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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수술과 퇴원 후 로마마라톤을 신청하였다.

2026년 로마마라톤은 색다른 가족 여행이 될 것이다.

by 아이언파파

한 달 전 아내가 건강검진을 하였다. 의사 선생님은 더 큰 병원으로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큰 병은 아니지만 입원과 수술은 필요할 것이라 하였다. 큰 병은 아니라는 위안보다 입원과 수술이 필요하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겁이 났다. 아내는 건강을 타고난 사람이다. 나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지는 것 같았다.

아내는 아이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여차하면 딩크족으로 살 의향도 있는 사람이었다. '유전자적 후손'에게 집착하는 남자 종족의 특성인지 교육과 환경 때문인지 나는 아이를 줄곧 원했다. 뒤늦게 아이를 가졌다. 아내는 전치태반으로 고생하였다. 수십 년 전이었다면 산모도 아이도 죽을 상황이지만 현대 의학 덕분에 무사히 출산하였다. 출산 전후 과정에서 보여준 아내의 모성애는 놀라웠다. 태반이 밀리고 눌리며 출산 예정 두 달 전부터 하혈을 하고 의사 선생님은 힘들 테니 이제 그만 낳자고 했지만 아내는 일주일 만이라도 더 뱃속에 태아를 담아두었다가 낳겠다며 버텼다. 매일매일 미안함과 고마움이었다. 나는 한 달 동안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아내와 함께 병원에서 살았다. 아내를 보며 많이 울었다.

이번에도 자궁과 난소가 문제였다. 수술을 집도할 의사 선생님은 간단한 수술이라며 설명하셨지만 수술은 수술이라 나는 무서웠다. 3박 4일 입원 일정이었다. 역시 나는 하던 일을 모두 멈추었다. 다만 아내 옆에 있을 수는 없었다. 코로나를 계기로 입원 환자의 간호와 면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내 옆에 머무는 대신 매일 아침 아이의 등교 준비와 하교, 학원 일정을 함께 했다. 아이가 학교에 있는 오전 시간 동안 매일 병원에 가서 아내와 면회하고, 수술을 기다리고, 퇴원 수속을 하였다. 모든 질병이 그렇듯 발병 원인을 콕 집어낼 수는 없다. 다만 여러 요인 중 '노산'이 원인일 수도 있다는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역시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수술을 마쳤을 때부터 퇴원할 때까지 창백한 얼굴로 기운 없는 아내 모습을 보며 나는 또 많이 울었다.

수술을 잘 마쳤다. 회복도 잘 되고 있다. 다음 주쯤 외래 진료를 한 번 더 해야 하고, 이후에는 주사 맞고 약 먹으며 관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대학생 시절 아내는 친구와 함께 한 달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몇몇 나라를 다녀왔는데 아내는 특히 이탈리아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베니스가 좋았다고 한다. 아내는 그때 그 여행의 추억을 아직도 종종 얘기한다. 작년부터 나는 가끔 "유럽 한번 갈까? 아이도 어느 정도 커서 이제 휴양지뿐만 아니라 그런 여행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얘기하곤 했다. 아내는 가고 싶다며 맞장구를 하면서도 현실의 벽 때문에 망설이곤 하였다. "이제 아이 학원도 더 다녀야 할 텐데", "지금 우리 형편에 너무 무리는 아닌지". 대화는 매번 그렇게 흐지부지 아무 결론도 없이 희망 사항만 늘어놓으며 끝나곤 하였다.

이번 아내의 수술과 입원을 겪으며 더 이상 하고 싶은 것을 미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도 아니고 비현실적인 목표도 아니니까.

나의 욕망과 아내의 추억과 아이의 견문을 위해 적당한 결론을 나 혼자 내렸다. 로마마라톤을 신청하였다. 내년 3월이다. 서울마라톤을 마치고 일주일 뒤 시점이다. 먼저 신청하고 아내와 아이에게 통보하였다. "우리는 내년 3월 이탈리아 간다. 그렇게 알아라."

결혼 후 여행을 갈 때 항상 아내가 준비하였다. 휴양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숙소와 식사에 대한 취향은 결국 아내의 의견을 따를 될 수밖에 없었다. 굳이 내가 준비할 필요도 못 느꼈다.

내년 로마마라톤 겸 이탈리아 여행은 내가 계획을 짤 예정이다. 몇 달 전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인상 깊게 읽어 마음 같아서는 괴테 루트로 여행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로마, 나폴리, 피렌체, 베니스, 돌로미테 등 시간과 예산이 허락하는 내에서 최대한 고민해 볼 생각이다.

2026년 3월 22일 로마마라톤. 서울마라톤을 마치고 일주일 뒤 일정이다.

https://www.runromethemarath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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