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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Dec 12. 2020

내 마음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 수가 없을 때

feat. 자기 치유의 한계


한때 난 MBTI 빠순이였다. 나와 남의 심리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온라인 MBTI 카페 활동에, 오프라인 정모도 가끔 나가고, 블로그에 자주 글을 끄적면서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데에 시간을 쏟아부었다. 남들은 알 수 없는 깊은 무언가를 발견한 척 글을 써댔다.



해가 갈수록 지극했던 관심도 사그라들고,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 본격 심리학의 세계에 입문하여 새로운 정보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필드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MBTI 말고도 체계으로 검증된 심리검사들이 많이 있었다. 주로 병리적인 면을 측정하는 검사이기는 하지만, 심리검사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또다시 호기심이 발동, 나는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져서 불쑥 MMPI 검사를 받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상적으로 수치지는 않았지만(다행이다!) 여전히 나의 미성숙한 측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심리적 차원의 것을 성숙하게 조절하고 대처하지 못해서 무의식 중에 신체적 차원으로 표현하고 회피하는 신체화.


뭣이라? 몇 년째 내 마음을 관찰하고 있는데... 심리를 잘 모른다고??

대체 내가 해온 건 뭐지?


홀로 마음을 분석하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마음을 성숙하게 표현하고 소통하는 것에는 여전히 서툴렀던 것이다. 아마 스스로의 마음속으로 파고든 것도 미성숙한 회피의 연장선이었을 것이다.

힘든 이유를 들여다볼 수는 있어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힘들다" 말하지는 못했다. 일기에는 쓸 수 있어도 친구들 앞에서 "난 이게 싫다" "도망치고 싶다" "위로받고 싶다" "보고 싶다" 입도 뻥끗 못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당사자에게 말 못 하고 불편하면 몸이 대신 끙끙 앓았다. 그런데도 내 마음만 잘 들여다보면 용기가 생기고 아픈 게 나아질 줄 알았다.


그리고 지적받은 나의 말투. 말끝을 흐리고 살짝 어린아이 같은 말투.

여기에는 스스로를 힘없이 여기고 타인 앞에 무력해지는 패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아이처럼 굴면서 미성숙하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었다. 사실 난 내가 그런 말투를 쓰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건 혼자 글을 쓰면서는 전혀 보이지가 않았기에...


심리검사 척도 하나에 가장 힘겨워하던 대인관계 패턴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두려움을 내려놓아야 한다,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 글로는 잔뜩 싸질렀지만 정작 한 치 아래 그림자도 못 보고 있었다. 장애물 위로 넘어가야 하는데 옆으로만 한참을 돌아가는 중이었다. 결국 그 너머에는 닿지 못한 채...

어쩐지 까도 까도 눈만 따갑고, 답은 나오지 않고, 늘 한 구석이 공허더라니.






"심리검사를 받으려고 한 이유가 뭔가요?"


검사 해석을 받는 날, 선생님께서 가장 먼저 이 질문을 던지셨다.


"제가 상담대학원 준비 중인데 공부를 하다 보니 심리검사는 직접 받아보면 공부에 더 도움될 것 같아서요."


"상담 공부는 왜 하려고 해요?"


"그게...."


이상하게도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기 때문에... 그 결정을 하기까지의 아팠던 마음이 쏟아져 나왔다 해야 할까.

상담실은 참 희한한 곳이다. 입시 면접이나 취업 면접에서는, 아니, 친구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더라도 울지 않을 텐데, 나직한 목소리에 마음의 방어가 한없이 느슨해지는 그곳에서 하염없이 진심이 쏟아져 나왔다.


아, 내가 이래서 이렇게 해왔구나.

아, 내게 이런 부분이...

아, 내가...

아...


그 전에는 교재에서 지표 해석을 아무리 봐도 '이거 나 같아, 아니, 이것도 나네' 조금 부끄럽지만 그저 멀뚱히 거리감을 두고 분석하던 것과 다르게...

왠지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 분석는 내용 진심으로 와 닿았다. 나조차도 볼 수 없게 여태껏 숨겨두었던 아기 같은 마음이... 부끄러운 것보다도 아픈 게 컸다.


'왜 말도 못 하고 살았니..'

'얼마나 힘들었으면..'


상담실에서 나온 뒤로 한동안 휑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며칠이나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부유하는 유령처럼 떠다녔더랬다. 나의 진면목을 봤을 뿐인데 마치 발가벗겨진 채 세상에 던져진 기분이었.


'난 이제 뭘로 나를 가리면서 살아야 하지?'


그동안의 내가 바보 같으면서도 날 것의 나를 마주하는 건 아직 두려웠다. 그동안 스스로를 우아하게 칼질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그래도 한편으로 홀가분한 마음 또한 있었.


'더 이상 숨길 필요 없구나...'


잘 감춰놓은 줄로 믿었는데... 실은 나만 모르고 이미 다른 사람들은 아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때 선생님의 권유로 심리상담을 5회기 정도 받으며 산산이 부서 삶 비로소 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무의식이 열려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책을 읽고 그곳에서 나에 관한 이야기를 봐도 알아챌 수가 없다. 심오하다고 생각은 하지나에게 적용이 잘 안 된다.


무의식은 말 그대로 '無의식'이라서 보통 스스로 의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들여다보는 나의 속마음은 기존에 의식하던 범위를 넘어서기가 어렵다. 같은 자리를 맴돈다.


무의식에 접촉하려면 마음 깊숙한 곳까지 빛을 비춰주는 거울, 타인이 필요하다.

사람의 눈은 스스로를 볼 수 없게 되어 있고, 자신의 모습을 보려면 거울이 필요한 법이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도 정확하게 바라보려면, 자신을 밖에서 바라봐줄 대상이 있어야 한다.

마음 밖 거울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무의식을 눈치채게 된다면, 이는 전의식* 수준에서 처리되어 점차 의식 수준으로 올라오게 된다. 내가 왜 이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던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하고 의식적으로 바꿀 수도 있게 된다. [*전(前)의식이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존재하고, 완전히 의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의식처럼 저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정도는 아닌 상태로, 조금만 생각을 집중해보면 스스로 ‘의식’할 수 있는 생각이나 기억, 동기 등을 말한다. - 출처 : 다음 백과]


무의식에 깊이 숨겨둔 것들은 다 이유가 있다. 압도적으로 아프고 두렵기 때문이다. 건드려지면 화 나고, 보통은 손댈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서 상담사로부터 섬세하고 전문적인 도움의 손길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심지어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일을 하는 상담사들도 자신의 무의식은 다 보지 못한다. 그 무의식이 상담 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상위 전문가에게 따로 교육분석을 받곤 한다.




자기 성찰과 개방은 분명 치유의 과정에 큰 도움이 다. 특히 온라인 활동에서는 그 익명성 때문에 오히려 용기낼 수 있고 응원받을 수 있다.

글쓰기가 트라우마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 여러 연구들에서 증명되고 있다. 정서적인 경험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인식이 명료화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자신 더 깊이 이해하고, 쏟아내는 것만으로 속 시원함을 줄 뿐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여 나아갈 길을 비춰다.

스스로를 돌보는 이 모든 과정들 다 뜻깊다.


다만 자기 치유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글쓰기를 통한 성찰은 인지적인 측면이 강해서, 살아있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해소하기에는 그 감정을 함께 안아주고 담아줄 타인이라는 대상이 필요하다.

 살아온 과정 속에서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모든 걸 혼자 해결하고자 하게 된 경우도 . 지친 나머지 그나마 안전하다 싶은 자기 마음속으로 숨어드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심리상담은 치과 치료와도 같다.

이가 상하면 아프긴 무척 아픈 치과에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너무 싫고 무섭다. 단단한 치아를 후벼 파는 소음과 진동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그렇지만 아픈 이를 내버려 둘수록 더 큰돈을 들여 더 어려운 치료를 더 오랫동안 받아야 한다. 아무리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양치질을 해도, 전문가의 손길이 궁극적으로 썩은 이에 닿을 때까지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부끄러워도 입을 활짝 벌리고 누군가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도록 내맡겨야 한다.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작은 것에서부터 조금씩 천천히 밖으로, 아주 천천히 작은 한 걸음 시작해보면 좋겠다.

아직 이 세상에는 나를 위해 안전한 곳이 충분히 남아있으니까.



*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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