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 포기 안 했네

JTBC 마라톤, 완주하길 잘했다

by 아이언파파

“우리 아빠 포기 안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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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잠실 종합운동장 남문 도로에 설치된 피니쉬 라인을 통과하는 나를 지켜봤던 아이가 했던 말이다. 같은 말을 아내에게 두 번이나 얘기했다고 한다. 오늘 아이에겐 아빠의 그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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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나의 운동 대회에 응원을 온 것은 처음이 아니다. 새삼스럽게 아빠 포기 안 했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오늘은 조금, 아주 조금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풀코스 마라톤 대회 당일 이렇게 비가 내리는 건 응원 온 아이에게도 처음이고 나에게도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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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아이가 응원 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일기예보 상 비가 올 것으로 되어 있었고 실제로도 많은 비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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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쉬를 400여 미터 앞두고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앞 도로를 뛰어가는데, 길가에서 나를 발견한 같은 팀 동료 분이 나에게 외쳤다. “저기 제우 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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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집을 나서며 벌써부터 비가 내리니 되도록 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메시지 보냈었는데, 결국 와주었구나.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피니쉬 라인을 통과하기 직전, 아내와 아이를 발견했다. “제우야!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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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길 잘했다. 사실 오늘 경기는 이른 시점부터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덥고 습하면서 비까지 내리는 가을 풀코스는 생각보다 초반부터 내 몸의 에너지를 많이 소비시켰고, 전체 코스 절반인 하프 지점 가까이에서 같은 팀 에이스인 동료가 기권하는 것을 보고 나 자신의 동기부여 의지 또한 많이 꺾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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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가을 시즌 내가 목표로 했던 훈련은 풀코스 239(2시간 39분) 그룹 프로그램이었다. 사실 239는 대회 직전 아직 내 실력으로는 무리라는 판단이었고, 현실적인(?) 245(2시간 45분)를 목표로 경기를 출발하였다. 1km 당 3분 55초 이내의 페이스로 42.195km를 달리는 것이다. 1km 당 3분 55초 페이스는 100미터 당 23.5초에 해당한다. 그 속도로 풀코스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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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후 자연스럽게 몸이 달려 나가는 페이스를 몇 킬로 정도 살펴보니 245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달리면서 목표를 수정하였다. 개인 기록인 2시간 49분보다는 빨리 들어오자. 개인 최고기록을 노렸다. 25km 정도를 넘어가는데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기존 기록과 똑같이 249라도 하자. 35km를 넘어가는데, 어휴 오늘은 249도 힘들 것 같았다. 그럼 그다음은 255 또는 SUB3인데, 그 생각을 하니 더욱 힘들었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기록이라 32km 지점쯤 올림픽공원역 지하철을 타고 싶었다. 30km를 넘게 달려오고도 마지막 10km를 뛰지 못해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 마라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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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대와 올림픽공원 앞 응원구역에 사람이 너무 많아 그만두지 못했다. 부끄러울 것 같아서. 그냥 뛰자.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 코치님의 클래스에 SUB3 완주자 인원에도 보탬이 되고, 개인적으로도 체면치레(?)를 위해 끝까지 뛰자 생각하였다. 이때까지는 가족이 응원 왔는 줄 몰랐다. 결과적으로는 그 어떤 이유보다 궂은 날씨에도 아내 그리고 특히 아이를 실망시키지 않아 가장 뜻깊은 유종의 미를 거둔 셈이었다. 포기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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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집에 와서도 나에게 또 물었다. “아빠, 나랑 엄마 덕분에 포기 안 했지?” 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아빠는 솔직히 제우랑 엄마가 올 줄 몰랐어. 비가 내리고 유독 힘들었지만 그냥 뛰다 보니 포기 안 했는데, 참 다행히도 제우 앞에서 끝까지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네!” 이건 진심이었다. 아이도 내 진심을 좋아했다. 흐뭇하게 씩 웃는 모습이 좀 웃겼다. 다시 한번 정말 다행이었다. 덥고 습하고 비가 내리고 결국 나중엔 추워지는 그런 악천후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목표 달성은 하지 못했지만 아이 앞에서 끝까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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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새벽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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