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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II.6화 혼자라는 이유로 가볍게 내뱉는 말들

Part II. 살아가는 나 : 결혼 안 한 사람은 이유가 있다고?

by 이로우미






중고등학교 때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이 있다.

어릴 적부터 늘 붙어 다니며 서로의 꿈을 나누고,

사소한 일에도 밤새 수다를 떨던 그런 친구들이었다.


20대 후반, 친구들은 하나둘 결혼했고, 출산 후 육아휴직과 퇴사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았다.

친구들은 육아와 살림으로 바빠졌고, 나는 회사에서 쌓이는 책임과 업무로 바빠졌다.

한동안은 나와 다른 삶이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내가 접해보지 않은 세상, 친구들도 처음 겪는 엄마가 되어가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의 모습이 한 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한동안의 호기심일 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나는 회사의 힘든 이야기를 꺼냈고,

친구들은 육아의 고충을 털어놨지만 서로의 대화에 큰 공감을 할 수 없었다.

친구들은 아이를 케어하느라 내 얘기에 집중하지 못했고, 대화가 자주 끊어졌다.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나는 뭔가 위로받지 못한 허무함과 외로움에 상처받고 돌아오는 날들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점점 조심스러웠고,

자연스레 만남의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 자리에서 친구 중 한 명이 다른 사람의 뒷얘기를 하다

“걔는 성격이 그러니까 결혼을 못하는 거야, 결혼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놀랐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의실에서 몇몇 직원이 사담을 나누던 중,

타 부서의 40대 미혼 여성 팀장을 두고

“그 사람은 결혼을 안 하고 애를 안 낳아봐서 그런가 배려심이 없고, 이기적이야.”라는 말을 했다.

나는 적잖이 놀랐지만, 현실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었다.


내 나이가 사회에서는 저런 식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그런 얘기가 가까운 친구들의 입에서도 나오는 걸 보니 기분이 씁쓸하기도 했고, 불쾌하기도 했다.

나 역시 '내가 없는 자리에서는 저런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결혼여부로 사람의 됨됨이를 단정하거나,

결혼을 인생의 완성인 양 우월감을 가지며 무심히 내뱉는 그런 말들은 편협하고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삶에 걸맞은 선택과 가치가 있으며,

그것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편견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애써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려고 하지는 않는다.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보다, 내 시간은 내게 집중하는 쪽을 택했다.

자연스러운 거리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내 삶을 충실히 채우기로 마음먹었다.


최근 나이를 먹으며 점점 더 와닿는 단어가 있다. 바로 ‘시절인연’.

원래는 불교 용어라고 하는데,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할 때마다 이 단어가 크게 공감된다.

어느 날 회사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흘러나온, 꼰대인턴이라는 드라마의 OST ‘시절인연’이라는 노래가

그 당시 상처를 받았던 내게 큰 위로가 됐었다.



친구가 멀어진다고
그대여 울지 마세요

영원한 것은 없으니
이별에도 웃어주세요

좋았던 날 생각을 하고
고마운 맘 간직을 하며
아아아 살아가야지
바람처럼 물처럼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마세요

때가 되면 찾아올 거야
새로운 시절인연




https://youtu.be/fV8tu-tPcJE?si=DvZBGgaXJU2phA-y

꼰대인턴 OST '시절인연' song by 이찬원



누구에게나 시절인연은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충실하고 싶다.

이 순간의 이들이 바로 내 시절인연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자연스러운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 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삶을 응원하며 살 것이다.


혼자라는 순간이 외롭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시간마저 내 성장을 위한 기회로 삼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나를 위해 시간을 쓰며,

때로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또 헤어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혼자인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내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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