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작은 히말라야였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래킹

by 아이언파파

신혼여행은 네팔 히말라야였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 1년 전 나는 혼자서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여행을 다녀오고 히말라야에 푹 빠져버렸다. 그곳에 또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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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5~6일 정도 연차를 사용하여 전체 9~10일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었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코스와 달리,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 칼라파타르 트래킹 코스는 최소 17일 정도 필요했다. 당시 직장에서는 결혼 휴가가 5일 주어지고 내 개인 연차를 추가 사용하여 2주일 정도 여행이 가능했기 때문에 회사 생활하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코스를 가기 위해서는 신혼여행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우리 함께 하는 인생을 출발하며 큰 산에서 큰 마음과 큰 뜻을 품고 돌아오자는 명분(?), 그리고 결혼식 다음 해에는 아내가 가고 싶어 했던 몰디브에 꼭 가겠다는 현실적인 약속을 제시하여 아내에게 동의를 얻었다. 의외로 아내는 흔쾌히 가자고 하였다. 결국 나는 결혼휴가 5일과 개인 연차 8일을 사용해 총 13일의 영업일 동안 회사 책상을 비웠다. 당시 내 직급이 입사 3년 차 5급 행원이라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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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을 경험해 보고 깨달았던 것은, 히말라야 트래킹에는 개인의 운동 능력, 구체적으로 등산 경험과 노하우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아직도 한라산은 물론이고, 지리산과 설악산도 다녀와본 적이 없다. 당시에도 아내는 대구의 와룡산이라는 처가 동네 뒷산에 장인, 장모님과 아주 가끔 가봤던 경험이 전부였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걷는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특히 천천히가 중요했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낮아지며 고소 증세가 올 수 있다. 한 걸음에 한숨씩 천천히 들이마시고 차분히 내뱉으면서 어르신이 동네 산책하듯 여유 있게 걸어가면 몸은 낮은 산소 농도에 차츰 적응하게 되고 숨이 차지 않기 때문에 걸음을 이어가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다. 오히려 등산 경험이 많은 분들이 본인의 능력을 과신하며 씩씩하게 올라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고산병이 찾아와 하산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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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난방이 되지 않는 차가운 네팔 산속의 롯지에서 잠을 잘 수는 없었다. 결혼식 올린 당일에는 인천공항 근처에 있는 영종도 하얏트 리젠시에 머물렀고, 네팔에 도착해 첫날에는 카트만두 하얏트에서 1박 2일을 보냈다. 당시 카트만두 하얏트는 대한항공 직항 편 승무원들의 숙소이기도 했는데, 아내가 결혼식으로 정신없어 챙겨 오지 못했던 것들을 승무원 분들의 도움으로 해결하여 무척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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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에서 호의호식을 하고 다음날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래킹 시작 지점인 루크라(LUKLA)로 이동하여 뜻깊은 고생길을 시작하였다

루크라를 출발하여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번화한 마을이자 시장을 가지고 있는 남체를 지나 텡보체 데보체 팡보체 페리체 로부체 고락셉을 거치고 최종 목적지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옆 칼라파타르(Kala Patthar, 5550m) 봉우리까지 하루하루 즐거운 추억을 만들며 올라갔다

남체의 큰 시장인 남체바자르 그 수많은 상점들 가운데서도 아내는 기가 막히게 숙소에서 저 멀리 보일 듯 말듯한 빵집과 카페 간판들을 찾아 맛있겠다며 가보자곤 하였다. 관심분야가 아니라 나서기 귀찮았던 내가 마지못해 따라나서 거길 가보면 정말 아내 말대로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정말 기가 막히게 탁월한 아내의 능력이었다

칼라파타르 봉우리 꼭대기에서 당시 부장님과 팀장님이 꼭 찍어오라 했던 회사 배너 인증 사진을 남기고, 고락셉의 어느 롯지에 그 배너를 붙여놓고 왔다. 당시에는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무척 높았던 시절이었다. 다시 봐도 웃긴 추억들이다

3박 4일 동안 다시 루크라로 내려오는 길은 고도가 점점 낮아지기 때문에 빨리 움직여도 고소 증세 걱정이 없다. 그래서 돈을 지불하고 아내는 말에 태웠다. 원래는 등산길에 고산병에 걸린 여행자들을 최대한 편하고 빠르게 하산시키는 서비스이지만, 아내는 말을 타며 하산길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 아내가 말 위에 올라탄 것을 보며 말이 참 불쌍해 보인다고 얘기했다가 크게 혼났던 기억이 난다

카트만두에서 보냈던 즐거운 시간과 루크라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설렘, 남체바자르의 흥미진진함, 딩보체 촐라체의 멋진 풍경과 칼라파타르에서 우리 주변을 360도 둘러싼, 압도적인 대자연의 스케일은 아내도 나도 아직 잊지 못하는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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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 오늘은 아내와 나의 결혼기념일이다. 그렇게 나의 우주와 아내의 우주가 만나 하나가 되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사이 또 다른 작은 우주가 태어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그 어떤 우주보다 우리에게 큰 우주가 될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시작은 히말라야였다. 오늘 새벽은 달리지 않았다. 어제 풀코스 대회를 마친 직후라 힘들어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결혼기념일 새벽이라 뛰지 않은 것도 아니다. 11월이라 하기에는 이상하리만큼 비바람이 심한 날씨 때문이었다. 롯지 창문과 방문을 세차게 때리는 로부체의 거센 바람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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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은 달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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