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ndaleena Jul 15. 2018

아련하고 야릇한 향기를 남긴 채

사적인 영화일기, 지니어스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영화 <지니어스>



사적인 영화일기, <지니어스>


재능이나 의지와는 관계없이 소설을 읽고 분석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창조해 내야 하는 작업은 학부생의 숙명이었다. 소설을 받아들이는 행위는 그것에 담긴 한 문장 한 문장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과도 같았다. 그 나름의 즐거움과 의미는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소설은 그 맛을 잃어가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소설을 기피하던 시기가 딱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의무감으로 읽고 쓰는 행위에 지쳐 그것이 이루고 있는 타인의 삶에 흥미가 사라졌다. 어쩌면 역량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기 연민적 결과일지도 모른다. 잘 못하니 안 하겠다의 심보랄까.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쓸수록 능력 부족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직면하게 될 터이니 말이다. 

그러다 습관처럼 애독자 행세를 시작했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도서관에 들려 책을 빌렸다. 정해진 기간 내에 무언가를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었고, 형식에 맞춘 분석과 감상을 기록할 필요도 없었다. 궁금했던 소설 하나를 배게 위에 펼쳐 두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메모장에 옮겨 곱씹어 보다 문득, 작가에게 홀려 버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단 몇 문장에 말이다. 



지나간 시간을 달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등 당시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을 창작해 낸 위대한 작가들의 곁에는 편집자 '맥스 퍼킨스'가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발굴에 여념이 없던 그를 사로잡은 건 무명작가 '토마스 울프'의 원고 뭉치였다. 장황하게, 그러나 유려하게 쏟아지는 문장에 홀린 듯 맥스는 토마스의 원고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맥스의 여정에 귓가를 울리는 토마스의 문장이 더해져 영화의 입체감은 배가 되었다. 시각과 청각의 즐거움이 조우하는 이 특별한 순간은 황홀함에 가까웠다.  

<지니어스>가 이 둘의 여정을 매끄럽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소재가 토마스 울프의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맥스가 토마스의 글에 매료되던 순간, 그 찰나의 포착이 영화의 모든 여정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맥스의 사무실에서 기차역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두 남자가 벌이는 대결과도 같은 창작의 과정은 지나치게 흥미로웠다.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온갖 사물을 대상으로 비유를 시도하는 토마스의 폭발적이고 섬세한 문장, 이를 예리하게 조각해 나가는 맥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은 <지니어스>의 유일한 낙일 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토마스와 끊임없이 잘라내는 맥스는 애초에 상호 호응이 어려운 관계였고, 이를 대변하듯 둘의 성향은 심히 달랐다. 지치지 않고 쓰고 구기기를 반복하는 토마스는 야생 동물 내지는 한 마리의 야수처럼 저돌적이다. 반면 맥스는 꽁꽁 얼어붙은 겨울 호수의 표면처럼 잔잔하고 단단한, 차분하고 이성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둘은 서로가 가진 상반된 온도에 빠르게 매료되어갔다. 



주변인들은 충동적이며 자아도취적인 성향의 토마스가 맥스에게 보이는 맹목적인 신뢰, 애정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맥스 역시 타인을 쉽게 상처 입히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토마스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맥스는 자신이 무장 해제로 매료되었던 한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그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토마스의 두 번째 작품을 준비한다. 두 천재로부터 걸작이 탄생되는 순간, 짜릿함 그 너머에는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에게 보내는 열렬한 지지와 믿음이 존재했다. 토마스가 삶의 마지막 순간 맥스를 향해 사랑과 믿음, 그리고 존경을 보내왔던 것처럼 맥스 역시 토마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잃지 않았다. 

삶을 누비는 수많은 관계를 모두 표현하기에 우리의 단어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 두 남자의 관계 역시 그렇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이끌림, 재능에 대한 믿음, 직업적 희열 등 맥스와 토마스는 다양한 층위에서 감정을 공유했다. 사랑이라는 불완전하고 한정적인 단어로 둘의 관계를 표현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본질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지니어스>는 두 주인공의 천재성 그 자체보다는, 열렬하게 지지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적에 가까운 인연에 대한 감탄과 경의에 가깝다. 감정이라는 여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 시간의 흐름에 집중했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분노하고 질투하고 고뇌하고 연민하고 사랑하는 인간의 감정을, 기억하고 싶은 작가들의 말로를 군데군데 담아내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미세하게 감도는 아련하고 야릇한 향기는 그리움을 증폭시켰다. 
오랜만에 글의 쾌감을 경험했다. 분명한 소득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그럴싸한 치유와 로망의 배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