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이 좋다. 자연이 좋아서 박사과정 때, 카이스트 자연 모방 연구실에 들어가 마음껏 자연에 대해 공부했다. 짬뽕에 들어가는 홍합의 물속 접착력, 연꽃잎의 초발수성 현상, 게코 도마뱀의 벽타는 능력, 상어 지느러미의 물 저항 최소화 현상 등 수많은 신기한 자연 현상에 대해 연구했고 이를 모방하는 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자연이 내게 보여주는 현상들은 늘 신기하고 재미있고 아름답고 경이롭다.
수많은 자연 현상 중에서 내가 제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 사계절이다. 겨울, 봄, 여름, 가을. 3개월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계절 덕분에 우리의 눈, 코, 입, 귀는 지루할 틈이 없다. 반복되는 계절의 흐름만 잘 타도 삶의 질은 더 높아진다. 특히 일과 삶이 균형 잡힌 ‘워라밸’의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계절마다 수많은 재밋거리가 있는데 나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뭐니 뭐니 해도 먹는 것이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건 없다는 말을 남겼다.
1. 겨울
겨울은 춥다. 그리고 건조하다. 나무들에는 수분이 부족하다. 광합성을 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수분이 사용되기 때문에, 겨울에 나무들은 광합성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뭇잎을 다 떨어뜨리고 줄기와 잎 사이의 연결점을 코르크로 막아 수분 손실을 최소화한다. 그리고 겨울잠에 들어간다. 동물들에게는 먹을 것이 참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먹을 것이 많은 가을과 초겨울에 엄청나게 먹은 뒤 따뜻한 곳에 들어가 겨울잠에 빠진다.
우리 인간은? 다행히 인간은 전 세계 물류 유통망을 구축했다. 겨울에도 돈만 있다면 마트에서 다양한 음식을 원하는 대로 구할 수가 있다. 생존을 위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동식물과 같이, 춥고 칼바람이 불고 건조하여 에너지 손실이 많은 겨울을 견뎌야 하는 것은 인간에게도 동일하다. 그래서 겨울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기름진 것, 열량 높은 것을 찾거나 살찌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겨울에 무엇을 먹을 것인가?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별미는 무엇인가? 무엇을 먹어야 추운 겨울을 즐겁게 잘 이겨낼 수 있을까?
홍시.
잘 열린 감이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 숙성되면 홍시가 된다. 어찌나 부드럽고 맛있는지 까치도 직박구리도 홍 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찾아 먹을 정도다. 홍시 속에는 감귤보다 비타민 C가 두 배 내지 세 배 정도 들어 있어 감기 저항력을 높여준다. 그리고 홍시 속 풍부한 비타민 A는 추운 겨울 피부가 탄탄해지도록 도와준다.
간식 사군자.
추운 겨울 길거리를 걷다 보면, 이윽고 간식 사군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바로 군고구마, 호빵, 호떡, 붕어빵이다. 집에 가는 길에 사군자를 한 봉지 담아가 가족들과 나눠 먹으면 정말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도미.
바다의 왕자로 불리, 겨울이 제철인 맛좋은 횟감이다. 어찌나 부드럽고 쫄깃하고 풍부한지! 내가 좋아하는 회
중 하나다. 좀 더 쫄깃한 질감을 느끼고 싶다면 활어회가 아닌 선어회로 먹어도 좋다. 따스한 술 한 잔과 곁들이면 최고다.
과메기.
겨울 별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포항 과메기다. 겨울이 시작되면 청어와 꽁치를 그늘에 걸어두어 자연스럽게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데, 이 과정에서 쫄깃해지며 맛 좋은 과메기가 탄생한다. 겨울바람을 맞아야만 비린내가 나지 않아 겨울에만 먹을 수 있다.
영덕 대게.
겨울철 대표 고단백 별미다. 요즘 대게 프랜차이즈가 많아, 언제든 대게를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대게는 영덕에서 그것도 제철에 먹어야 한다. 영덕 대게는 외국산 대게와 달리 느끼하지 않고 속살이 더 부드럽고 고소하다. 돈만 있다면 혼자서 두세 마리는 너끈히 해치울 수 있다. 제철의 영덕 대게는 그 어느 때보다 속살이 꽉 차 있기에 풍미가 완연히 다르다. 그 외에도 벌교 꼬막, 제주도 방어, 통영 굴, 아귀, 복어 등 겨울철 유명 별미들이 있는데 어패류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겨울 별미를 참 좋아하나 보다.
2. 봄
옛말에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계절마다 자연이 내놓는 제철 음식을 잘 섭취하여 영양이 넘치고 활기찬 삶을 즐기라는 뜻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되면 만물에 생동감이 넘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겨울의 추운 날씨에 움츠러들고 긴장했던 탓일까? 겨울 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던 탓일까? 따스한 봄바람이 살랑일 때면 많은 사람이 쏟아지는 피로감과 졸림으로 고생한다. 바로 춘곤증이 온 것이다. 춘곤증은 2월부터 기승을 부리기 시작해 3월에 피크를 찍는다. 따라서 겨울 못지않게 봄에도 삶에 활력소가 될 음식을 잘 섭취해야 한다. 봄에는 무슨 제철 음식이 우리를 기다릴까?
봄 과일.
붉은색 계열의 껍질을 가진 제철 과일이 많은데, 딸기·자몽·한라봉 등이다. 이러한 과일들의 특징은 안토시아닌 같은 항산화 성분과 비타민 C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토시아닌은 비타민 C가 함께 존재할 때 항산화 효능이 극대화된다. 따라서 피로를 풀고 건강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싱싱한 봄나물.
봄나물은 자연이 인간에게 선물해주는 춘곤증 처방전과 같다.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봄나물 제철이 춘곤증의 피크인 3월이다. 쑥, 냉이, 달래, 씀바귀, 취나물 같은 봄나물에는 각종 비타민이 가득하며 혈액 순환, 피로회복, 면역 강화 등 수많은 효능이 있다. 봄나물은 새콤달콤 양념장에 무쳐 먹거나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뒤, 초장에 찍어 먹으면 좋다. 나의 경우, 마트에서 봄나물 서너 가지를 사서 비빔밥의 재료로 삼아 비벼 먹거나, 쑥떡을 만들어 먹거나, 나물 전을 만들어 먹는 편이다.
참다랑어.
사실 참치캔에 들어 있는 고기는 가다랑어로, 참다랑어가 아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가다랑어는 가짜 참치이고 참다랑어가 진짜 참치이다. 가다랑어는 참다랑어에 비해 질기고 느끼한 맛이 강하다. 또한 가다랑어는 쉽게 상하기 때문에 대부분 통조림처럼 캔 가공음식 재료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제 진짜 참치 이야기를 하자. 회를 좋아하는 나는 봄이 제철인 어패류 중에서 단연 참다랑어를 최고로 친다. 4월 말부터 5월 사이 참다랑어가 산란기에 접어들 때참치 맛이 최고다. 비리지 않고 부드러우며 포함된 지방산이 고소한 풍미를 더한다. 그 어느 생선보다도 DHA, 오메가3 같은 불포화 지방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심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두뇌 회전에 도움 된다. 또한 비타민 B 복합체가 많이 함유되어 춘곤기에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니 정말 봄 제철 별미로 최고다.
3. 여름
지구온난화의 영향일까? 여름이 갈수록 더워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름에는 장마와 태풍으로 불쾌지수가 높아진다. 여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잘 먹고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야 하지만 날씨 탓인듯 입맛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여름철 어떤 제철 보양식이 당신의 기력을 회복시켜줄까?
제철 과일.
먼저 여름철 제철 과일인 수박, 참외, 토마토가 있다. 이 과일들의 특징은 수분과 미네랄이 많다는 것. 이것들을 먹으면 여름철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에게 수분 보충이 된다. 특히 열이 많은 사람에게 열을 내리고 안정시키는 효과도 준다. 이 중 나는 토마토를 좋아한다. 토마토는 오븐에 구워 먹으면 토마토의 풍미가 더 살아나고 모차렐라 치즈와 함께 먹거나 직접 으깨서 파스타 소스로 만들어 먹으면 정말 좋다. 한 가지 더 매실을 추가하고 싶다. 매실은 다른 과일에 비해 많이 신 편이다. 즉, 산도가 높다. 따라서 직접 먹기보다는 매실장아찌를 만들어 먹는 게 좋은데, 자연 살균 능력이 있어 여름철 식중독이나 장염 예방에 좋다. 회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매실장아찌우메보시를 먹는 이유다.
장어, 갈치, 전복.
여름철 제철 음식에는 정력에 좋다는 음식이 참으로 많다. 대표적으로 장어, 갈치, 전복이 있다. 완전 고단백 음식이며 눈에 좋은 비타민 A가 특히 많고 불포화 지방산 등 영양가가 잔뜩 들어 있어 무기력을 날려버리는 3종 세트다. 이러한 여름 제철 해산물은 기본적으로 몸을 차갑게 하는 성질이 있기에 더운 성질이 있는 부추를 함께 넣어 요리하면 느끼함이 덜하고 맛이 더 살아난다.
삼계탕.
한편 여름철 가장 더운 복날에 삼계탕집은 사람들로 만원이다. 왜 삼계탕일까? 그것도 인삼, 약초, 마늘과 함께 우려낸 삼계탕 말이다. 삼계탕 자체가 열을 내게 하는 성질이 있는데 인삼, 약초, 마늘을 넣어 우려내니 삼계탕을 먹으면 더 열이 나는 법이다. 여기에 우리 조상의 지혜 ‘이열치열’의 원리가 담겨 있다. 여름철에는 땀을 많이 흘려서 내장의 열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 차가워진다. 우리 몸에서 온도를 감지하는 센서는 피부 쪽에 있기에 내장이 차가운지 감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여름에는 몸이 덥다고 계속 냉한 음식을 먹게 되는데 이 경우 장염, 설사를 겪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가장 더운 복날에 열을 나게 하는 삼계탕을 먹는 것이다. 열을 나게 하니 시원하고 동시에 내장을 따뜻하게 해줘 몸이 건강해진다.
4. 가을
이제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다. 가을은 제철 먹거리가 정말 다양하고 풍성하다. 과일로는 과일 끝판왕 격의 사과가 있다. ‘매일 아침 사과 한 개면 의사 볼 일 없다’는 영국 속담이 있을 정도로 사과는 영양가도 좋고 식이섬유가 많아 다이어트에 좋다. 나 또한 매일 아침밥 대신 사과 하나만 먹는다. 그 덕분에 몸을 가볍게 유지해왔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과는 가을에 먹을 때, 새콤달콤한 맛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다.
광어.
가을 제철 음식으로 광어가 있다. 비린내가 없으며 단백질이 많고 지방은 적어 매우 쫄깃하고 식감이 좋은 광어는 회 좋아하는 사람들의 단골 메뉴이다.
대하, 전어
또한 대하와 전어가 기다리고 있다. 가을 전국 곳곳에 ‘대하축제’ 그리고 ‘전어 축제’가 열리는데, 가장 가까운 축제에 꼭 가보길 추천한다. 대하와 전어에 소금 쳐서 구워 먹는 건 정말로 최고 중 최고, 히트다 히트! 특히 전어구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말 맛있다.
이렇게 사계절의 제철 음식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사계절은 우리의 혀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신은 우리가 사계절을 충분히 누리고 즐길 수 있도록 제철 음식을 선물로 주셨다. 제철 음식만 알아도 지루한 일상이 즐거운 일들로 가득할 것이다.
아이작 유
<걱정마 시간이 해결해줄거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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