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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Jul 20. 2020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미드 <와이 우먼 킬> 리뷰

*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Story

한 대의 차량이 주차장을 미끄러지듯 들어와 연인으로 보이는 한 커플이 차에서 내립니다. 그들이 커다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눈앞에는 2층으로 향하는 나선형 계단과 널찍한 거실 시야에 들어오고 우측에는 거실만큼 시원스러운 주방이 펼쳐집니다. 계단 앞에 선 부동산 중개인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봅니다. "어때요? 마음에 드시죠?"라는 말을 차마 대놓고 하진 못 하지만 이미 그들의 자신만만한 표정에서 마음이 다 드러나죠. 집을 보러 온 커플은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와우.."라고 감탄사를 내뱉기도 하고 집에 들어온 지 5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다짜고짜 이 집을 계약하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엄청난 대출을 끼고 말이죠. 부동산 중개인은 일단 당신네 의사는 알겠다는 듯이 두 손을 들어 일시 정지 제스처를 취하곤 너무 서두르진 말란 듯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점이 있어요. 이 집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거든요."라고. 아뿔싸,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듣고도 그들은 과연 이사를 올까요?



뷰티 오브 60s

드라마 <와이 우먼 킬>은 미국의 한 저택을 배경으로 60년대, 80년대, 2010년 이렇게 시간차를 두고 세 커플이 등장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 저택은 꽤나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한편으론 너무나도 매력적인 집이라 집 보기를 마친 세 커플의 얼굴에선 걱정과 불안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들에겐 오로지 희망과 확신이 비칠 뿐이죠. '우리는 이 집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거야.'와 같은 해피 엔딩을 그리면서 말이죠.



2. Why woman kill

세 커플은 겉으로 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이는 부부입니다. 항공 우주 공학자인 능력 있는 남편(롭 Rob)과 현모양처 스타일의 베쓰 앤 Beth Ann이 등장하는 60년대. 갤러리를 운영 중인 영국인 칼 Karl과 사교계의 여왕벌 같은 시몬 Simone이 80년대를 대표한다면 변호사 아내(테일러 Taylor)와 그녀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대본 작가인 일라이 Eli가 등장하는 2020년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략적인 줄거리를 파악하게 되면 이런 물음표가 하나 생겨납니다. 왜 제목이 <와이 우먼 킬>일까? 그녀들에겐 어떤 말 못 할 속사정이 있는 걸까 라고요.


에피소드가 하나 둘 진행될수록 (제목 그대로) 왜 그녀들은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지 각각의 캐릭터들은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능력 있고 자상한 남편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부인 몰래 바람을 피웠다던가, 이 사람이야말로 내 결혼 생활에 종착점이 될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던가, 남편이 개방적인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자신의 애인과 깊은 관계에 빠져 뒤통수를 맞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세 커플이 등장하니 당연히 세 가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존재하겠지만 이 드라마의 특이점은 바로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시대에 따른 풍경과 관계의 형태, 이슈나 고민거리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부부를 위협하는 관계의 형태가 60년대에는 외도로 나타나지만 80년대는 성 정체성이 이슈로 등장하고 2020년대는 Throuple(삼자 연애)이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어릴 적 이상형으로 각각 좋은 사람, 잘생긴 사람, 민주당 지지자를 꼽았죠. 이렇게 시대상이 잘 드러나는, 각기 다른 답변을 했지만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지면 어떨까요? 이 질문에서 그녀들은 처음으로 만장일치를 이룹니다. 바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대답으로 말이죠.



3. But,

하지만 그녀들에겐 그들을 죽일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도 존재합니다. 관계의 걸림돌이 되는 한 가지를 제하고 보면 남편은 마음 한 구석에 딸아이를 묻은 채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성 정체성을 꽁꽁 숨겨온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약물에 빠져 죽기 직전의 급박한 상황까지 가기도 했으니까요. 잘못을 저지른 남편을 보며 그녀들은 어쩜 저럴 수가 있냐며 때론 분노하고 복수의 칼날을 갈기도 하지만 저렇게 남편의 연약한 모습이 떠오를 때면 측은지심이, 또 어떤 때는 미안한 마음마저 들기도 합니다. 아, 그래도 딴생각 말고 남편한테 잘해야지 같은 생각 말이죠.


순식간에 원수가 되었지만 한때는 눈이 멀어 결혼을 결심하게 만든 것도 바로 그들입니다.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이 사람은 여전히 나의 다정한 배우자이고, 훤칠한 외모와 좌중을 압도하는 입담으로 그야말로 죽이 잘 맞는 가장 좋은 친구이자 남편이며 오픈 릴레이션쉽을 이해해주고 자신의 성적 취향마저 포용해주기도 하는 서포터이기도 합니다. 100% 완벽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듯 누구나 부족함과 결함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그게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라면.. 결국 인내는 바닥을 치고 이야기는 조금 힘든 방향으로 치닫기 마련입니다.





시몬(루시 리우 분)이 내뱉는 한결같이 짓궃고 심술맞은 대사가 웃음 포인트


이렇게 드라마 <와이 우먼 킬>은 왜 그녀들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지와 그녀들이 왜 그렇게 할 수 없는지를 번갈아 보여주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에피소드 한 편을 볼 때마다 혹은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마치 화면 속의 여주인공이 된 것처럼 시청자들의 마음도 오락가락하게 됩니다. 저건 좀 아니지 싶다가도 강력한 뒤통수를 한 대 맞으면 역시 그래도 싸다며 혀를 쯧쯧 차기도 하고 가장 밉살맞고 짓궂다고 생각했던 어떤 캐릭터는 의외로 넓은 아량과 포용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이야기는 점점 절정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 드라마를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 품었던 단 한 가지의 물음표를 가슴 한편에 여전히 간직한 채 말이에요. 과연 그녀들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될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맞은편에 서 있는 건 누구일까요? 글쎄요, 아무래도 제가 드릴 수 있는 힌트는 다 드린 것 같고 이제 정답지를 펼쳐 볼지 말지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예비) 시청자들의 몫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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