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을지라도 완전한 삶

by Sophie

1.

마음이 어지럽다.

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완벽하게 짜여진 극본마냥 나에게 찰떡같이 맞는 바로 그 길을 알아내지 못하는 걸까.

아니 그건 바라지도 않고, 그냥 다음 스텝이나 좀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천둥소리처럼 나현으아으아으아 내가으아으아으아...


잠시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다가 멈추곤 한다. 다 오묘하고 사랑 넘치는 큰 뜻이 있어서 그런 걸 텐데. 참 제가 오만하고 방자했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찬양 마지막 즈음에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오늘도 날 이끄심 믿네라는 가사가 있다.

나는 또 한 번 오만하고 방자하게도 마지막 가사가 가장 좁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오늘도 날 이끄심 믿네 였다면 조금 더 완벽한 찬양이 되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실 그렇지 않나, 가장 좁은 길이 나에게 가장 완전한 길이 된다면 그것만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일이 어디있느냐, 하는 거지.


그러니까 내가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개연성 없이 내던지는 것 같다면 그것은 정상이다. 그러고 있으니까.


그냥 그런 생각을 했다. 다음 달도 아니고 다음 해도 아니고 당장 내일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이 판국에, 나를 뭐 지금 당장 부르신다고 해도 나는 온전히 무력한 것을 알고 있는 이 시점에,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니까 나는, 내가 언젠가 생의 전성기나 마지막 즈음에 이룰 무언가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삶보다는, 매일매일 지금의 순간이 주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목적지임을 깨닫는 삶을 살아야겠다. 주님이 나를 이 자리에 보내신 당장의 이유들이 모여 언젠가의 나를 이루는 삶.

주님의 이유들이기에 선하지 않을 수 없는 삶.

좁을지라도 완전한 삶.



2.

매일매일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러나 산이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이런 복을 어찌 누릴까. 눈 온 산이 아니더라도 산에는 평지와 다른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이 노구를 받아주소서, 산에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도 울렁거림과 함께 차분한 경건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이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대체로 광활한 것들을 사랑하는 편이다.

바다,

산,

들판,

하늘,

뭐 이런 것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애수를 동반한다.

특히 바닷결에 햇빛이 부딪혀 반짝이는 순간. 바람이 들판을 춤추게 하는 순간.

나는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곤 하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 아픈 사랑은 사실 사랑이 아니라 짝사랑일지도. 되돌아오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니.


사랑이든 짝사랑이든 간에 어쨌든.

그 리듬감 있는 울렁거림은 내 하루를 휘감고, 나는 또 오늘을 행복하기로 결심한다.

고개만 치켜들면 언제든 결심할 수 있는 그 행복을,

딱 오늘치만큼만 눈에 담는다.



3.

과테말라에서 온 아가들 12명을 데리고 일주일간 출장을 왔다. 이건 하루 일정이 끝나고 포근한 호텔 침대 안에서 쓰는 글.


이 일을 하다 보면 괜히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는 날들이 있다. 아이 한 명이 하루 배고프지 않은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이 한 명이 오늘부터 학교에 다닌다고 세상이 변할까. 어차피 아이들은 계속 태어날테고, 수많은 굶주림 가운데 고작 한 개의 생이 오늘 희망을 조금 맛보는 것뿐일 텐데.


그러나 이 일을 하다 보면 괜히 그 조그마한 희망에 무턱대고 기대어보고 싶은 날들도 있다.

오늘처럼.

아가들이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한국이 너무 좋아서 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그랬다.

아이들 중 반이 한국에 머문 고작 3주 동안 꿈이 바뀌었다.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물론 스페인어로)

"우리 아이들은 부모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함께한 하루 동안 그 조그마한 아이들의 세상이 큼지막하게 변한 거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세상이, 앞으로 꿈꿔나갈 세상이, 통째로 새롭게 시작된 거다.


꽤 오랫동안 내 삶을 이끌던 말이 오랜만에 생각났다.

He who saves one life, saves the world entire

[Schindler's List]


고작 한 사람의 삶은 누군가에게 온 세상임을.

그리고 그렇게 온 세상을 얻고 나서야

그에게는 비로소 다른 누군가의 세상을 구해낼 힘이 생기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그래도 되는 나이가 어느덧 훌쩍 지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