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고독 3 "컴플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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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헵시바

며칠 후 금요일. 오전 11시가 되기 10분 전. 10분 뒤면 영원수의 퇴근시간이다. 잠시 후 사장이 오면 교대를 할 것이고, 영원수는 동호회가 열리는 장소로 가서 그림을 그릴 것이다. 사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영원수와 달리, 사장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는 창고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영원수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영원수 씨, 매일 샌드위치 사 먹는 손님 누군지 알아?"


영원수는 1번 고객이 생각났지만, 매일 샌드위치 사 먹는 손님이 그 사람뿐이라는 확신을 할 수 없었기에 무표정한 얼굴로 사장을 쳐다보았다. 사장은 영원수의 이런 반응에 익숙한 듯 한숨을 푹 쉬며, 머리를 벅벅 긁고서 난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 손님이 직원마다 샌드위치 맛이 다르다고 컴플레인을 걸었어. 영원수 씨가 근무하는 날처럼 동일하게 서비스를 제공받고 싶다네."


아마도 컴플레인을 제기한 그는 분명 1번 고객일 것이다. 사장은 그가 주초에도 컴플레인을 했고, 답변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어제저녁 다시 글을 올려 곤란하다고 말했다.


"수목 알바생한테 레시피대로 만들라고 말했다고 영원수 씨가 그 손님한테 잘 좀 말해줘."


영원수는 왜 1번 고객에게 자신이 잘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자신과 대화한 뒤 컴플레인을 했기 때문에 묘한 책임감이 들었다. 사장의 푸념을 한참 듣다가 11시가 되자 영원수는 고개를 숙이며 퇴근했다.


***


주초에 고독주는 영원수와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눈 뒤, 사무실로 올라와 카페 본사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그리고 고객의 소리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방문일자와 방문 점포를 선택하고 본문을 적어 내려갔다.


샌드위치와 커피가 맛있어서 매일 이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직원에 따라 맛이 달라 매장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월, 화, 금 오전 담당 직원이 근무할 때 만드는 샌드위치와 커피 맛이 좋고 매장이 더 청결해서 안심됩니다. 해당 직원이 매일 근무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수고하세요.


본사 슈퍼바이저가 이 글을 확인하고 사장에게 전달했다. 사장은 처음엔 칭찬이야, 뭐야 라며 의아해했다. 슈퍼바이저 역시 사장에게, 가맹 점수에 영향을 줄만한 내용 같지 않다고 안심시켰다. 사장은 고객이 기재한 메일 주소로 답장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희 매장을 자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께서 언제든지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도록

직원 교육을 더 철저하게 약속드립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고독주는 카페 사장으로부터 자신의 뜻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회신 메일을 받고서, 곧바로 김 비서를 호출했다.

김 비서는 처음에 고독주의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자신의 상사가 자신에게 왜 1층 카페 사장의 사업 마인드를 지적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 고독주는 김 비서가 이제껏 보지 못한 격앙된 모습으로 그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김 비서는 요즘 고독주가 미묘하게 활력이 돈다고 느껴졌는데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고독주가 말을 끝내자 김 비서는 바로 대안을 꺼냈다. 그의 말을 듣고 고독주는 자신이 비서를 잘 두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부장님이 사용하시는 기업 언어가 소상공인 사업 언어와는 달라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희 기업은 주로 외교적 문제도 얽혀있어서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소상공인 사업 언어는 조금 더 직설적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작성해 보겠습니다."


김 비서의 말을 들은 고독주는 속이 후련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로 돌아간 김 비서는 대학 시절 했던 아르바이트가 생각이 났다. 카페 사장에게 주휴수당 문제는 예민한 사안이었다. 주휴수당을 주지 않으려 법을 어기며 고용하는 악덕 사장도 많았다. 하지만 자신의 상사 고독주는 대기업 간부였고 그는 날 때부터 사람을 부리는 사람이었다. 아마 그는 일 잘하는 직원에게 승진을 시키고 연봉을 올려주는 일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김 비서는 카페 사장으로부터 긍정적인 회신은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2차 컴플레인을 작성했다. 그는 고독주의 부하였다. 고독주가 고민하는 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했다. 그것이 자신의 비서 철학이었다.

김 비서가 컴플레인을 건 다다음 날, 카페 사장으로부터 회신이 왔다.


이미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따라

인력이 계약되어 있어

요구를 들어드리기 어렵습니다.

저희 매장에 관심을 가져 주셨음에도

긍정적인 답을 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고독주는 2차 회신 내용을 확인하고 절망했다. 바로 김 비서를 호출해 메일을 보여 주었다. 점주는 단골 고객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며 확실하게 잘 거절했다. 김 비서가 상사의 표정을 살폈보았다. 고독주도 사업가이니, 점주의 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김 비서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의 절망감은 커 보였다. 몇 해 전 추진 중이던 프로젝트를 자연재해로 실패했을 때보다 더한 절망이었다. 김 비서는 가슴이 졸이며 상사를 위로했다.


"... 괜찮으세요?"


고독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로 두 팔을 걸치며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 고소득이 불 같이 화를 내도, 고모 고우나와 아들 동문이 들이닥쳐서 시비를 걸어도, 아버지 고사한이 회사 일에 계속 로스만 되는 일을 해도 한숨 한 번 쉬지 않던 고독주가 기어코 한숨을 쉬고야 말았다.

김 비서는 고독주의 한숨을 듣고서 이 일에 대한 패러다임을 아예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이 일은 단순히 상사의 사생활이 아니다. 식품 대기업 '고'의 사업 방향을 정하는 전략기획본부의 장(長)의 원활한 업무능력향상을 위한 일인 것이다. 김 비서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본부장의 한숨을 끊어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본부장뉘이이임!!"


목소리가 갈라지며 자신을 부르는 김 비서의 외침에 고독주가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 김 비서를 봤다. 김 비서가 눈을 부릅뜨며 입을 열기 시작했고, 비서의 말을 들은 고독주의 동공은 점점 커져갔다.


***


'고' 빌딩에는 '고' 본사와 계열사 외에 여러 회사가 입주해 있었다. 특히 저층에는 쇼핑 매장이 들어서 있었는데, 건물 내 입주 관련 사업은 모두 본사 운영팀이 맡고 있었다. 김 비서는 운영팀에게 영원수가 근무하는 카페 입주 계약서를 받아 살펴보았다. 카페는 건물에 들어온 지 올해로 4년 째였고, 다섯 달 후 재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지난 계약서를 보니, 본사는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 선에서 보증금와 월세를 최대치로 올려 계약했던 것으로 보였다. 아마 이번 재계약에도 그럴 계획이었을 것이다. 4년 사이 본사 건물 주변으로 핫플레이스가 많이 생기면서 지자체에서 관광특구로 지정하기도 했다. 회운구의 땅값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앞으로 매장 매출도 늘어날 테니, 점주 역시 이곳에서 계속 장사를 하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건물주의 재계약 조건을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가였다. 이것은 아주 예민한 문제였다. 고용 비리가 될 수도 있었다. 머리를 잘 써야 했다. 생각을 정리한 김 비서는 <본부장 업무 효율 향상 전략 기획안>을 밤 사이 작성했다. 고독주는 김 비서를 이 기획안을 보고서 그를 칭찬했다.


김 비서는 새 계약서를 들고 운영팀장과 함께 점주를 찾아갔다. 남자 셋이 카페 구석 4인용 테이블에 오밀조밀 모여 서류를 펼쳐놓고 있었다. 사장이 꼼꼼히 서류를 살피는 동안, 김 비서는 그의 앞에서 카페를 칭찬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사장은 처음 재계약 약속을 잡았을 때 솔직히 겁부터 났었다. 보증금과 월세를 또 최대치로 받아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계약까지 아직 몇 달이 남았는데, 이렇게 일찍 부르니 더 수상했다. 그런데 서류를 살펴보면서 사장은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애써 참아야 했다. 앞으로 매출이 늘어날 것이 분명한데, 무려 보증금 동결을 제시한 것이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했지만, 입 근육이 움찔거리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그런데 이분은...?"


사장이 김 비서를 처음 본 듯 궁금해하자, 김 비서가 명함을 깜빡했다고 둘러대며 운영팀 계약 담당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사장은 애초부터 그의 직함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는 듯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본사 직원들 만족도도 높으니 보증금 동결로 재계약을 진행할까 합니다."


사장은 김 비서의 입에서 ‘보증금 동결’이라는 말을 듣자 그만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여졌다. 김 비서는 카페 사장이 기뻐하는 걸 눈치채고, 계약서에는 적혀있지 않는 조건을 제시하고자 조금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저.., 매장에 이용할 때 말이죠. 알바생마다 커피 맛이랑 서비스가 다르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김 비서의 말에 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근 들어 자주 듣던 불만이었다. 사장은 그의 말에 초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김 비서가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이 계약의 실제 조건, 즉 이면 조건을 말했다.


"저희 본부장님도 여기 자주 오시거든요. 샌드위치랑 커피를 특히 좋아하시고요."


김비서의 말을 들은 점주는 재계약 서류와 김 비서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마침내 이해했다는 듯 악수를 청했다.


***


목요일 새벽.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영원수는 발끝으로 바닥을 토톡, 톡, 토옥 하고 리듬감 있게 두드렸다.

영원수와 카페 사장은 지난주에 고용 계약서를 다시 작성했다. 영원수가 주휴수당 부분을 읽고 있을 때 사장이 컴플레인을 건 '그 단골'이 '고'의 무슨무슨 본부장이라고 말했다. 사장은 높은 사람이 영원수를 좋게 봤다고 격려했다. 사장은 미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영원수는 높은 사람이 좋게 보는 것이 도대체 왜 격려할 일인지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누군가 자신을 좋게 본 것은 기뻐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버스에서 내린 영원수는 '고 본사'라는 정류장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숨을 들이켰다. 가을 내내 미세먼지로 공기가 안 좋았는데 어젯밤 비가 와서인지 공기가 맑았다. 덕분에 심신이 조금 가벼웠다.

카페 정문 앞에는 물류 기사님이 놓고 간 재고가 있었다. 영원수는 등록된 지문으로 카페 문을 열고 재고를 안으로 들였다. 블라인드를 활짝 걷어 카페를 환히 밝혔다. 새벽 6시 반. 새벽의 검푸른 빛이 아직 남아있는 아침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직장인과 미화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영원수는 우유와 채소들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오픈 준비를 한다.

딸랑. 문이 열리며 종소리가 울렸다. 뒤돌아 보지 않아도 영원수는 첫 손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계산대로 다가오는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 영원수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맞이한다.


"닭가슴살 리코타치즈 샌드위치하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주십시오. 고소한 맛으로요."


주문을 끝내고 고독주는 늘 앉는, 픽업대 앞자리에 앉았다. 평소대로 서류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내 보려 했지만, 픽업대의 새 전단지가 그의 눈길을 끌었다. 겨울 이벤트 내용이 적힌 전단지였다.


겨울에 굶지 말고 든든하게 다니자!


저 카피가 관리자의 컨펌을 받았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지만 고독주의 관심은 그게 아니었다.


샌드위치 구매 시

귀여운 샌드위치 키링을 2,900원에 구매할 수 있어요!


영원수는 바게트를 반으로 잘라 오븐에 넣고 기다리는 동안 냉장고에서 샌드위치 재료들을 꺼냈다. 푸릇푸릇한 루꼴라는 수분을 머금어 싱싱했다. 루꼴라의 하얀 줄기 끝을 잘라내고, 과즙이 풍부하면서도 단단한 토마토를 한 손에 쥐며 채칼에 썰었다. 재료를 손질하는 영원수의 손끝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띠띠띠- 하고 타이머가 울리자, 영원수는 오븐에서 바삭하게 구워진 바게트를 꺼냈다. 단면 안쪽에 크리미한 버터를 스윽 바른다. 그 위에 톡 쏘는 알싸함과 쌉싸름함이 있는 루꼴라와 리코타치즈에 버무린 닭가슴살을 올리고, 다른 빵에는 아삭하고 달콤한 오이 피클과 토마토를 얹었다. 에스프레소를 내린 뒤, 샌드위치와 커피를 트레이에 담아 픽업대로 향한다.

고독주는 영원수의 발걸음이 익숙한 듯 고개를 들어 자리에서 일어난다. 트레이를 건네받으며 전단지를 가리키며 묻는다.


"키링 아직 남아 있습니까?"


영원수는 고독주를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픽업대 아래에 넣어둔 키링 한 움큼을 꺼내 보였다. 그동안 이벤트 상품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영원수에게 키링 질문을 한 손님도 고독주가 처음이었다. 영원수는 고독주가 미소 짓는 걸 보며 구매할 건지 물었다. 고독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은 계산대로 향했다.

영원수가 계산을 마치고 고독주에게 샌드위치 키링을 건네자, 고독주가 큰 손바닥을 폈다. 키링과 함께 영원수의 손끝이 고독주의 손바닥에 닿았다. 영원수는 그의 손바닥이 생각보다 말랑해서 조금 놀랐다.

영원수는 몸을 돌려 샌드위치 재료를 냉장고에 넣었고, 고독주는 샌드위치 키링을 재킷 앞주머니에 넣고 자리로 돌아가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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