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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Aug 30. 2020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싸워야 한다

마음속 비난의 목소리들과


내 머릿속에는 쉬지 않고 나를 감시하는 시선이 있다.


특히 밖에서 일을 하든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꼭 아까 있었던 일을 반추하곤 한다. 때론 다시 떠올리면서 더욱 즐겁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어디 말실수한 것 같다며, 그때 이렇게 행동했어야 했다면서 후회하고 스스로를 꾸짖는다.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K으로 기분 나빴을 거야.'

'그런다고 넙죽 받아먹? 하여간 눈치도 없어.'

'아무래도 걔가 널 싫어하는 것 같아. 눈빛이 좀 그랬어.. 아무렴 누가 너 같은 걸 좋아하겠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는 신념이 있어서인지 이렇게 제 3자의 시선으로 끊임없이 자책하고 종종 비난하면서 잘못을 교정하려 애쓴다. 다음엔 조금이라도 더 잘하기 위해서.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언제 내쳐질지 모르는 이 세상 속에 조금이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그래서 나를 감시하는 그 목소리는 분명 도움이 되기도 했다. 보다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만들고, 사람들 속에서 갈등 없이 기능하도록 이끌었다. 또 사회생활에서 틀에 박힌 예의를 갖추도록 도와주었다. 그렇지만 목소리를 의식할수록 더 긴장되고 말과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뱃속이 불편하고 늘 불안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 듯해도 막상 외로웠다.


혹 멋대로 행동했을까 봐,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까 봐 스스로를 비난하는 목소리. 아무리 노력해도 칭찬보다는 숨은 결점을 찾아 날 탓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처음에는 이 또한 자연스러운 내 생각인 줄로만 알았는데 심리학을 공부하고 나서 알았다. 그것은 엄격한 초자아(superego)의 목소리, 날 지배하는 상전(topdog)의 목소리라는 것을..



* 이미지 출처 : 웹툰 <유미의 세포들>


'이 쉬운 것 못 하냐. 바보같이..'

'으이그, 그럼 그렇지, 넌 생전 바뀌지를 않아.'

'지랄하고 자빠졌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그것은 사실 내가 아니었다. 잘못해서 혼날 때 부끄러워하면서 들었던 목소리였다. 혼자 무서워 떨면서 만들어낸 신념들이었다. 아프게 남은 상처가 주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발버둥 치던 내 마음이 만들어낸 혹독한 목소리였다.

특히 아이 때에는 무엇이든 자신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테면 부모님이 이혼을 해도 자신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마술적 사고는 전능감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기 비하로 이어지기도 쉽다. 충분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자라면, 상황을 중립적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자책부터 하는 습관이 드는 것이다.


결국 이 목소리는 살아오면서 가족에게, 선생님에게, 사회로부터, 또는 스쳐 지나간 누군가로부터 내사하여 받아 든 채찍이었고, 혹은 부족한 내게 필요해 보이고 좋아 보여서 이상적으로 갈망하는 도덕관념이었다. 이룰 수 없는 꿈같은 것.. 어쩌면 이룰 필요가 없는 쓰레기 같은 것..


때론 실수하는 인간적인 모습들과 삐쭉삐쭉 튀어나오는 욕구들, 본능적으로 유치한 내 생각과 감정들이야말로 모두 진정한 나였는데, 진짜 내 목소리는 언제나 저 뒤에서 숨죽여 떨고 있었다.


'슬퍼. 마음이 아파서 위로받고 싶어.'

'그건 진심이었어. K도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 필요가 있잖아.'

'나도 지금 힘들어 쉬고 싶은데...'

'충분히 열심히 했어. 인정해줘.'


그랬다. 진짜 나는 하인(underdog)의 자리에 웅크리고 있었다. 내 마음은 핍박받는 그 자리에 종속되어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자책하는 한편으로 자꾸 짜증이 났었나 보다. 내 자리를 빼앗겼으니까. 진짜 내 인생이 아니었으니까.



* 이미지 출처 pixabay


자신감을 가지라든지, 스스로를 사랑해주라든지, 넌 충분히 괜찮은 사람인데 왜 그렇게 부정적이냐는 말들..

흔히 듣지만 생각을 바꾸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그때마다 마음 깊은 곳 어디선가 저 상전이 그러거든..

넌 고장 나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그러니까 날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과 싸워야 한다.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어떤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혹시 누가 그런 말을 했었는지, 내 것이 아닌 그 목소리들을 먼저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덮어놓고 화해하기 전에 때론 맞서 싸우고 때론 같이 두려워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나를 이해해줘야 한다.


'아니야! 그건 아빠의 생각이지, 정말로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니야!'

'잠시 쉬어도 괜찮아. 잘 들어봐. 지금 실제로 뭐라 하는 사람은 없어. 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었어.'

'실수 좀 했다고 날 죽일 사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아?'



다만 여기서 상전과 하인 중 누가 이기고 지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상전과 하인의 반복된 다툼으로 실제 생활에 건강하게 대처할 에너지가 바닥나는 것이 진짜 문제다. 그저 두 힘이 서로 균형을 되찾고 공존할 수 있으면 된다.

알고 보면 상전의 의도가 나를 해치기 위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아마도 당시에는 나를 지키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겠지만, 그사이 성장하고 바뀐 환경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음에도 익숙한 단 하나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불필요해진 그 방식에 압도된 채로 말이다.


만약 익숙하던 그 채찍을 내려놓으면 너무 막 나갈까 봐, 정말 엉망 될까 봐 더 불안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오랫동안 그런 삶에 길들여져 왔으니까..

그래도 천천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새롭게 발견해 나가면 어떨까. 타인이 원하는 것들로 채운 헛헛한 삶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시원하게 숨쉬는 삶을 위해. 한없이 작아져있던 나를 위해.


이제는 그렇게 스스로를 하인 취급하고 괴롭혀온 엄격한 상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균열을 만들어볼 때이다.


* 이미지 출처 : 웹툰 <유미의 세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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