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f 질문이 매우 중요한 분야는 과학이다.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자들은 독창적인 What If 질문을 던질 줄 알았다. 아이작 뉴턴이 케임브리지대학교 학생 시절 경험한 사과나무 일화를 보자. 뉴턴은 일반인들과 달리 물체가 땅에 떨어지는 현상을 당연시하지 않았다. 그는 이 현상이 도대체 왜 일어나는지를 고민했고 What If 질문을 수없이 던졌다.
만약 모든 물체의 운동이 물체에 작용하는 힘의 존재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만약 지구와 떨어지는 물체 사이에 어떠한 당기는 힘 (만유인력 또는 중력)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만유인력이 존재한다면 두 물체의 물리량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두 물체의 질량과 두 물체 사이의 거리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황우석 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2006년, 일본 고베대학의 야마나카 신야는 자신에게 노벨생리의학상을 가져다준 ‘인공다능성줄기세포(Induced Pluripotent
Stem Cell, iPS 세포) 기술’을 세계적 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iPS 세포 기술이란 이미 성숙하고 특화된 어른 세포에 4종류의 유전자(Oct3/4, Sox2, c-Myc, Klf4)를 도입시킴으로써 인체 모든 조직의 세포로 분화 가능한 만능줄기세포로 재프로그램하는 혁신 기술이다. 난치병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장기세포를 ‘iPS 세포 기술’을 통해 시험관에서 무한 생산하고 이식할 수 있다면 인류의 오랜 꿈인 무병장수가 가능하게 된다. 어떻게 그는 iPA세포 기술을 생각해냈을까? 야마나카 신야 박사는 자서전 《가능성의 발견》에서 당시 거의 모든 과학자가 배아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s, ES 세포)를 원하는 체세포로 분화시키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치명적인 단점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인간의 배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문제이고 둘째는 배아줄기세포를 몸에 이식했을 때 나타나는 면역거부반응 문제이다. 여기서 그는 2001년에 보고된 고베대학 타카시 타다의 논문을 읽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타카시 타다는 쥐 흉선세포를 쥐 배아줄기세포와 전기적 세포 융합(electrofusion)을 했을 경우 쥐 흉선세포가 전분화 능력을 얻는다고 보고했다. 이 논문을 읽고 그는 다음의 What If 질문들을 던졌다.
만약 쥐 흉선세포가 전분화 능력을 얻는 이유가 배아줄기세포 안에는 존재하고 일반 체세포에는 없는 어떤 특정한 유전자 때문이라면 어떻게 될까?
만약 이 유전자를 찾아내서 일반 체세포에 넣어주면 어떻게 될까? 만능줄기세포가 되지 않을까?
야마나카 신야 연구팀은 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품고 열심히 연구한 끝에 수천 개의 유전자 후보에서 스물네 종류의 유전자 후보로 좁힐 수 있었고 다시 이 스물네 종류의 유전자 후보에서 인공다능성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핵심인 네 종류의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오늘날 과학이라는 용어는 비단 화학, 물리학, 생물학으로 대표되는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심리학, 지리학, 법학, 경영학, 행정학, 고고학, 사학, 언어학, 철학 등 수많은 인문 사회 과학 분야에 사용되고 있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질문을 던진 칼 포퍼. 그에 따르면 과학이란 개별적으로 제시한 가설을 실험 및 경험적 증거를 통해 반증 또는 확인하는 것이다. 어떠한 가설을 제시하느냐는 과학적 연구 결과의 독창성 및 우수성에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가설이 독창적이고 참이면 연구 결과 또한 독창성을 가질 것이다. 아무리 연구 결과의 양이 많더라도 검증하려는 가설이 참신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다면 그 결과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끌지 못할 것이다.
가설이란 ‘(무엇)이면 (무엇)일 것이다’라는 구조로 서술된다. 이는 What If 질문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독창적인 What If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은 곧 독창적 가설을 세울 수 있는 능력으로 연결되고 결국 창의적인 과학적 연구 결과를 이끌어낸다.
1998년 스탠퍼드대학교의 한 기숙사에서 박사 과정 학생이었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공동으로 구글을 창업했다. 당시 그들은 비즈니스 트레이닝 또는 관련 경력이 전혀 없었다. 또한 그들은 기존의 회사들처럼 마케팅이나 투자전략, 즉 어떻게 구글로 돈을 벌 것인지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매우 단순한 믿음이 있었다.
‘세계 최고의 검색엔진을 만들고 많은 사람에게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면 돈은 나중에 알아서 굴러 들어올 것이다!’
1998년 구글은 스탠퍼드대학교 기숙사에서 캘리포니아 멘로파크 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 수잔 뷔치스키의 집 차고로 이사했다. 구글은 최초로 선마이크로시스템의 공동 창업자인 앤디 백톨샤임으로부터 1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점점 구글의 검색엔진이 인터넷 사용자들로 부터 호평을 받고 사용자가 급격하게 폭발하자 1999년 6월 한 벤처캐피털 회사가 2,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리고 2004년 구글 주식이 최초로 공개적으로 팔리기 시작하여 단숨에 구글은 백만장자에서 억만장자의 기업이 되었고 본사를 캘리포니아 마운튼뷰로 옮겼다. 현재 구글은 핵심 검색엔진을 비롯하여 클라우드 서비스 기반의 구글 독스 (Google Docs), 지메일(Gmail), 구글 드라이브(Goggle Drive) 서비스와 소셜 네트워크인 구글 플러스(Google+), 브라우저소프트웨어인크롬(Chrome), 모바일 운영 체제인 안드로이드(Android) 등을 전 세계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방식을 혁신 및 정의하고 있다.
이 위대한 구글을 어떻게 두 대학원생이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스탠퍼드대학교 기숙사의 어느날 밤, 잠에서 깬 래리 페이지가 문득 던진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어느 날 밤이었다. 꿈을 꾸다가 도중에 잠에서 깨었는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모든 인터넷 웹을 다운로드하고 이것들을 잘 링크할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
래리 페이지는 이 What If 질문을 던지자마자 종이와 펜을 꺼내들어 과연 이 생각이 가능한지 그 구체적인 내용들을 적기 시작했다. 그는 컴퓨터사이언스학과 교수 테리 위노그라드 밑에서 월드와이드웹의 수학적 특성이라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인터넷 검색엔진을 만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친구 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고민했고 결국 둘은 구글의 성공을 있게 해준 검색 알고리즘 ‘페이지랭크(PageRank)’의 특허를 이끌어냈다. 당시 야후로 대표되는 검색엔진은 검색할 키워드가 인터넷 페이지에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에 따라 페이지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검색알고리즘을 통한 페이지의 우선순위는 사람들이 실제로 평가하는 페이지의 중요성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당신의 인터넷 페이지를 다른 인터넷 페이지들에서 얼마나 자주 링크하는가와 동시에 링크하는 인터넷 페이지들이 얼마나 권위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계산, 당신의 인터넷 페이지가 인터넷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순위화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만약 당신이 어떤 말을 했는데 수많은 사람이 이 말을 퍼 나를수록, 동시에 이 말을 전하는 사람들이 주요 정치인, 사회 인사와 같은 권위 있는 사람들일수록 당신의 말은 더욱 신뢰할 수 있고 중요해진다는 이치이다.
이렇게 레리 페이지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가능성을 What If 질문을 통해서 보았고 생각했고 연구했으며, 결국 오늘날의 구글을 있게 만든 페이지랭크라는 검색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아이작 유 작가
아이작의 신간이 나왔습니다! (23년 10월 31일 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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