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에서 주도자로 바꾸는 Why not 질문
비즈니스 세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대부분의 아이디어를 당시 IBM의 최신 기술들을 배우고 모방하고 스스로 그것들을 개선함으로써 만들었다. 워런 버핏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전략을 배우고 모방하여 자신만의 투자전략을 만들었다. 맥도날드의 창업자 레이 크록은 포드의 자동차 생산 라인을 모방하여 맥도날드에 적용했고 이를 통해 패스트푸드라는 신개념을 탄생시켰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NBA의 코비 브라이언트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을 모방했다.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시민권운동(African-American Civil Rights Movement)을 주도한 벤저민 메이스 목사에게서 깊은 영감을 받고 그를 모방했다.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넘어가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모방했다.
이처럼 영향력 있는 리더들은 구경꾼으로만 살지 않았고 배움과 모방을 통해 주도자로 살았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늘 Why Not 질문을 던졌고,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갔다. 따라서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항상 겸손한 자세로 배우는 것과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나라고 왜 안 되겠는가?’ 하며 Whynot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구경꾼에서 주도자로 변화할 것이고, 위대한 리더들처럼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할 것이다.
Why not 질문과 라이벌의 역사
지난 100년간 과학, 기술, 통신의 발달 역사는 라이벌 경쟁으로 말미암아 가속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기 기술 개발 경쟁, 라이트 형제와 커티스의 비행기 기술 개발 경쟁,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펜하이머와 하이젠버그의 원자탄 기술 개발 경쟁, 본 브라운과 세르게이 코를레프의 우주로켓 기술 개발 경쟁, 파일로 판스워스와 데이비드 사노프의 텔레비전 기술 개발 경쟁 등등....... 각 분야의 라이벌들은 서로의 천재성을 확인하면서 끊임없이 “왜 안 되겠는가? 내가 더 나은 기술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Why not 질문들을 던졌다. 그들은 놀라운 수준의 의지력을 가지고 전쟁과도 같은 라이벌 경쟁을 벌였고, 그 결과 인류에게 값진 유산을 안겨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디지털 시대, 퍼스널 컴퓨터의 시대는 평화롭게 오지 않았다. 이것은 애플의 카리스마 혁신가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젊은 프로그래머 빌 게이츠 사이에서 벌어진 지독한 애증의 경쟁 속에서 태동되었다. 1974년 뉴멕시코라는 회사가 일반 대중이 사용할 수 있는 소형 마이크로프로세서 알테어 8800(Altair 8800)을 만들기 전까지, 퍼스널 컴퓨터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테어 8800은 오늘날 퍼스널 컴퓨터와 같은 키보드 및 모니터가 없었고, 이 기계를 사람들이 쉽게 다룰 수 있도록 돕는 운영 프로그램도 없었다. 그해 12월 하버드대학교 학부생 빌 게이츠는 알테어 8800의 소식을 접한 직후 향후 퍼스널 컴퓨터가 발전하는 데 운영 프로그램이 매우 중요해질 것임을 예측했다. 그는 자신이 본 비전을 타인들이 달성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고, 결국 학교를 나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다.
한편, 당시 컴퓨터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이 빌 게이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75년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대학 중퇴자 스티브 잡스는 우연히 컴퓨터와 전자 기기에 취미를 가지고 있던 스티브 워즈니악의 집을 방문한다. 워즈니악은 직접 만든 마이크로프로세서와 키보드 그리고 모니터를 연결한 기계를 스티브 잡스에게 보여주었다. 이 기계에 매료된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컴퓨터 전문가 및 취미를 가진 이뿐만 아니라 대중 모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퍼스널 컴퓨터를 상상했다. 그리고 이내 어떻게 사업화할지를 구상했다. 그는 마침내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했고, 오늘날 퍼스널 컴퓨터의 시초가 될 ‘애플 I’과 ‘애플 II’를 세상에 내놓았다. 특히 애플 II는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접근성이 뛰어났다. 당시 기존의 컴퓨터보다 몇 년을 앞서는 프로세서와 그래픽 기술, 그리고 혁신적인 디자인 덕분에 출시된 지 한해만에 미국에서 8백만 달러의 판매 수익을 거두었다. 애플 II 컴퓨터를 지켜본 빌 게이츠는 ‘Why not! 모멘트’를 경험한다. 빌 게이츠가 보기에 애플 II의 프로그래밍은 대부분의 비즈니스용 소프트웨어에 대해 호환성이 매우 부족해 보였다. 그는 더 나은 프로그래밍을 개발하여 애플 II의 비즈니즈 소프트웨어에 대한 호환성을 보완한다면 애플 II의 성공에 맞먹는 히트를 기록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소프트 카드, 즉 애플 II의 메인 보드에 삽입되어 비즈니스 소프트웨어를 운영할 수 있게 해주는 칩을 개발하여 애플에 팔았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두 막대한 부를 거두었다. 이후 빌 게이츠는 컴퓨터 운영 체제를 통해 퍼스널 컴퓨터 시장에 진출하려는 IBM과 계약하여 더 나은 운영 체제 개발을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하고 판매한 ‘MS-DOS’라는 운영 체제는 그 어떤 퍼스널 컴퓨터에서도 사용될 수 있었다. 당연히 MS-DOS는 전 세계적인 판매 돌풍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당대 최고의 수익을 벌어들인 마이크로소프트는 퍼스널 컴퓨터 산업의 틀을 새로 짤 정도의 막대한 힘을 거머쥐었다.
빌 게이츠의 성공을 목도한 스티브 잡스 역시 ‘Why not! 모멘트’를 경험한다. 그는 MS-DOS와 달리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기반의 운영 체제로 구동되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통해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프로그램들을 다룰 수 있는 매킨토시(Macintosh)를 고안했다. 그는 개발중인 매킨토시를 친구로 여기는 빌 게이츠에게 소개했다. 하지만 매킨토시를 보고 충격을 먹은 빌 게이츠는 다시 ‘Why not! 모멘트’를 경험했고 더 나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운영 체제를 만들기로 착수했다. 결국 같은 시기 스티브 잡스는 세상에 매킨토시 컴퓨터를 출시했고 빌 게이츠는 윈도우즈(Windows) 운영 체제를 출시했다.
이 시기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의 윈도우즈를 친구의 배신으로 받아들이며 분기탱천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매킨토시의 급격한 실적 감소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등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한편, 빌 게이츠는 윈도우즈가 전 세계적 표준 운영 체제로 자리잡으면서 세계 최고의 부를 거두었다. 하지만 독점적 시장 독식 및 판매전략 때문에 그는 법적 분쟁에 빈번히 휘말렸다. 결국 그는 수많은 미국 소비자에게 비열한 기업가로 낙인찍혔다.
스티브 잡스가 퇴출된 지 12년 동안 애플은 어떤 혁신도 없이 계속 실적 하락을 경험했고 결국 부도 위기에 빠졌다. 애플 이사회는 스티브잡스에게 다시 애플의 최고경영자로 와줄 것을 요청했고, 그는 1997년에 복귀했다. 그는 애플의 위기 극복을 위해 독창적 기술 혁신을 강조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오랜 애증의 라이벌 빌 게이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독점가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애를 먹던 빌 게이츠에게 스티브 잡스의 애플 몰락은 제대로 경쟁할 대상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빌 게이츠는 애플에 15억 달러를 투자했고, 그 자금을 바탕으로 스티브 잡스는 아이맥, 아이포드, 아이폰 등 혁신적 제품을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애플은 세계 최고 이윤을 내는 회사로서 부활했다.
한편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의 사회봉사재단을 만들어 막대한 부를 사회에 환원했다. 이를 통해 독점가라는 빌 게이츠의 부정적 이미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긍정적 이미지로 뒤바뀌었다.
아이작 유
<질문지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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