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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Mar 07. 2020

코로나19 속 일상 부여잡기

대단치 않은 것을 계획하고 실천하기

코로나19 전의 모습과 휴장 연장 문자를 받고 슬퍼하는 수영인 © mengju

그저께는 타임라인 여기저기서 수영인들의 곡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동네 수영장에서 휴장을 2주 더 연장한다는 문자가 온 모양이었다. 당장 다음 주부터 운영이 재개될 거란 기대는 아무도 하지 않았겠지만 막상 저런 문자를 받고 나면 힘이 쭉 빠지기 마련이다. 우리 동네 문화센터는 2월 초부터 쭉 휴관을 하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수영장을 다녀온 게 언제였더라 생각해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오리발...? 평형?!?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한 한 친구는 책상을 구입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3월 말에 이사가 예정되어 있어 퇴근 후 딱히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웹서핑을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방 한편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오래된 책상을 얼마 전에 처분한 참이었다. 가까운 미래에 이렇게 재택근무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책상 없이 집에서 일을 하려니 당연히 너무 불편했고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의 장기화 조짐이 보이자 친구는 망설임 없이 책상을 질렀다. 다행히 이사에 맞춰 인테리어 용품을 보고 있던 터라 이미 봐 둔 책상이 있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작고 심플한 새하얀 책상 사진과 함께 "도착하자마자 바로 조립해서 완성! 훨 편하다!"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화장지 대란을 돕기 위해 화장지로 사용할 수 있는 8장의 추가 페이지가 포함된 특별 에디션 © The Guardian

시드니에 사는 친구는 코로나19로 인해 호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휴지 사태를 브리핑해주었다. 상대적으로 코로나19의 여파가 덜 했던 호주에도 얼마 전 처음으로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이번 주부터 확진자가 서서히 늘어남에 따라 패닉한 시민들이 화장실 휴지를 사재기해서 동네 마트에서 휴지가 품귀현상을 빚고 있단 소식이었다. 마스크도, 그렇다고 장기 보존 가능한 음식도 아닌 휴지라니? 고개를 갸우뚱하던 차에 호주 라디오 Nova 969를 틀었더니 마침 이번 휴지 사태에 대해 진지하고도 우스운 토론을 이어가고 있었다. 진행자들은 <코로나19가 화장실과 연관성이 있는 질병이었는데 그 사실을 저만 여태 모르고 있던 건가요?> 혹은 <비상시에 필요한 품목의 일 순위는 정말 휴지일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전화연결을 시도했고 청취자들은 각자의 논리를 펼치며 왜 휴지인가를 진지하게 설명했다. 한 신문사에서는 이런 사태를 풍자하듯 화장지로 사용하라며 신문에 백지로 된 추가 페이지를 넣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휴지 대란은 명백히 현재 진행형이며 심지어 인형 뽑기 기계에도 인형 대신 휴지가 들어가 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사태가 정말 '해프닝'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코로나19가 호주에서 크게 확산되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목요일에는 무려 빵을 '픽업'하러 합정에 다녀왔다. 소규모 매장에 손님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100% 예약제로만 운영을 한다고 공지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에도 모두 어김없이 출근을 하고 끼니를 챙겨 먹고 가끔 커피를 마시고 친구를 만나며 우리는 일상을 이어간다. 하지만 사실 회사가 아니라 집으로 출근을 하고 외식 대신 배달음식을 시켜먹는다거나 카페에 머무는 시간을 가능하면 줄이고 친구도 덜 만난다. 동네 수영장은 휴장, 도서관도 휴관, 영화관에선 신작 영화의 개봉이 줄줄이 미루어지고 있다. 일상에 미세한 균열이 가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할 수 없는 것들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기 보단 갓 구운 빵을 픽업하고 건강한 재료로 만들어진 베이글과 당 충전을 위한 소금 크림빵을 구매하기로 한다. 대단하지 않은 것들을 계획하고 그것들을 실천에 옮긴다. 이럴 때일수록 일상을 잘 부여잡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핑의 '서' 근처에도 가본 적 없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커다란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의 기분도 이런 것일까 생각해본다. 바닷가에서 큰 파도가 올 때면 항상 도망치기 바빴던 나는 이 마음을 아무래도 알 수 없지만 물에 동동 떠 파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홍차를 내리고 어제 사온 스콘을 데우며 하루빨리 보통의 나날이 돌아오길 기다려 본다. 커다란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의 마음도 이렇게 간절할까. 2주 후에는 부디 좋은 소식을 알리는, 기분 좋은 문자를 받았으면 한다.




Noosa, QLD,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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