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천주교에서 40일은 정말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모세가 여호와로부터 십계명을 받기 위해, 호렙산에서 고난의 시간을 보낸 기간이 40일이었다. 선지자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여호와의 계시를 받기 위해 천사가 주는 음식만으로 버틴 고난의 기간이 40일이었다. 선지자 에스겔은 여호와께 범한 죄에 대한 회개 의미로 40일 동안 옆으로 누워 있었고 메시아 예수는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며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겼다. 그리고 예수는 부활 후 40일만에 승천했다.
40일은 1차적으로 고난을 상징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난 이후에 나타날 속죄, 쇄신, 부활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과 천주교인들은 매년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부활절 이전 40일 동안 예수의 고난에 참여하고 회개를 수행하는 사순절을 보낸다. 이렇게 40일은 고난과 동시에 새로워짐을 상징한다.
고난은 나쁜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에 유익하다. 효과 있는 약이 쓴 것처럼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걸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쓰디쓴 고난이 수반된다. 그 고난을 감내하지 않고는 변화와 새로움을 경험할 수 없다. 하지만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대로, 끝이 올 것 같지 않은 고난은 반드시 끝이 있고 그 뒤에는 거듭남의 기쁨이 찾아온다. 이는 해산의 고통을 겪는 산모가 해산 이후 사랑스러운 아기를 보고 그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당신에게 쇄신과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 이것들이 새로워질 것을 꿈꾸며 고난의 40일에 참여한다면 어떨까? 종교적 의식에 참여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쇄신과 변화가 이뤄질 때 수반되는 고난에 대해 40일간은 참고 인내하라는 의미이다. 어두운 새벽이 지나면 어김없이 밝은 아침이 찾아오듯 고난은 당신의 유익한 기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작 유
<걱정마 시간이 해결해줄거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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