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소 지구력 운동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우리 팀은 겨울 동안 코치님에게 그룹 레슨을 받아왔다. 지난 주말은 마지막 강습일이었다. 매 시간 유익하고 즐거웠지만 마지막 시간의 내용은 특히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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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릴 때 몸과 다리에 힘을 빼고 착지가 이루어지는 감각에 대한 것이었다. 실제 달리기를 할 때 의도적인 힘을 가해 다리를 내려 착지를 ‘시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몸에 힘을 빼고 다리가 자연스럽게 떨어져 착지가 ‘되도록’ 하는 느낌. 그리고 발이 지면에 닿자마자 착지 후의 반발력을 이용해 탄력으로 전진하는 원리와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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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내용을 배우고 다시 한번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코치님이 러닝 레슨 시장이 전무했던 시절부터 개척하듯 클래스를 운영해 오면서 이제 티칭 능력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우리나라 최고의 코치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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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배웠던 착지의 느낌은 흔히 얘기하는 ‘동물적 감각’의 영역이었다. 그런 감각을 해석하여 말로 풀이하며 설명하고, 그런 감각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부분동작을 구분하여 반복 실행하는 드릴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종목을 불문하고 스포츠 레슨 영역에서 최고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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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라톤과 철인 3종 이전 스키와 MTB를 즐겼었다. 둘 다 전체 이용자 규모의 시장은 작지만 골수 마니아들이 형성되어 있어 의외로 레슨 산업은 발달된 종목이었다. 당시에도 몇몇 수강생들은 말했었다.
“김정훈 데몬스트레이터는 알파인 국가대표 출신이잖아. 그리고 챔피언이야. 출신 성분 자체가 다르고 동물적 감각이 타고났거든. 우리 동호인들이 따라 할 수 없어. 선수 출신들은 우리가 노력해도 못 하는 걸 이해 못 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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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학 감독 대단하지. 그런데 국가대표 출신이고 국가대표팀 감독도 했던 사람이잖아. 그냥 원래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야. 우리랑은 달라. 타고난 사람이라서 우리가 배워봤자 그렇게 안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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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 그분들은 나에게 최고의 운동 스승들이었다. 그리고 본인이 선수 시절에 느끼고 생각했던 감각과 기술들을 항상 말과 동작 시범으로 잘 설명해 주었다. 충분히 이해되도록 쉽고 간결하게. 동물적 감각이란 것조차도 설명이 가능하고 배움과 학습이 가능하다. 아니, 사실 어쩌면 운동에 있어 타고난 신체 조건이란 것은 있을지 몰라도 동물적 감각이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재능과 더불어 반복된 학습을 통한 후천적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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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빼고 착지하는 것은 한번 더 기다리는 것과 같았다. 이전에 나는 달릴 때 착지하자마자 다리를 당기고 몸을 띄워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몸을 띄운다’가 내 마음속 우선순위였는데, 몸을 띄운다는 다음 동작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니 이전 동작인 착지에서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서둘러 다리를 내려 착지시키고 있었다. 발을 지면에 찍어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배운 내용은 내가 해오던 것과 정확히 반대였다. 의도와 의식적인 동작을 통해 발을 지면으로 내려서 착지시키지 않는다. 발이 공중에 있는 상태일 때 한번 더 기다려준다.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발이 내려온다. 지면에 탕! 하고 착지되며 반발력으로 발이 튀어 오르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간다. 유산소 지구력 종목은 시간과 거리가 길어질수록 매 동작마다 얼마나 힘을 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피니쉬 직전까지 힘과 에너지를 아끼고 아끼며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번 더 기다려준다. 힘을 뺀다. 에너지 소모를 줄인다. 끝까지 힘써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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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는 스키판이 가지고 있는 회전반경을 이용하여 적절한 시점에 눌러서 턴을 만들고 적절한 시점에 풀어서 리바운드를 이용해 가속해 나아가는 운동이다. 게이트를 통과하는 알파인 종목이든 다양한 설면에서 퍼포먼스를 측정하는 기술선수권대회 종목이든 스키를 타는 원리는 같다. 무중력 뉴트럴 구간을 통과하자마자 턴의 초반 부분에서는 무게중심 이동만 이루어지고 기다려줘야 한다. 자연스럽게 턴이 시작되고 경사 아래 방향으로 떨어질 때, 최대경사선 폴라인(fall line)에서 스키판에 몸을 실어 누른다. 스키판이 휘어지며 날카로운 턴이 만들어진다. 턴이 종료되어 반대방향으로 나아갈 때 스키판을 풀어준다. 강한 리바운드가 발생되고 그 튕겨나가는 힘을 이용하여 무중력 뉴트럴 구간동안 앞으로 쭉 나아간다. 다시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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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조작이 서툰 사람들은 기다리지를 못 한다. 폴라인에 다다르기 전에 다음 턴을 서두르다 보니 회전 안쪽 스키판에 몸을 기대어 버린다. 원심력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회전의 바깥 스키를 눌러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엉거주춤한 자세로 미끌어지듯 방향만 전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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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는 이것이 전부이다. 관광 스키어뿐만 아니라 헤르만 마이어도 마르셀 히르셔도 그리고 린지 본을 넘어 현생 일류 최고의 스키황제인 미카엘라 쉬프린도 기다려서 스키를 누르고 기다려서 스키를 풀어주는 0.001초의 차이로 다른 턴을 만들어내고 다른 기록 다른 순위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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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특히 장거리 수영 종목 또한 마찬가지이다. 롤링이 끝나고 몸에 힘을 빼면 중력에 의해 몸이 다시 떨어져 수평이 될 때 킥을 차면서 나머지 회전을 가속시키고 몸을 감아 롤링을 만들어낸다. 대부분 몸에 힘을 빼고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지를 못 한다. 킥을 차면서 롤링을 시작한다. 다리는 벌어지고 저항이 걸린다. 저항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힘을 더 쓴다. 시간과 거리가 길어질수록 힘이 더 들어가고 체력은 더 빨리 고갈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 동작을 시작하기 전에 힘을 빼고 충분히 기다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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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관련 외국 선수들과 코치들의 영상, 설명 자료에 ‘낙하’라는 개념이 간혹 보였는데, 이제야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의 코치님은 딱히 용어로 정의하지 않았는데, 나 스스로 이해를 돕기 위해 배웠던 내용들을 ‘자유낙하’라는 단어로 기억해두려 한다. 여기서 자유라는 것은 해방을 의미하기보다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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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소 지구력 운동은 힘을 빼는 것이다.
힘을 빼는 것은 한번 더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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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사람과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만족감 지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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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지금 당장의 유혹을 참고 극복할 수 있는 것. 이것은 금욕과 절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라톤을 하면서 매 뜀박질마다 더 가볍고 더 빠르게 나아가기 위해 지금 당장 동작을 해야 한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한번 더 기다려서 힘을 뺄 수 있는 것. 이 또한 포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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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멋진 것을 배우고 익혔다면, 그리고 그 대상이 운동이라면 기록과 성과로 증명을 해내야 하는데, 어제의 트레드밀 대회에서 그러질 못해 아쉽다. 굳이 핑계를 말하자면 유치원에서 걸려온 아이의 감기로 모든 식구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21km 팀 릴레이 경기에서 나는 마지막 주자로서 10km 구간을 뛰었고 35분 30초 정도를 기록하였다. 더 나은 감각과 더 좋은 느낌으로 레이스에 임해 34분대를 기록하며 대등한 경쟁을 펼쳤다면 등수 하나라도 올릴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곤 한다. 팀원 분들에게 미안하고 나 스스로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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