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애아빠)
코로나 19가
대구 신천지로 안 해 엄청나게 퍼져나가던 2월 중순,
몇몇 회사들이 앞 다투어 재택근무를 시행하였다
재택을 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내부 회사 망을 접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기에
기존에 (시스템이 확보되어 있는) 선택적 재택을 하던 회사들은 바로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그다음은 (필요 숫자가 엄청 많지 않은) 스타트업을 비롯한 중견기업이 앞다투어 시작하였고
그리곤 대기업이 재택근무를 시작하였다
몇몇 회사들은 재택을 시작하고 기사를 내곤
3일 후에 재택 종료를 해버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외부 이미지 내기식이라는 둥, 기사 쓰기 이해 재택을 했냐는 둥 많은 불평들이 나오기도 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사전에 VPN 등의 준비가 되어 있어서 빠르게 시행하였고
우선 4일간 재택 후, 일주일 더 연장해서 총 9일 동안 재택이 진행되었다
(연장을 두고 내부에서는 논의가 많았다고 한다)
생각으로만 재택이 어떨까 생각하다
실제로 하면서 느꼈던 경험에 대해 남겨 보려고 한다 (feat. 애 아빠)
우선,
나는 회사 내에서 영상, 영상 콘텐츠 기획, 제작 관련 일을 한다
기본적으로 아주 기초의 기획부터 촬영, 편집, 발행의 모든 일들을 진행한다
코로나로 외부 촬영이 모두 막힌 시점에
다행히도 나는 2월 초에 촬영해놓고 편집을 기다리는 건이 있었고
컷 편집부터 자막 디자인, 구성까지 대부분 혼자 하기 때문에
부러 고정된 곳에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어서
회사를 나가지 않는 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재택을 하면서 느낀 장점과 단점을 나눠 보면
재택을 하면서 좋았던 점
- 왕복 3시간을 소비하는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왕복 교통비 역시 아낄 수 있었다)
- 평소보다 1시간 30분을 더 잤고 확실히 체력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비축된 체력은 업무시간이 끝나고 몸으로 노는 6살 아들과 놀아줄 때 충분했다. 기존에는 8시 반에 집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집안일을 조금 도우고 하면 10시가 훌쩍 넘었고 난 이미 방전상태였다)
- 사무실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고 집중할 수 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조금 더 하고, 여기까지 마무리하고 가고 싶거나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 퇴근시간 딱 맞춰 일어나서 나가기 시작하면 나도 어수선해지곤 했는데 재택을 하니 그럴 일이 없다. 그냥 이어서 쭉)
- 주변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흡연을 하는 것을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 다만, 1시간에 한 번씩 들락날락하는 것과 흡연을 하고 온 후 담배 냄새를 신경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나와 업무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아도, 근태를 보면서 신경 쓰지 말자 해도, 나 혼자 계속 일하는 느낌을 받으면 화가 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 불필요한 회의나 불필요한 확인들이 줄어든다
(대면이 아니니 중요하지 않은 회의가 확실히 줄어든다. 사람들은 대면했을 때, 더 전달이 잘된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빠른'것 외에는 오히려 서면으로 정리돼서 이야기하는 게 더 좋다고 본다. 쓱- 와서 이야기하고 기억 못 하는 것보다 시간은 조금 걸리더라도 1차로 내용에 대해 정의하고, 서로 오해할 수 있는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들이 더 좋다고 본다)
(그리고, 내 업무 특성상 그럴 수는 있지만 아주 즉각적으로 대답해야 하는 일은 잘 없기 때문에 문서로 남겨 놓은 것에 대해 작업 중이 아닌 다를 때 보면서 조금 다른 시각에 대해 답을 할 수 도 있다 - 이건 아무래도 개인적 성향 때문인 듯 하다)
- 점심시간의 가벼운 산책으로 아이와의 관계가 좋아졌다
(가장 좋았던 건 아이가 좋아한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아내가 점심을 준비하고, 점심시간이 딱 되면 가볍게 먹고 설거지를 하면 30분 정도가 남는다. 멀리 가지 않고 현관 바로 앞에서 잠깐 햇빛 받으면서 산책하거나 잠깐 같이 뛰거나 하는 것만으로도 참 좋아했다. 아이도 아빠가 하루 종일 놀아주지는 않지만, 혼자 무엇인가를 하다가 막힐 때 오면 도움주기도 하는 게 좋았고 아침에 눈 떴을 때 아빠가 있는 게 좋았다고 했다)
- 집에서 밥 먹어서 속이 편하고 좋다
(매일 사 먹는 밥을 먹다 보면 속이 더부룩하다. 밥집 가서 가볍게 먹으려고 해도 메뉴가 마땅히 없다. 그런데 집에 있으니 가볍게 비빔면을 해먹기도 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조미료를 많이 안 넣고 만드니 속이 편하다)
- 아내가 안심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심장수술을 해서 아내가 아이의 건강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환경 때문에 매우 불안해했는데, 집에서 근무하고 밖을 나가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서 안심했다. 사실 이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재택을 하면서 안 좋았던 점
- 산책시간 외의 아이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 문제가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재택을 하기 전날, 그리고 재택을 하고 나서 2일간은 계속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3일 째부터는 아빠 일하는 거야 라고 이야기하면 더 이상 다가오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호기심이 많은 나이니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컴퓨터를 만지거나 마우스를 만지면서 발생하였다. 그냥 저장 없이 꺼버린다던지..? 혼을 안 낼 수 없는 사건들이 계속 발생한다)
- 기타 다른 이유로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혼을 안 낼 수 없는 상황이 아내랑 발생하여 혼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그리고 장모님이 가까이 사셔서 가끔 들리시는데 장모님 오셨을 때도 워낙 사이가 좋게 지내서 말씀드리고 그냥 계속 일일을 하긴 했지만 아예 신경이 안 쓰이지는 않았다)
- 자연스럽게 업무가 끊기지 않고 연장되기도 함
(약간은 자의적인 이유긴 하지만 영상을 작업하다 보면 조금 더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뭔가 아쉬움이 있고 그것을 빨리 수정해서 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끝도 없이 작업이 연장된다. 그래서 아이 재우곤 다시 앉아 추가 작업을 새벽까지 하기도 했다. 문제는 아무도 모른다)
- 슬랙의 알람을 다 켜놓으면서 알람의 지옥에 빠져듬
(회사에서도 메신저 자체를 할 일이 많지 않은데 회사에 있으면 필요하면 부르겠지 하곤, 전체 알람은 모두 꺼놓는 편이다(개인 노티만 켜놓는다) 그런데 재택을 하니, 전체 공지에 올라온 모든 글들과 내용들에 대해 확인하고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반응해야 하니 작업 중에 계속 울리는 알람들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특히 나랑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들로 알람이 계속 울릴 때는 음.. )
- 회사의 편한 의자와 시설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재택 하면서 많이들 모니터를 샀다고 하는데 나는 진심 책상을 살뻔했다)
영업일 기준으로 9일 동안 진행된 재택이 끝났다
재택이 싫은 점에 대한 글들을 보면 대부분은
여러 가지 이유들이 적어놓았지만 결론은 '외롭다'였다
다른 사람들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이야기도 하고
일하면서 쉬기도 하고 산책도 하고 해야 하는데
원룸에 틀어 박혀 일만 하고 있는 느낌이라는 것이었다.
가족이 있어서일까
오히려 나는 반대의 느낌이었다
가족과의 시간을 훨씬 더 보낼 수 있으면서
일적으로는 꼭 필요한 이야기들만 메신저로 나누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 같은 것으로
내 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게 참 좋았다
다만,
1차가 끝나고 연장을 고민할 때 아름아름 들었던 내용들은
재택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반대로 너무 직원들을 못 믿는 임원들도 있었다
재택은 확실히 기업문화와 서로 간의 신뢰가 필요한 것 같은데
그런 문화가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기도 하고
'재택'에 대한 평가 역시 개인의 상황이나 업무에 따라 나뉘기 때문에
무조건 재택보다는 선택적 재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 더 느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회사는 회의를 할 때와 협업이 필요할 때를 중심으로 출근을 하고
그 외에 일주일에 재택을 할 수 있는 날이나 요일을 정해서 작업에 더 집중할 수 있다면
충분히 좋은 업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함정은
지금 회사에서 그렇게 시행되기를 기대하기보다
이미 시행 중인 회사로 가는 게 빠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