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버전
"여, 사촌~"
자신과 동갑인 사촌형제, 우동문이었다. 외모와 성격 모두 고모와 똑 닮은 동문은 어릴 때부터 고독주가 하는 행동을 따라 했다. 그가 백과사전을 읽고 있으면 자신도 똑같이 백과사전을 읽었고, 고독주가 테니스를 하면 똑같이 테니스를 시작했다. 다만 고독주와 달리 뭐 하나 제대로 끝을 낸 적은 없었다. 자신은 규율대로 사는 게 편했지만 동문은 매우 자유로운 타입이었다. 동문도 고독주를 따라 하다 현실을 깨달았는지, 진로를 정하는 시기가 되어서 자신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지영은 남편과 아들 앞에서 동문이 드디어 자기 위치를 알았다며 조소했다. 하지만 그는 사촌이 매우 현실적이고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논리적이고, 기획적인 연구를 좋아했다. 그러나 동문은 누가 봐도 예체능에 재능이 있었다.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지 않고도 스스로 세련되게 옷을 입을 줄 알았고, 고가의 작품을 보는 안목도 자신보다 뛰어났다. 그가 디자인 대학을 간다기에 -대학에 후원금을 잔뜩 주긴 했지만- 고독주는 그가 자신에게 잘 맞는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동문은 자신의 졸업 전시회에 참석한 고독주에게 전시회를 안내하며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말했다. 자신은 디자인 실무보다 제품에 맞는 디자인을 컨펌하고 제품을 연출하고 홍보하는 쪽이 잘 맞는 것 같다고. 고독주는 그 말을 들으며 그가 할아버지에게 혼날 때 과장되게 엄살을 피운 걸 떠올렸다. 그리곤 그가 쇼 연출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독주가 기획팀으로 들어왔을 때 동문은 마케팅 팀 소속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엄연히 마케팅 1팀 팀장이 되었다.
동문은 생글생글 웃으며 고독주의 등을 퉁 쳤다. 고독주는 안 반갑냐고 묻는 자신의 사촌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이 녀석은 자기가 저지른 일은 생각을 못하는 건가. 고독주는 동문이 주문을 하는 것을 지켜보며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유일하게 평온한 시간을 방해받는 것은 확정이었다. 동문은 영원수에게 고독주와 같은 메뉴로 달라며 카드와 텀블러를 건넸다. 그는 영원수와 처음 만났음에도 넉살 좋게 커피는 아아로 부탁해요 라고 말했다. 그는 무표정한 영원수를 보며 잠깐 의아해했지만 지금 그에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동문은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사촌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는 고독주보다 살짝 작은 키였기에 어정쩡한 자세로 테이블까지 걸어갔다. 늘 앉던 자리가 아닌 자리에 앉게 된 고독주는 그의 제멋대로 행동에 익숙한 덤덤한 표정이었다. 사촌은 스캔들 대상이 자신에게 어떻게 접근했는지 또 어떤 협박을 했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동문은 여자를 욕하며 고독주의 공감을 끌어내려했지만 고독주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고독주는 동문이 부디 이 공간에 영원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캔들 대상을 꽃뱀이라 욕하며 모든 여성들을 혐오하는 발언만큼은 자제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동문은 마치 영원수가 없는 것처럼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고독주는 제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당분간 너 따라서 일찍 나오려고. 할아버지 피할 명분도 되고."
민망해서 영원수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샌드위치를 받아 든 고독주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경악할 만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입맛이 싹 가셨다. 뭐?라고 반문한 독주는 사촌 앞에서 그만 인상을 찌푸렸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던 사촌이 자신을 향해 인상을 쓰자 동문이 조금 놀라며 서운함을 내비쳤다.
"나랑 같이 출근하는 거 싫어?"
그래, 너무 싫다. 세상에 사람을 앞에 두고 그렇게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독주는 애써 속내를 감추며 그의 이른 출근을 저지하려 입을 열었다.
"피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야."
"할아버지 화낼 때 겁~나 무섭거든? 회사에서 잘릴지도 몰라. 넌 칭찬만 받았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동문은 할아버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고독주가 알리 없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의젓했던 고독주는 할아버지가 후계자로 일찍이 점찍었고, 할아버지의 바람대로 공부, 운동, 인간관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간이 되었다. 동문은 사촌에게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너무 큰 격차에 누구보다 빨리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했다. 동문이 고독주에 대한 평가는 10대 후반에 이뤄졌다. 그는 반드시 사회적으로 성공할 것이고 '고'를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만들 것이다. 그래서 동문은 고독주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고독주를 향한 동문의 안목은 정확했다. 사촌은 할아버지의 바람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어머니 고우나의 바람과 사촌의 후계자 입지는 점점 견고해져 갔다. 자신은 고독주가 회사를 키우면 그 회사에 다니며 적당한 성취를 이루며 재밌게 사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야망 없는 남자를 아주 싫어했다. 그래서 동문은 할아버지와 마주치는 게 싫었다. 고독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차라리 화를 내는 할아버지보다 나았다. 할아버지가 화를 낼 때마다 동문은 자존감이 깎였다. 뭘 해도 할아버지처럼, 고독주처럼 성공해 낼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을 들춰내는 것 같았서.
동문의 생각과 달리, 고독주는 사촌이 왜 할아버지를 겁내는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고독주가 혼이 나지 않은 건 할아버지가 고독주를 예뻐해서가 아니라 그가 집안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고독주는 할아버지의 맘에 들려는 집안사람들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눈밖에 날까 두려워했다. 자신은 할아버지가 무섭진 않았지만, 다른 가족들의 불안을 보면 그도 덩달아 불안해졌다. 고독주는 동문처럼 한 번도 자유롭게 지내본 적이 없었다. 태어나기를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태어나기도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 단단히 훈련받기도 했다. 친척들 앞에서 절대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고. 지영은 아들의 단점이나 약점이 발견되기를 바라는 하이에나에게 먹잇감을 던져주지 말라고 가르쳤다. 지영의 가르침은 아들의 기질과 잘 맞아떨어져서 그녀가 바란대로 고독주는 자라주었다. 그의 감정 조절 능력은 사업가로서는 큰 이점이었고 또 어머니의 가르침이 잘못된 양육방식이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가끔 고모나 동문을 볼 때면 그들의 자유분방함이 부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고독주는 사촌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유일하게 주어지는 자신의 자유 시간을 방해한 동문에게 심술이 났다. 그는 자신보다 훨씬 자유롭게 살고 있는데 이 시간마저 빼앗겨야 한단 말인가?
동문은 샌드위치 하나를 40분째 먹고 있었다. 한 입 먹고, 한 모금 마시고,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아침 식사 시간에 동문을 오지 못하게 하는 기획은 사무실 가서 생각하자. 여기서 생각하다간 그를 불편해하는 기색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고독주는 시계를 스윽 확인하고 일을 하러 가야 한다면서 일어섰다. 동문도 당황하며 샌드위치의 남은 부분을 입 속으로 욱여넣었다. 고독주는 쟁반을 영원수에게 갔다 주며 간단히 목례했다. 영원수도 사촌으로 곤혹스러워하는, 평소보다 더 피곤한 것 같은 고독주를 보며 말없이 인사했다. 자신의 탓은 아니었지만 그에게 좋은 아침 식사 시간이 되지 못한 것 같아 괜히 아쉬움이 들었다. 뒤이어 동문이 쟁반을 들고 왔다. 무표정한 얼굴로 쟁반을 받아 든 영원수가 동문에게 인사를 하자 동문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좀 웃으면서 일해요~"
동문의 느닷없는 조언에 영원수는 동공이 흔들렸고, 이를 지켜보던 고독주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영원수와 사촌 둘을 번갈아 봤다. 동문은 양쪽 손으로 입을 씨익 당기며 말했다.
"이렇게 웃으면 친절하고 좋잖아~. 너무 무표정이라고."
동문의 말에는 악의가 없었다. 그냥 아쉬우니까 개선됐으면 좋겠다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직원에게 조언한 것뿐이었다. 고독주는 사촌을 보며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숙였다. 영원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불편하셨나요?"
동문이 곰곰이 생각했다.
"아니?"
그의 대답을 들은 영원수는 동문의 연갈색 눈동자를 응시하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고객님, 조언은 감사드리지만 카페는 음식을 주문받고 제공하는 곳입니다. 제가 불친절해서 고객님께서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려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고객이 더 기분 좋기 위해서 친절을 강요하는 건 노동자에 대해 매우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갖고 계신 거라고 생각됩니다."
동문은 영원수의 말을 들으며 점점 표정이 안 좋아졌다. 급기야는 얼굴이 붉어지며 화를 냈다. 지금 매우 불편해졌거든! 고독주는 영원수에게 텀블러에 든 커피가 흔들릴 정도로 삿대질을 하는 동문의 손을 잡아끌고 카페를 나갔다. 고독주는 동문을 엘리베이터에 태워 올려 보냈다. 그리곤 한숨을 쉬며, 땅을 보며 다시 머리를 짚었다.
혼란스러웠다. 어디 가도 항상 분위기를 좋게 하려는 동문의 마음이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동문에게 악의가 없었다고 해도 시대착오적인 발언인 영원수의 지적도 옳은 말이었다. 동문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으려 사무실에 올라가 그를 떨궈낼 생각을 하던 자신이 우스워질 만큼 그녀의 행동은 시원하기도 했다. 그녀는 늘 자신을 당황스럽게 한다.
고독주는 몸을 돌려 카페로 다시 갔다. 영원수는 접시와 컵을 설거지 중이었다. 딸랑하는 종소리에 영원수가 몸을 돌렸다. 고독주를 보고 영원수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이 커진다. 영원수는 그가 자신에게 할 말이 있어 다시 왔음을 직감하곤 설거지를 멈추고 고무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긴장된 마음으로 그가 다가오는 걸 지켜봤다. 고독주가 계산대 앞에 서서 영원수를 똑바로 보며 입을 뗐다.
"녀석이 불쾌하게 한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영원수는 고독주의 반응을 보고 안도했다. 혹시 그가 자신의 사촌처럼 말대꾸한 영원수를 불쾌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을지 내심 걱정했기 때문이다. 영원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독주가 한 손으론 턱을 괴고,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말을 이어갔다.
"영원수 씨 말대로 녀석의 발언은 시대착오적입니다."
그 말을 하던 고독주는 잠시 머뭇거렸다. 영원수는 그가 할 말이 더 남은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계속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마침내 고독주가 다시 영원수를 보며 말했다.
"그렇지만 아주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영원수는 잠시나마 머뭇거리던 고독주에게서, 자신의 내뱉을 말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음을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말하려는 걸 느꼈다. 그의 진정성 때문인지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미소를 기대하지 않기에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해 줄 거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영원수는 조금 씁쓸해하며, 고독주를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고독주는 영원수의 어색한 표정을 보며 웃을 뻔했다. 웃음을 참아내려 자신도 이상한 표정이 되어버린 것도 모른 채 두 사람은 서로를 어색하게 응시하다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먼저 입을 뗀 건 영원수였다.
"저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성격도 못되고요. 본성을 거스르면서 가짜 웃음을 짓고 싶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저는 누군가를 속이는 사람이 됩니다."
고독주도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또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적당한 미소는 유용한 도구였다. 그것이 기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비즈니스에서 웃음은 딱딱한 사업 얘기를 유연하게 만든다. 영원수가 틀리지도 않고 자신도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고독주의 방식이 사회 구성원으로 공감을 많이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웃으면서 관계를 유연하게 만드는 것뿐인데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지 않습니까?"
원수는 고독주의 눈을 보며 말한다.
"그렇게 한다고 좋은 사람이 됩니까?"
* * *
전략본부실은 해외 사업 두 개를 추진 중이고 있었기에, 직원들은 오전 내내 화상 통화로 분주했다. 미팅 한 건이 끝나면 또 다른 미팅이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들은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외국어로 말했다. 그 와중에 비즈니스 미소도 잃지 않았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 복사기의 기계음, 각종 외국어 소리가 뒤엉켜, 커다란 기계가 돌아가는 공장 같았다. 직원들은 모두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전략본부실 안 쪽에 위치한 까만 문 뒤로는 자신들의 완벽주의 상사가 자신들보다 더 몰두하며 일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긴장과 집중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직원들의 예상과는 달리 정작 본부장 고독주는 책상 위에 서류를 펼쳐두고 모니터 화면에 메일을 열어놓은 채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그의 사무실은 까만 문 밖의 사무실 소리와 단절된 것처럼 고요하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렇게 한다고 좋은 사람이 됩니까?
평생 좋은 손자, 좋은 아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온 고독주에게 영원수의 말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충격이었다. 그는 늘 절제하고, 희생했다. 그 길이 옳다고 믿었다. 숭고한 희생을 위해 태어난 숫사마귀가 자신이라고 생각할 만큼. 영원수의 말은 자신에게 의문을 던진다. 다른 사람을 위해 절제하고 감정을 억누르고 산다면 정말 좋은 사람인 걸까?
고독주는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어 오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뉴욕레스토랑협회장과 하기로 한 미팅 약속도 미루었다. 그는 이 질문의 답은 질문을 던진 자에게 묻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판단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오전 11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고독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는 김 비서를 스쳐 지나갔다. 재킷도 미처 챙기지 못한 채 엘리베이터로 곧장 갔다. 버튼을 누르는 손 끝이 초조하게 떨렸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바뀌는 층수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렸다. 5층.. 3층.. 2층.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카페로 재빨리 뛰어갔다. 그러나 카페 안쪽에는 영원수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목을 쭉 빼고 그녀를 찾아보지만 이미 다른 직원들이 주방 안쪽에서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제야 고독주는 자신의 심장이 너무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목소리가 공기 속에서 허공을 맴돌았다.
"왜 벌써 갔습니까, 영원수 씨.."
* * *
영원수는 출근한 지 1시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 한 건의 주문도 받지 않았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창밖을 봤지만 손님이 들어올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원래 지금쯤이면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올라가야 할 그 사람이 오지 않았다. 이미 유리문도 다 닦았고 해진 전단지도 다시 붙였다. 영원수는 포스기 아래쪽 수납대를 정리해야겠다며 허리를 숙였다. 그때 종소리가 울렸다. 벌떡! 허리가 자동적으로 펴진 영원수와 고독주의 눈동자가 부딪혔다. 고독주는 뛰어왔는지 숨을 고르고 있었다. 영원수는 평소대로 그가 주문할 것을 기다리며 그가 숨을 고르는 것을 지켜봤다. 그의 뺨을 붉었고 입은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서 영원수가 기다리던 내용과 다른 말이 나왔다.
"영원수 씨, 오늘 저녁에 스케줄 있으십니까?"
영원수는 고독주의 질문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이 안 돼서 한참 동안 그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질문을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다. 추측성 판단을 하지 않고 그냥 그의 질문을 텍스트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영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금요일이고 저녁에는 드로잉 동회회가 있었다. 영원수의 답에 고독주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재차 물었다.
"질문할 것이 있습니다만.."
"네. 물어보세요."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따로 식사를 대접하면서 여쭤보고 싶은데. 언제 괜찮으십니까?"
"...오늘 오후에는 시간이 됩니다."
영원수는 그렇게 말하고 고독주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그는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일하는 직장인이었다. 평일 오후에 시간이 날리 만무했다. 하지만 다른 평일 오후는 다른 아르바이트가 잡혀 있고, 휴일에는 집에서 온전히 체력을 보충해야 했다. 고독주는 반짝이는 눈으로 영원수에게 답했다.
"그럼 점심 같이 먹을까요?"
고독주의 말에 영원수가 입을 꼬옥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수의 지은 듯 만듯한 미소를 보고 고독주는 그녀를 만난 이래 가장 밝은 표정을 지었다. 영원수는 이 남자는 도대체 뭘 물으려고 이렇게 즐거워하는 걸까. 내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또 조금 겁이 나기도 했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