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을 보며, 보는 오늘의 한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놓치는 것들

by songofsongs

명청교체기에 조선은 선택을 강요받았다.


명나라의 신하로 살 것인지, 청나라의 신하로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지만 그것들 중에서 선택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재조지은이라는 명의 도움이 문제였다.


1) 광해군에서 인조로

흔히들 영화 또는 영상매체에서 광해군을 폭군 또는 중립외교를 실천하며 전쟁을 피하려던 명군으로 묘사하고는 한다.

역사가 분들 중에는 광해군을 혼군이라고 해석하시는 부류가 있으신데, 매우 적절한 해석인 것 같다.

명암이 존재하는 광해군이지만 결국 갈피를 잡지 못했다.

형제를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성리학 국가인 조선에서 영창대군을 죽이고, 그의 생모(광해군의 법적인 어머니)를 한 장소에 격리시켰다.

백성을 그렇게 사랑하며 전쟁을 피하려고 했지만 대동법의 확대 실시에는 비판적이었다.

결국 이런 동전의 양면 같은 모습이 주변에 반발을 초래했고, 능양군(인조)을 왕위에 올리는 인조반정이 일어났다.


2) 김상헌과 최명길의 대립

요즘도 친중이냐, 친미냐를 정치권 인사들을 분류하고는 한다.

임진왜란을 거치고 두 차례의 호란을 거치며 조선에서도 친명이냐, 친청이냐를 두고 격렬한 갈등이 있었다.

부디 격렬한 선택의 강요보다 더 나은 삶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을 멈추지 않는 성찰과 선택을 계속해 나가면 좋겠다.

오해할까 봐 밝힌다. 친중은 답이 아니라는 것은 말하면 입이 아프기 때문에 생략한다.

다만 역사가 근거를 제시해 주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대부분 중국이 통일되고 확장될 때, 한반도의 국가들은 멸망했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대부분이 비슷하다.


3) 조선시대 명청교체기를 통해서 오늘의 미중갈등을 본다면?

미중 갈등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은 그간의 경험을 살려서 고려의 고종 임금처럼 천운이 따르는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라는 방법 밖에 없다.

운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는 게 너무 안타깝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어중간한 선택은 미중이 현재 진행 중인 극단의 갈등 속에서 선택할 수 없다.


3-1) 고려가 획득한 부마국 지위가 가진 숨겨진 백성에 대한 배려

고려는 긴 세월 동안 몽골(원)의 침략을 받았다. 항복도 억지로 했다. 그렇지만 항복에 엄청난 행운이 따랐다. 항복한 쿠빌라이가 칸에 지위에 오르면서 당나라도 항복시키지 못했던 고려가 먼저 내게 항복했으니 부마국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에 따른 엄청난 수난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몽골(당시 세계적인 국력을 가진 국가)에서 인기 있는(필요한) 능력을 가진다면 고려인이어도 황제의 부인이 될 수도 있었다. 능력만 있다면 고려의 왕보다도 높은 지위에 올라갈 수도 있었다. 이런 측면은 요즘과 유사하다고 할 부분도 존재한다.

왕의 아들인 왕자부터 왕건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정을 한다. 이는 몽골과의 결혼으로 백성들이 겪은 처첨한 상황을 백성에게 신호를 주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고려의 지배층 몽골에게 항복하는 상황을 초래한 것에 대한 책임을 일부는 인정하려는 행동을 한 것 같아 보인다. (이는 학부시절 한국중세사 수업 및 중세사 연습(세미나 수업)의 수업내용에서 다루어진 관점이다.)


3-2)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끌려간 포로들의 귀환을 무시한 조선

반면 조선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전후로 후레자식(오랑캐로부터 온 자식에서 시작한 비속어)이라는 말처럼 전쟁을 겪으며 생긴 혼혈아를 철저히 차별하는 사회분위기가 존재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이후에는 겉으로는 청과 조공책봉관계를 맺기 시작했지만,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대보단’(죽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에게 제사 지내는 제단)에서의 제사들이 꾸준히 행해진다. 조선의 왕들이 명에 대한 재조지은의 은혜를 잊지 않는 것에서 자신이 가지는 왕권(왕으로서의 권위)의 근거를 찾았다.


부디, 과거 조선처럼 지금의 대한민국이 큰 전쟁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혹시라도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겪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제시키는 방식으로의 해결이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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