을 차지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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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영향 때문인지 올해 투르 드 프랑스 공식 유튜브 채널의 스테이지 하이라이트 영상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굉장히 잘 만들었습니다. 웬만한 다른 중계 사이트(유로스포츠 등) 채널 하이라이트 영상보다 훨씬 좋더군요. 올해 시즌엔 대회 공식 채널 하이라이트를 자주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매 영상마다 서사가 들어가 있고, 음악과 편집 또한 경기 종료 후 몇 시간 만에 뚝딱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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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uwciJx9ZkE?si=zmYGQiJ2JxN-fZ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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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_VZoewWaH8?si=w8yb4BzknLzBQ7-4
올해 투르 드 프랑스 또한 첫 스테이지에서 노장의 호맹 바흐데가 첫 투르 스테이지 우승을 차지하는,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했습니다. 이번 투르는 제가 응원하는 타데이 포가차가 다시 우승할 수 있을지, 요나스의 3연패 일지 그 결과가 무척 기대됩니다. 내년에 공개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는 벌써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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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사이클 운동을 마치고 낮에는 아이와 함께 <인사이드 아웃 2> 애니메이션을 봤습니다. 용산 CGV에서 아이와 둘이 오랜만에 영화 데이트를 하니 즐거웠습니다.
‘기쁨’의 감정뿐만 아니라 ‘슬픔’의 감정도 받아들일 때 아이가 더 단단해질 수 있었던 1편의 이야기처럼 ‘좋은 기억’만이 아니라 당황, 불안, 따분, 부러움의 감정들 또한 경험하고 쌓아가며 신념과 자아를 만들어갈 때 주인공 라일리가 더욱 라일리 다워진다는 내용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저는 몰입하고 이입하며 눈물이 나기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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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 아이가 잠자리에 들 때에는 아이가 직접 골랐던 <말들이 사는 나라> 책을 읽었습니다. 항상 좋은 말, 착한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나쁜 말, 화난 말도 하면서 그것들을 나의 말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아이는 더 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운동 영화 책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이 좋았던 주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