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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로소 Jul 30. 2023

The Real Me : D-94

100일 간의 '진짜 나 끄집어내기' 프로젝트

한글자도 쓸 수 없는 기분 속에서 글을 쓴다.

매우 횡설수설하고 마무리가 없을 수 있지만.

뭐든 써보자 하는 마음이 너무 빨리 꺾이는 게 싫어서 남긴다.


2일(D-96, 95)의 글쓰기를 빼먹어서 100일간 매일 쓰겠다는 목표는 실패일지도 모르겠지만,

여유가 된다면 쓰지못했던 날의 이야기도 추후 들려주고 싶다.

단 한 명이라도 봐준다면 너무나 기쁘게.



회사에 퇴사자가 발생했다. 물론 내가 입사한 이후 이미 세 분이 떠나셨지만, 비교적 짧은 기간을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퇴사자는 이 짧은 업력의 회사에서 '10개월'이나 버텼던 인사팀 직원이었다.

그의 퇴사사유는 '직장 내 괴롭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괴롭힘'을 담당하고 있는 분의 평소의 태도로 보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사태는 더 심각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저런 언행이 오갔나 싶을 정도로, 그가 쓴 퇴사 이유서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임직원 외모 및 사생활 비하, 성희롱성 발언, 업무와 퇴근시간을 볼모로 잡은 협박, 업무 떠넘기기, 담배 타임에 대동하기, 퇴근 후나 주말에 지속적인 업무지시 및 전화 압박(전화 늦게 받으면 호되고 혼이 나, 샤워하면서도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등 여기에 차마 말하기도 민망한 발언들이 오갔다. 그 발언들 사이에서 이 직원은 상사의 감정 쓰레기통이었고, 철저하게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었다.


4일 전까지만 해도 그는 퇴사할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힘들다고, 자신 좀 봐달라고 하소연하는 직원에게 '힘들면 나가야지'라고 발언하면서 상사의 가스라이팅은 그만 힘을 잃고 말았다.

직원의 입장에선 그래도 자기를 아끼는 마음에, 일을 가르쳐주려고 그랬을 것이라는 믿음이라도 있어 버텼는데, 그것을 제 발로 차버린 것이다.


그는 퇴사를 하며, 대표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표님이 직접 한 분 한 분, 직원들과 면담해보세요."



그의 퇴사가 내게 미치는 파급력도 컸다. 여러모로 얽혀있는 부분이 많아서도 있지만, 당장 내가 세웠던 100일의 퇴사 계획이 우습게 느껴지는 순간인 이유가 더 컸다.

사직서를 꺼내들며, 그는 '저도 돈 급해요. 근데 정말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요,' 라고 말했다.

돈 급하다...

그래 나도 돈이 급하다.

당장 월급이 없으면 살아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감정을 비로소 직면하고 단 3일만에 퇴사 결심을 굳히고 대표님 면담까지 때려버린 그의 결단력이 몹시도 부러웠다.

나는 과연 어떨까. 비겁하게 100일의 날짜를 세고 있는 나는.


나는 어쩌면 지독하게 퇴사하기 싫은 걸지도 모른다.

나는 직장인으로 살고 싶다. 월급을 따박다박 받으며, 가끔은 월루를 하고 직장 동료의 능력에 기대기도 하면서. 통장에 쌓이는 돈으로 주택청약도 꿈꾸고, 재태크 따위도 배우면서. 경제 위기가 왔을 때 비로소 직장에 남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는데... 나도 30대의 나이에 정직원으로 일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라는 것을 뻔히 안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그게 안 되는 인간인 것이다.

그게 안 되는데 이렇게 버티는 이유는 아마도, 충분히 비겁해서일 것이다.


내가 그의 퇴사 사실을 알게된 후 4일 내내 속이 매슥거리고 답답한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몹시도 부러움을 느꼈다.

그가 시원하게 사직서를 던진 자체로 부러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혐오하는 상사로부터 단호하게 벗어난 (심지어 상사의 휴가 기간이었다) 그의 후련한 뒷모습이 꼭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쎄한 느낌.

다음 주면 휴가갔던 나의 상사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나는 또 다시 그 때문에 숨막히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가 돌아오면 나는 과연...


오늘 사내 임원 중 한 분으로부터 톡을 받았다.

오늘 중으로 통화할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대표님에게 모든 직원과 면담을 해보라던 그의 말이 통했나보다.


그에게 나는 과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나에게 남은(줄 알았던) 93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과연 퇴사를 하게 될까?

아니면 또 어떻게든 목숨줄을 유지할 것인가?


며칠간 감정기복이 심해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너무 애를 먹었다.

내일은 부디 내 마음 안에서 아주 작은 결론에 달하기를.

그래서 다음주는 부디 조금이라도 더 나의 일과, 또 나에게 집중 할 수 있기를.

이 프로젝트를 아직은 끝내고 싶지 않으니까.




- 2023.07.29 / D-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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