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2025년 10월 17일
아이의 운동회
아이의 첫 운동회. 예전에도 운동회를 했지만 그건 유치원 때이고, 초등학생이 되어 제대로 된 운동회는 처음이다. 아이는 별생각이 없는데 아빠인 내가 괜히 설레고 기분은 들떴다. 부끄럽지만 다 큰 어른이 의젓한 아빠 흉내조차 내지 못하고 전날 잠까지 제대로 못 잤다. 몸은 이불 속에 담갔지만 머릿속으로는 초등학교 때 운동회 추억이 계속 재생되었기 때문이다.
운동회는 9시 시작이고 8시 50분 이전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공지를 확인했다. 아이 운동회라 오늘 일을 안 하니 새벽 운동 시간에 조금 여유 있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큰 착각이다. 온 가족이 함께 나서야 해서 평소보다 더 일찍 더 분주하게 준비해야 한다. 새벽 조깅은 평소와 다름없이 마쳐 7시 이전에 집으로 돌아왔고, 아침 자유 수영은 결석.
동네 참 좁다. 아파트 단지에서 초등학교는 딱 한 군데. 처음 여기 이사 와서 터를 잡았을 때 적당히 점잖은 사람들 사는 곳에서 타향 사람인 나로서는 익명성이 보장되었다. 남 눈치 볼 일이 없었다.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에는 그나마 나았다. 어린이집 일로 학부모들을 만날 일은 좀처럼 없으니까.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며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가끔 등 하원 때 아이랑 함께 하고, 유치원 행사에서 종종 얼굴을 비추니 자연스럽게 주변 아이들 부모들과 인사하게 되었다. 동네에 점점 아는 얼굴이 많아졌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를 지나가도 누군가 나를 알아보는 학부모를 만난다. 무시무시하다. 오늘 부모들이 앉아 있는 응원석을 힐끗 둘러보니 온통 집 근처 어디선가 마주쳤던 얼굴들이다. 식당 카페 편의점 문화센터(체육센터) 학교 앞.
이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냐면, 여름에는 짧은 러닝 반바지(쇼츠), 겨울에는 러닝 타이즈를 입고 동네 돌아다니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여름 반바지는 그나마 낫다. 러닝 타이즈, 특히 남자가 입는 타이즈는 사람들이 용납할 수 없는 것. 날씨는 추워지고 타이즈를 입어야 하는 계절인데 이거 어떡하지. 새벽 일찍 운동하러 나서고 해 뜨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지. 그게 최선이다.
(저학년의 경우) 오전에 운동회를 모두 마치고 학부모들은 귀가, 12시 정각부터 아이들 다 같이 점심 급식을 먹고 오후 1시에 하교한다. 하교 시간에 맞춰 부모들이 데리러 가면 된다. 함께 급식 먹는 운동회, 좋다. 마음에 든다.
어릴 적 나의 운동회는 가족의 잔치였다. 사업 때문에 바빴던 나의 부모님을 대신해 손자를 직접 맡아 키워주셨던 외할머니도 왔고, 대입 재수생으로 공부를 위해 우리 집에 머물던 사촌 누나까지 참석하기도 하였다. 통닭 탕수육 잡채 김밥 등 메뉴 구성은 어딘가 촌스럽지만 당시에는 호화 진수성찬이었다.
그때 식사는 교실에서 가족끼리 모여 앉아 먹었다. 내 건너편 분단(요즘 학교에는 분단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것 같다.) 맞은편 자리에는 통통한 체구의 P가 있었다. 할머니와 둘이서 조용히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맞벌이 부모님이 바쁜 탓에 함께 못한 것인지, 조손가정인지 알 수는 없다. 조손가정이 있어도 낯설지 않은 학교였다. 특별히 부자동네도 낙후된 동네도 아니었지만 그 시절이 그랬다. <달려라 하니>, <아기공룡 둘리> 같은 만화에는 왜 그렇게도 유독 엄마나 아빠가 없는 주인공이 자주 등장하는지 불만이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세태를 반영한 것이었다. 대가족은 핵가족으로 해체되어가고 전통적인 가족관도 깨지고 있었다. 이혼한 부모, 집 나간 부모 아래 자란 아이들이 크게 생소하지 않았다. 차라리 요즘에는 결혼과 출산 자체를 하지 않으니 그런 가정이 줄어든 것일까? 아니면 타인의 이목이 두려워 숨기다 보니 좀처럼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일까? 고등학생이 되어 어느 날 우연히 친구에게 듣길, 조용하고 통통했던 P가 살이 쏙 빠지고 키는 많이 커진 데다 성격도 쾌활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괜히 내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나 혼자만의 부채감을 털어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J도 초등학교 6학년 같은 반에서 만났다. 중학교 때 잠시 옆 학교로 떨어져 있었지만 고등학교 때 1, 2, 3학년 내리 같은 반이었다. 초등 때 처음 만나자마자 급속도로 친해졌는데, 둘 다 게임 마니아 키즈였다. 닌텐도 슈퍼패미컴, 세가 새턴과 네오지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에 둘 다 정말 환장했었다.
같은 대학은 아니었지만 함께 상경하였다. 요즘 대학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텐데 신입생 시절 심심하면 우리는 수업을 땡땡이쳤고, 그럴 때마다 J와 만났다. 주말 고향 대구에 내려갈 때에도 함께 기차를 탔다. 그때는 KTX가 없었다. 매번 새마을호 타기에는 돈이 아까웠다. 무궁화호에는 입석표가 있었다. 단돈 9천 원. 4시간이나 걸리는 고생길이지만 맨 뒷좌석 뒤 작은 공간에 자리 잡고 함께 얘기하다 보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어느덧 동대구역에 도착하였다.
처음 봤을 때 의아했다. J는 항상 담임 선생님과 손을 꼭 잡고 등교를 하였다. 저학년이면 모를까, 고학년이 되어도 어른 손을 꼭 잡고 등교하는 아이라니. 그것도 선생님과 함께. '선생님에게 특혜에 가까운 사랑을 받는 아이구나.' 정도로 생각하였다. 나중에 같은 반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J는 엄마가 없었다. 너무 나이 어렸던 엄마는 양육의 부담 때문인지 출산 직후 이혼하였다. 아빠도 집을 나갔다. J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조손가정이었다. 아빠와는 스무 살도 차이 나지 않았다. 철이 들기 전에 아이를 얻은 아빠는 아이를 낳고서도 철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무리한 사업을 한 것인지 사기를 당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들의 명의를 빌려 금융 거래를 하고 일을 벌였던 J의 아빠는 제대로 수습하고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J는 사회생활을 제대로 시작하기 전부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치명적인 신용불량의 낙인을 얻은 채 대학 생활을 이어갔다. J는 다행히 밝음을 잃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잘 생긴 외모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아무나 사고 칠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다. 사진 속 J의 아빠 엄마는 굉장한 미남 미녀였다. 덕분에 J 또한 외모가 매우 탁월했다. 사람 겉모양에 대해서는 개인 취향이 다르겠지만 키가 크고 피부도 밝을 뿐만 아니라 눈망울이 크고 또렷한 J의 별명은 '사슴'이었다. 옷 입는 감각도 뛰어나고 취미와 취향도 세련되었다. 아주 잠깐 비행 청소년의 길로 엇나갈 뻔했지만 자기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영어 강사를 하였다. 훤칠한 외모 덕분에 학생뿐만 아니라 상담하는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누구랑 함께 살지 않는 것인지, 어릴 때는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놀 때 재미있으면 그만이니까. 가족 구성원에도 평범과 보통의 기준이 있고 그것이랑 다를 때에는 뭇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재회한 우리는 역시나 그렇듯 다시 친하게 지냈다. 초등학교 때 친했던 건 게임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는 고등학생 때 다시 만나도 여전히 친했다. 인간관계에는 중력의 힘처럼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 J와 나를 포함하여 절친 무리가 만들어졌다. 어른이 되고서야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게임이 아니라 각자의 크고 작은 가정의 결핍 때문에 죽이 맞고 결이 같았던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J와 그렇게 친했지만 운동회 때 기억이 없다. J는 운동회 때 보이질 않았다. 운동회만이 아니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식 때도 J의 기억이 없다. 가족과 함께 하는 학교 행사에는 나오지 않았다.
아이의 운동회. 해맑게 웃고 떠드는 아이들과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학부모들을 보며 문득 J가 떠올랐다. 생일 때 선물도 주고받을 정도로 여전히 친한 친구이지만 어쩐 일인지 올해는 연락이 뜸했다. 사실 나의 생활이 일, 독서, 운동, 가족으로 단순화되면서 내 일상에 친구들의 자리가 점점 없어졌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니 가끔 연락 오던 친구들도 소식이 끊기다시피 되었다. J에게 전화하였다. 솔직하게 말했다.
"이야, 오랜만이다! 잘 지내고 있나? 그렇게 친구 좋아하던 내가 이럴 줄은 나도 몰랐다. 내가 요즘 운동에 미쳐서 친구들한테 통 연락 안 한대이. 그런데 니는 초등 때부터 봐서 그런지 오늘 애 학교에 갔더니 니 생각나더라고. 잘 지내고 있제?"
다행히 잘 지내고 있단다. 강남 대치동처럼 입시 학원들이 모여있는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자기 학원을 차렸고, 자영업자의 고충을 체험하고 있다며 웃으면서 얘기했다. 요양원에 계신다던 할머니는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느 날 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인연을 끊고 있던 아빠가 고독사했다는 소식이었다. 수습했다고 한다. 덧붙여서 연락이 뜸했던 기간 동안 마음 잘 맞는 이성을 만나 함께 하고 있다고. 며칠 전까지 연락을 주고받은 것처럼 여전히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나중에 대구 내려가면 연락할게, 빈말 아니니 꼭 한번 보자. 당연히 술 따위는 안 마시고 커피 한잔하면서"라며 전화를 끊었다.
고뇌하는 존재는 모두 살기를 꿈꾼다고 니체가 말하였다. 보통의 사람들이 봤을 때에는 도저히 제대로 살기 어려울 것 같지만, 쪼그라들 것만 같은 결코 자아를 잃지 않고 자기 삶의 확장을 고뇌했던 친구이고 자신의 방식대로 잘 살아가고 있어 오랜만의 통화가 반가웠다. 어릴 적 운동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친구지만 이제 언제 어디서든 자주 볼 수 있길. 고향에 갈 시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