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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Sep 04. 2020

아기 엄마의 글 쓰는 하루

오늘도 영혼을 끌어모아 써본다...


멍하니 유모차를 밀고 가다가,

또는 노래를 들으며 빨래를 개다가

갑자기 글감이 떠오른다.


'아, 그래! 이런 식으로 글을 써 내려가면 되겠다! 요 내용으로 이어서...'


반짝반짝 멋진 문장들이 튀어나온다.

그런데 곧 슈퍼에 도착하든 냄비가 끓어오르든 아이들이 소리 질러 엄말 찾든 다른 할 일이 생기고 쓰려던 글은 잠시 잊혀진다.


-

드디어 둘째가 낮잠을 잔다.


'아까 뭔가 쓰려고 했었는데..?'


어떤 때는 며칠이 지나서야 다시 생각이 난다. 그런데 처음 떠올랐을 때만큼 반짝이는 생기가 없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 흠.. 뭔가 이 느낌이 아니지만 일단 써본다. 쓰다 보면 더 좋은 게 떠오르겠지 하면서.


잠자는 아이 옆에서 스마트폰을 가지고 열심히 오타와 씨름을 한다. 자리를 비우면 아이가 금세 깨기 때문에 길게 재우려면 옆에서 하는 게 낫다. 손바닥만 한 기계로 인터넷도 하고 글도 쓸 수 있으니 이런 신문물의 시대에 살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첫째는 다 커서 혼자 놀고, 둘째의 낮잠 시간 동안 나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 내용 쓰다가.. 저 내용 쓰다가.. 어차피 나중에 연결하거나 삭제하면 된다 싶어서 일단 때려 쓰고 본다. 그러다 문단의 위치를 좀 바꾸고 싶어서 글자들에 블록을 씌우던 중 잘못 터치하는 바람에 멀쩡한(..때론 중요하기까지 한) 문단을 하나 날려먹는다.


'아우... 확 그냥 때려치울까? 아니야.. 아니야. 진정해, 오후야.'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기억에 없는 기억까지 되살려서 사라진 문단을 채워 넣으니, 뭔가 전보다 더 생기를 잃은 느낌적인 느낌. 끄아아. 이것은 글인가 단순한 끄적거림인가.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은데 아이가 깼다!! 

일단 <저장>부터 누르고, 머릿속으로 다음 이어질 문장을 생각하며 아이를 안는다.


가끔 글을 마저 다 쓰려고 집착하면 아이가 혼자 노는 그 잠깐 사이에 집이 난장판이 된다. 집이야 그저 치우면 되니까 사실 별 상관이 없다. 다만 조용해서 가보면 화분 흙 파먹기 직전이기도 하고, 화장실 변기 뚜껑을 열기 직전이기도 하고, 기저귀가 온통 응가 범벅이 되어 있기도 해서.. 간식은 준다 해도 왜 이렇게 금방 다 먹고 없어지는지...


* 이미지 출처 pixabay


어느덧 고요한 밤이 되고 이제 점점 늦게 자는 큰 아이까지 다 들여보내 재우고 나면,

급하게 필요한 것들을 쇼핑앱으로 주문하고 밀린 SNS도 하고 졸린 눈으로 겨우 컴퓨터 앞에 앉아 때론 전문서적을 뒤적여 본문에 인용해 넣으며 새벽까지 글을 마무리해서 올리기도 한다.

이것도 둘째의 새벽 호출이 없으면 다행이고, 아이가 자다가 깨서 찾으면 들어가서 재우다 같이 잠이 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나마 지금 어린 둘째 키우면서는 글 쓰는 일이 취미라서 이 정도다. 예전 첫째 낳고 석사 복학했을 때는 새벽마다 논문을 써야 하는데 자꾸 아이가 깨서 품에 안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작성했던 기억도 있다. 아기 키우면서 꾸준히 독서하고, 모임에, 각종 활동에 특히 책도 내시고 하는 분들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

잠깐! 생각해보니 결혼 전 블로그를 할 때에도 글감이 떠오르고 실제 글을 완성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땐 출퇴근길에 주로 글감이 떠올랐는데, 머릿속에 담고 있을 때는 좋아 보이지만 막상 집에 와서 써보면 이상했다.

결국 표현력의 문제인 듯..

그리고 게으름의 문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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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오늘도 나는 아이들이 자는 동안 또 쓴다.

이 시간은 아이들 엄마 아닌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니까.

그리고 글쓰기가 좋으니까.

머릿속의 생각을 글에 비워내고 산뜻하게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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