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의견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더 가치를 둔다는 사실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까 봐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것과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것 중 어느 쪽이 진짜 자신을 사랑하는 일일까?"
자기애가 충만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당시까지는.
회사에서 중국 신규 프로젝트에 대한 기획안 발표 요청이 왔을 때, 나는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막상 발표 당일, 나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제대로 발표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왜 그랬을까?
너무 높은 기대감이 두려워서 스스로의 가치를 낮춘 것이다.
분명 내 직감은 "이게 아니야"라고 속삭였지만, 나는 두려움에 모든 기회를 그렇게 날려버렸다.
그 이후의 회사 생활은 지옥 같았다.
숨죽이며 참고 인내하는 시간들. 다시 기회를 얻었을 때는 이미 온전한 형태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있었다.
내가 잘한 부분은 누군가의 성과로 넘어갔고, 잘못한 부분은 나의 책임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의 공허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마치 내 안의 진짜 목소리를 배신한 후, 나 자신을 벌주기 위해 스스로에게 부여한 시간. 그동안 진짜 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결국 그 프로젝트는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고, 나에 대한 나쁜 평가로 자리 잡아버렸다.
나를 자책하던 그날 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이 말을 읽으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럴까?"
아우렐리우스의 대꾸: "진짜 자신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데 말이야."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나를 '아끼기만' 했지, 진정으로 '존중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내 몸을 챙기고, 내 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정작 내 생각, 내 판단, 내 직감은 쉽게 포기해버렸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가족 회의에서도,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늘 "다들 어떻게 생각해?"라고 먼저 물었다.
내 의견을 말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반응부터 살폈다.
장녀로서 화합을 이끌어야 한다는 압박감, 틀릴까 봐 두려운 마음이 내 목소리를 작게 만들었다.
그렇게 살면서 느낀 건 공허함이었다.
남의 의견을 따를 때는 안전했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감도, 성취감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
마치 내 인생을 대리로 살아가는 것 같았다.
"나에 대한 높은 기대를 내가 충족하지 못할 수도 있잖아."
아우렐리우스의 대꾸:"기대를 충족하지 못할까 봐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것과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것 중 어느 쪽이 진짜 자신을 사랑하는 일일까?"
그날부터 작은 연습을 시작했다.
매일 저녁, 하루 동안 내린 선택들을 세 가지씩 적어본다.
그리고 각각에 대해 '내 의견'과 '따른 의견'을 구분해본다.
마지막에 만약 온전히 내 의견만으로 결정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본다.
첫 주차에는 놀라웠다.
점심 메뉴부터 회의 의견까지, 대부분이 '따른 의견'이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작은 결정부터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 목소리가 틀렸을 때도 있지만 적어도 후회는 줄어들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 감정을 달래주는 것만이 아니었다.
내 생각을 신뢰하고, 내 판단을 존중하며, 내 목소리에 가치를 두는 것이었다.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자신을 사랑한다면서 자신의 의견은 무시하는 건 모순이다.
자기사랑의 진짜 의미는 나 자신과의 신뢰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다.
내가 나를 믿지 않는데, 누가 나를 믿어줄까?
오늘부터 당신도 자신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여보면 어떨까요? 지금 두려움 때문에 미루고 있는 내 의견이 있다면, 그것부터 한번 존중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