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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룬 Oct 29. 2022

잠시만요, 음악 좀 고를게요

정이룬의 답장

커피, 참 좋지요. 저도 커피를 좋아해서 집에서 자주 내려 마십니다. 그러다 보니 지인들이 종종 원두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인도네시아에 출장을 다녀온 지인에게서 원두를 받았어요. 개시할 생각에 설렙니다. 하지만 하루에 두 잔은 넘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신기하게도 저는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잠을 잘 자지만, 다른 건강을 염려해서요. 마그네슘이 금방 부족해지는 체질이거든요. 그래도 자꾸 커피에 자꾸 손이 가네요. 현대인의 필수품, 이런 걸까요?




저에게 뗄 수 없는 필수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음악이요. 글을 쓸 때도, 밥 먹을 때도, 씻을 때도, 잠깐 집 앞에 쓰레기를 내다 버릴 때도, 언제나 음악을 듣습니다. 빨리 샤워하고 나가야 한다면서 샤워하는 동안 들을 노래를 고르느라 샤워 시간이 미루어지는 사람.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듣고 싶은 음악을 고르지 못해 플레이리스트 속에서 헤매는 사람. 바로 저입니다. 이 정도면 필수품 정도가 아니라 중독으로 보일 수도 있겠네요.


특히 일할 때 음악을 고르는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음악은 저를 집중의 세계로 즐겁게 보내주는 도구이자 싫은 현실 세계를 조금이나마 놀이공원처럼 꾸며주는 아이템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맞닥뜨렸을 때 더욱더 음악에 의존합니다. 유독 하기 싫은 일, 어려워서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일. 이럴 때 음악만 한 특효약이 없습니다. 이래서 예로부터 노동요라는 것이 존재했겠군요. 어려운 일에 봉착했을 때 좋아하는 음악이 귀에 들려오면, 그래도 조금 더 나은 기분으로 일을 대할 수 있달까요. 음악에 힘을 얻어 일을 어찌어찌 시작하면 그 뒤로는 탄력을 받아 일을 끝까지 마칠 수 있어요. 탄력을 받는 순간부터는 음악이 끊기더라도 스무드하게 완주하게 되거든요. 일하면서 원하는 음악을 듣는 것, 제가 재택근무를 하는 프리랜서인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사치일지도 모르겠네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보다 하기 싫은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살고 있어요. 그래서 때로는 점심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때로는 장바구니에 원하는 옷을 담는 것으로, 싫었던 일을 열심히 한 자신에게 소소한 보상을 주며 또 힘을 얻는 듯합니다.


저는 음악을 들으며 힘을 얻을 때가 많아요. 가장 손쉽게 제 마음에 즐거움을 더하는 존재니까요. 그 소소한 즐거움이 발판이 되어 싫은 일은 해내고, 즐거운 일은 더 즐겁게 해줍니다. 그냥 걷던 길도 신나는 음악과 함께라면 당당하게 런웨이를 걷는 기분이 나고, 차분한 음악과 함께라면 주변의 경치를 영화 보듯 감상하며 걸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인생의 BGM을 스스로 재생한다는 기분으로 ‘어떤 음악을 들을까?’, ‘지금은 어떤 음악이 좋을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는 즐거운 고민이지요.


요즘은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기가 더 쉬워진 세상이라 마음에 맞는 음악을 만나기도 훨씬 쉬워졌습니다. 그 덕분에 제 플레이리스트도 이만큼 풍성해질 수 있었고요. 이 많은 음악 중에는 매일 찾게 되는 음악, 특정한 시기나 계절에 찾는 음악도 있습니다. 그리고 5년 후, 10년 후에도 계속 찾는 음악도 있을 테고, 지금의 저만 좋아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찾지 않고 제 머릿속에서 잊히는 음악도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즐겨듣는 음악이 생기면 다이어리에 적어놓기도 합니다. 나중에 보면 내가 그 시기에 이 음악을 좋아했었구나, 하며 듣고 있노라면 그때의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보여요. 참 신기한 일입니다. 향이 기억을 담고 있듯, 음악에도 기억이 담기니까요. 그리고 음악은 언제나 꺼내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참 고마운 기억보관함이라고도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가 있겠지요. 요즘 한창 듣는 음악들이 있다면 기록해두었다가 몇 년 후에 들어보세요. 재미있습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는 각자의 체험에 맡기도록 할게요.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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