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무려 68%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 41%와 비교 시 엄청 높은 수치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중·고등학교 통틀어 교육부가 짜놓은 시간표대로 6년을 공부하면 대학에 입학해서 대학이 짜놓은 시간표대로 4년을 더 공부해야 한다.
나는 (나 또한 대학을 졸업했지만) 이게 맘에 들지 않았다. 나는 대학의 목적이 자신의 적성과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고, 결국 취업을 위한 교육 과정은 진정한 대학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첫 한 학기를 마치고 한 학기 휴학을 했다. 사실 자퇴를 하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극도로 반대하셔서 그럴 수는 없었다.
나의 첫 학기를 돌아보니, 대학 등록금 500만원을 내고 여섯 과목을 들었다. 500만원을 내며 한 학기를 공부했는 데 읽은 책으로는 달랑 여섯 권의 교과서가 전부였다. 그것도 시험 범위만을 읽었다. 이것이 문제다. 이것이 진정한 공부인가? 이렇게 대학 4년을 보내면 취업은 하겠지만 지성을 갖춘 인재로 거듭나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은 절대 될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휴학하면서 나는 전 재산 500만 원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노라 다짐했다. 평일 도서관에 출근하며 책만 읽고 내 생각을 적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놀면서도 다방면으로 이야기를 하며 지냈다. 토요일이면 출근이라도 하듯 교보 문고에 가 읽고 싶은 신간 도서를 마음껏 읽었고 좋은 책이 라면 아낌없이 재산을 털어 책을 샀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책을 읽고 책과 대화하고 책으로 생각하며 살다 보니 읽은 책은 500권, 구입한 책은 110권이었다. 이때 형성된 독서 습관이 나의 생활 습관이 되었다.
이후 복학을 했다. 1학기 때와는 공부 자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교수님이 말씀하는 내용의 배경이 큰 범주에서 이해되기 시작했고 시험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업 중에나 수업 후에 교수님과 토론하기 위해 수업을 들었다. 동아리 활동으로 다양한 학과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다양한 전공 분야에 대해서 그들과 깊이 있게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이렇게 4년 대학생활을 통해 1,000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이를 통해 갖춘 역량은 인문학, 사회학, 경제경영학, 심리학 등 다양한 전공의 친구들과 대화가 통하는 힘이 되었다. 동시에 화학 공학이라는 내 전공 분야의 언어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내가 대학에 있는 동안 그리고 대학원에 있는 동안 NGO 지역 단계를 통해 가난한 환경의 중·고등학생들에게 수학, 영어, 과학을 가르치는 교육봉사를 했다. 박사후 연수 과정에 있을 때는 한인교회를 통해 고등학생들을 멘토링 했다. 내가 자주 듣던 두 가지 질문은 ‘대학을 꼭 가야 하는가?’와 ‘대학에 간다면 어떻게 잘 보낼 수 있는가?’였다.
먼저 ‘대학은 꼭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늘 이렇게 말해줬다.
“네가 확실한 대안이 있다면 가지 마라. 하지만 그 확실한 대안이 없다면 가는 것이 좋겠다.”
‘대학에 간다면 어떻게 잘 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먼저 공부라는 뜻이 무엇인지 내 멘티들에게 이야기 해줬다.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는 뜻의 공부工夫라 는 한자는 원래 ‘功扶 공로 공, 도울 부’이다. 다시 말해서, 공부란 무엇인가를 열심히 도와 공을 이루어낸다는 뜻! 즉, 단순히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노력하고 훈련하고 자기를 단련시킴으로써 공을 성취한다는 의미이다. 이 ‘공부’를 중국어로 발음하면 ‘쿵후’다. 공부의 본질은 소림사 승려처럼, 신체적·정신적 단련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는 데 있는 것이다. 대학교 4년 동안 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취업하면 진짜 ‘공부’를 한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석사, 박사, 해외 인재와 같은 고수들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게 된다. 지름길만으로 전문성을 갖출 수는 없기에 대학 때 해야 했던 그 기초부터 다시 쌓아야 하는 슬픈 일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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