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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주는 일 년 365일 바쁘게 지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건강을 필수적으로 챙겨야 했다. 건강한 삶을 위해 생활 루틴을 갖는 건 건강관리의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그는 루틴을 지키는 데 아주 적합한 인간이었다. 아침 식사는 가족들과, 나머지 두 끼는 비즈니스 파트너 또는 김 비서와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간혹 어머니가 소개한 맞선 상대와 식사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체로 늘 같았다. 업무적으로 머리를 많이 쓰는 데다 식사시간 마저 업무의 연장선이 되는 바람에 소화 불량이 자주 생겼다. 수요일 저녁이면 김 비서는 반드시 소화제를 챙기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위장 문제로 자연스레 식사량을 줄였고 부족한 체력은 운동으로 보충했다. 덕분에 30대임에도 유학 시절보다 더 탄탄한 근육을 갖게 되었다. 육체적 체력은 어찌어찌 유지했지만, 정신적 체력 관리는 점점 소홀해졌다. 혼자 있어야 온전히 에너지가 회복되는데, 일을 우선하다 보니 스트레스 관리는 늘 뒤로 밀린 것이다.
하지만 지난번 사촌의 일로 일찍 출근한 이후, 고독주의 아침 루틴에 변화가 생겼다. 카페의 평범한 샌드위치가 의외로 소화가 잘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계기였다. 아주 평범한 샌드위치였다. 딱히 유기농 재료를 쓰지도 아니었는데도 하루 종일 속이 편안했다. 그리고 정신적 체력 회복도 빨라졌다. 4주 차에는 소화제마저 끊었을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삶의 질과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 변화된 아침 루틴은 고독주에게 아주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환절기, 가을 메뉴 이벤트가 끝나가는 월말이었다. 겨울 신 메뉴용 배너와 전단지가 나왔지만 아직은 가을 메뉴를 팔아야 했다. 3개월 내내 붙어있는 가을 메뉴 전단지 모서리 끝이 닳아 지저분했다. 며칠 뒤면 떼어낼 전단지였지만 영원수는 말끔하게 다시 붙이기 위해 칼과 투명 테이프를 창고에서 가져왔다. 손님이 매장 관리가 허술하다고 여길 수 있었지만 사장님은 이런 세세한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른 알바생도 마찬가지였다.
전단지를 다시 붙이기 위해 다가오는 영원수의 발걸음에 샌드위치를 먹던 고독주는 속으로 흠칫 놀랐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줄 착각했기 때문이다. 평일 아침마다 얼굴을 보는 사이였지만 주문할 때 주고받는 말 외에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녀가 어딘가 엇나간 듯하면서도 합리적인 사고 흐름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뿐이었다. 영원수 역시 그를 그저 '1번 고객님'으로 여겼다. 그런 그녀가 평소라면 절대 넘어오지 않았을 픽업대 선을 넘어 주방을 나왔다. 그는 곧, 그녀가 해진 전단지를 떼고 테이프 자국을 제거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안도했다.
고독주는 태블릿 PC로 확인하던 보고서를 확인하다가 거리가 가까워진 그녀가 조금 신경 쓰여서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샌드위치 빵은 가게에서 직접 만드십니까?"
칼등으로 테이프 자국을 제거하던 영원수가 스륵 뒤돌아 1번 고객을 보며 말했다.
"본사에서 오는 냉동 빵입니다."
"그렇군요.."
그의 대답에서 아쉬움을 느꼈지만 영원수는 다시 작업을 하기 위해 커터 칼을 세우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곧 그의 표정이 영 찜찜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게 왜 궁금하신가요?"
"이곳 빵이 소화가 잘 됩니다. 따로 구매할 수 있을까 해서 물어봤습니다. 냉동 빵이라면 구매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찜찜함이 해결되었는지 영원수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 다시 칼을 들었다. 고독주는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커터 칼이 벽면을 스치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영원수가 전단지를 새로 붙이기 위해 팔을 벌릴 때 고독주가 다시 말을 걸었다.
"여기 샌드위치가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매일 먹었던 것인데.."
고독주는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커피 잔에 입을 대며 말을 아꼈다. 소화가 잘 됐던 까닭은 다른 데 있었던 것 같다. 영원수는 그의 말을 듣고 뒤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까만 눈동자와 잿빛 눈동자가 부딪혔다. 영원수에게 그는 매일 아침 매출을 책임지는 소중한 단골이었다. 루꼴라 향을 좋아하는 그녀는 샌드위치 메뉴가 들어오면 기뻤다. 하지만 그에게 더 이상 이 카페가, 저 샌드위치가 필요하지 않은 걸까.
"그럼 이제 안 드실 건가요?"
고독주가 영원수의 눈동자를 보고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영원수는 그의 미소를 보고, 그가 이 카페를 계속 다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혼자 밥 먹는 시간이 귀해서 계속 올 생각입니다."
기뻐해야 할 말이었지만, 영원수는 오히려 그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영원수의 이런 마음은 얼굴에 드러나지 않았다. 고독주는 그녀를 잠시 보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씁쓸해하며 입을 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가족들이 많아서요."
아무 표정 없이 커피 잔을 내려놓는 고독주를 보며 영원수는 다시 등을 돌렸다. 그리고 테이프를 커터 칼로 뚝뚝 떼어내며 말했다.
"가족끼리 하는 식사는 원래 불편한 거예요."
식탁은 영원수에게 크고 작은 갈등이 일어나는 자리였다. 밥상 앞에 억지로 앉아야 했던 기억이 많았다. 딱히 영원수의 집만 그러한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함께 식사하며 관계를 느끼지만, 동시에 관계가 쉽게 깨지는 곳도 식사 자리다. 식탁은 식당만큼 분주한 곳이다. 그러니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고독주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영원수의 말은 고독주에게 조금 충격이었다. 그는 가족끼리 식사는 당연하고 옳은 것, 화목을 위한 일이라 배워왔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이어온 그 자리가 애초에 불편한 것이라면 가족의 화목이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걸까? 고독주는 정말 궁금해서 그녀에게 질문했다. 가족 식사는 단란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영원수는 전단지를 마저 붙이며 말했다.
"모두 다른 인간인데 단란할 리가 있나요."
***
고소각 곳곳에 심긴 나무는 마지막 잎을 떨어뜨리며 겨울을 준비했다. 고소각 관리인들 사이에서 동궁전이라 불리는 고독주의 집. 샤워를 마친 고독주가 가운을 두르고 나온다. 창밖으로 나가자 늦가을의 냉랭한 공기에 그의 피부가 오돌토돌 곤두세워진다. 생생한 감각을 전신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이 짧은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투명한 공기와 맑은 하늘을 보며, 고독주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다.
지영은 오늘도 일찍 집을 나서는 아들을 지켜보며 말했다.
"요즘 아침을 자주 거르는구나."
"일찍 출근하니 업무 효율이 높아져서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아침 같이 먹는 거 중요하게 생각하시잖니."
지영은 시아버지 고소득이 손자를 쉽게 버리지 않으리라 믿었지만, 아직 후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들의 입지가 흔들릴까 걱정했다. 법적으로 확실하게 후계가 정리되지 않는 이상, 아들의 자리를 노리는 하이에나들이 많아 불안했다. 지영의 뒤로 고사한이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성과가 좋으니 일할 맛나겠지."
지영은 남편을 흘겨보았다. 문 밖에서 고모의 까랑까랑한 소리가 들리자, 고독주의 재킷을 여며주곤 가슴 부근을 툭툭 두들겼다. 고우나가 남편과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오늘도 안 먹고 가네."
"네. 가보겠습니다."
고독주는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김 비서도 인사를 하고 뒤 따라간다. 고우나는 지영을 지나치며 말한다.
"쟤가 저렇게 무뚝뚝해도 MZ잖아. 집안 꼰대들하고 아침마다 밥 먹고 싶겠냐고. 동문이처럼 넉살이 좋은 것도 아니고~."
지영은 대꾸하지 않고 식당으로 향했다. 고우나는 고독주가 없는 식사 시간마다 조카를 흉보고 가짜 뉴스를 퍼트리려 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
고독주가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직원마다 샌드위치 맛과 커피 맛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이었다. 월, 화, 금에 근무하는 영원수가 만든 샌드위치는 버터가 균일하게 발라져 어디를 베어 물어도 고소했다. 또 샌드위치 속에 들어가는 루꼴라의 줄기를 떼어 이파리만 사용해서 잡스런 쓴맛이 없었다. 반면 수, 목에 근무하는 단발머리 직원은 소스를 고르게 바르지 않고, 루꼴라의 줄기도 다듬지 않아서 쓴맛이 강했다. 큰 불만은 아니지만, 매일 지불하는 비용은 같은데 서비스가 다르니 고객 입장에서 아쉬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또 카페 분위기도 달랐다. 수요일과 목요일은 피클 씹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하다. 반면 영원수가 근무하는 날은 영원수가 쉴 틈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소음이 조금 생긴다. 영원수는 1번 고객의 샌드위치를 만들고 난 후에 바로 설거지를 하고, 쇼케이스와 유리문을 닦는다. 마감 조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부분을 정리하기도 한다. 조용하진 않지만, 영원수가 일하면서 내는 규칙적인 백색 소음은 고독주에게 안정감을 준다. 혼자 있지만 혼자 있지 않다는 안정감. 고독주는 카페가 주는 분위기에 영원수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친 고독주는 쟁반을 들고 픽업대로 가져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영원수가 '감사합니다.'하고 쟁반을 받으려 할 때, 고독주가 말을 걸었다.
"영원수 씨는 왜 매일 출근하지 않습니까?"
영원수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조금 당황하며 쟁반을 받았다.
"사장님이 알바생에겐 주 14시간 이상 근무를 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원수의 말에 고용주 입장을 이해한 듯, 고독주가 자색 양복바지 주머니 한쪽에 손을 꽂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영원수 씨가 만드는 샌드위치와 수, 목에 일하는 직원의 샌드위치 맛이 다릅니다. 프랜차이즈면 레시피는 동일할 텐데요."
프랜차이즈의 핵심은 어느 점포에 가든 동일한 맛,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영원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무리 바빠도 꼭 가이드대로 따랐다. 1번 고객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직 고독주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영원수는 그를 속으로 1번 고객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결국 샌드위치를 만드는 일도, 커피를 내리는 일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이 서비스를 제공받는 일이라 기계적으로 항상 동일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만드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날씨나 손님 컨디션에 따라 미각도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 부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니요. 그럼에도 차이가 큽니다. 저는 일정한 맛을 원합니다. 혹시 영원수 씨가 매일 같은 시간에 근무할 수는 없습니까?"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그럼, 매일 근무할 의향은 있습니까?"
고독주의 물음에 영원수의 눈빛이 흔들린다. 일정한 서비스를 제공받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고독주의 곧고 까만 눈동자가 영원수의 잿빛 눈동자를 응시한다. 사실 영원수는 돈이 더 필요했다. 미술 학원에 다니려면 추가 수입이 필요했지만, 사장은 더 이상 근무 시간을 늘려주지 않았다. 그건 다른 근무지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상 휴일을 없애고 아르바이트를 늘리면 체력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자신이 해결할 수도 없으면서.
망설이던 영원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고독주는 그녀의 의사를 확인하자 담담히 돌아섰다. 영원수는 그가 사라진 문을 한참 바라보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