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declaration vs Authentication
예전에는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모든 게 다 때가 있다고. 공부도 때가 있고, 노는 것도 때가 있고, 심지어 결혼도 때가 있다고. 근데 그 '때'를 바라보는 관점도 경우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하기 싫은 걸 해야 될 때는 늦게 해서 문제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재밌는 걸 할 때는 빨리 해서 문제다. 살다 보면 이 '때'들에 대한 숫자를 구체적으로 마주할 때가 있다. 보통은 이런 숫자들이 그저 '권장(이라 읽고 잔소리라 해석한다)'일뿐이다. 하나 아닌 경우도 있다. 특히 재미있는 걸 할 때가 그렇다. 술을 마실 때가 그렇고, 뭔가 시원한(?) 영화를 보려면 특정한 나이를 넘어야 한다. 청소년들의 놀이터인 PC방은 저녁 10시까지만 출입이 허용된다. 친구들과 PC방에서 함께 즐기는 롤(LoL)과 배그, 오버워치는 아쉽지만 10시 전에 끄고 바이바이 해야 한다.
그렇다. 뭉뚱그려 얘기하면, 이런저런 콘텐트를 즐기려면 그 나이가 돼야 한다. 그러니 이런저런 놀이 앞에서 "몇 살이에요?"라는 질문을 받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특히 법에서 콘텐트별로 일정한 등급을 정하고 있는 경우엔 나이 확인은 필수다. 오프라인에서의 나이 확인은 단순하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앳된 모습의 젊은 친구들이 술을 사려면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면 된다. 물론 자기 거라는 가정하에서지만, 사진 속 얼굴과 실물을 확인하고 생년월일만 확인하면 끝이다. 근데 온라인은 어떨까? 당신이 누구인지를 모르지만 나이는 확인해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당신의 얘기를 믿던지 혹은 국가가 지정한 수단을 통한 인증을 믿던지.
온라인은 우리 일상이다. 그래서 우린 이 인증에 너무 익숙하다. 뭔가 하려면 핸드폰을 꺼내 '본인인증'을 한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다. 신용카드 혹은 아무도 쓰지 않는(?) 아이핀을 통한 본인인증이). 즉, 우리는 국가가 법('정보통신망법')에서 지정한 수단을 통한 인증만 인정한다. 그런데 눈을 다른 나라로 살짝 돌리면 중국 정도를 제외하곤 다른 방법으로 이뤄지는 곳이 상당수다. 즉, 당신이 몇 살이라고 입력한 그 나이를 믿고 들여보내준다.
한쪽에서는 인증(Age-verification thru authentication)을 통해 또 다른 쪽에서는 스스로 입력(Age gating by self-declaration) 한 것을 바탕으로 이뤄지니 이 둘의 간격이 엄청 커 보인다. 왠지 Trust-based가 부럽기는 하지만 구멍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속이고 들어가면 그뿐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시스템은 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책임은 오롯이 본인 몫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견고해 보인다. 견고한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건당 인증 비용이 든다. 이 비용은 이용자가 아닌 제공자가 부담한다. 한데 여기에도 사실 큰 구멍이 있다. 그 핸드폰이 내 것이 아닌 부모님 명의라면 이 역시 무사통과다.
올 초에 다른 나라의 정부기관 분들과 회의를 한 적이 있다. 그분들은 온라인게임, 그중에서도 모바일을 주요 타깃으로 적절한 기준을 만들기 위해 여러 나라의 사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중 우리나라의 등급분류 기준과 실제 적용이 어떻게 돼 있는지 그리고 나이 인증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우리나라는 상당히 강력한 나이인증 체계를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PC온라인 계정을 만들 때는 게임을 제공하는 개발사(혹은 퍼블리셔)가 핸드폰 인증을 통해 확인하고, 모바일게임의 경우 청소년이용불가에 접근할 때는 플랫폼(i.e. 애플 앱 스토어 혹은 구글 플레이)에서 핸드폰 인증을 통해 확인한다고.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상대 쪽에서 갑자기 툭 이런 질문을 던져왔다.
"근데 그 핸드폰이 자기 거라는 건 어떻게 확인해요? 부모님 거일 수도 일수도 있잖아요? 돈을 벌지 않는 학생들에게 부모님이 사주는 게 일반적이고 명의를 부모님으로 할 수도 있는 거니깐"
많은 사회적 비용을 들여 유지 및 적용을 하고 있는 이 핸드폰 인증이란 것도 어쩌면 형태를 달리 한 trust-based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둘의 차이가 어쩌면 그저 처음부터 믿는 거냐 아니면 중간부터 믿는 거냐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