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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게임을 좋아할까

로블록스, 친구들이 모이는 곳

by 이싸라

요즘 딸이 한창 하는 게임은 ‘로블록스’입니다. 집에 언니가 있는 경우 좀 더 이른 나이에 시작한 친구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4-5학년 때가 한창입니다. 로블록스 중에서도 타워 종류의 게임인데요. 혹시 이런 이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잼못타 (잼민이는 못 깨는 타워), 급못타 (급식은 못 깨는 타워). 더 있습니다. 빡종타, 사요나라타워, 음료수 스테이지타워 등등.


게임은 정말 단순합니다. 블록으로 쌓인 여러 타워 맵이 있습니다. 앞의 이름은 그런 맵의 종류고요. 들어가면 모두가 타워를 오르고 있습니다. 어떤 맵은 떨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어떤 맵은 스테이지별로 나눠져 떨어지더라도 마지막까지 올랐던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이 맵 하다가 떨어져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고 다른 맵에 접속합니다. 그냥 이 맵 저 맵 왔다 갔다 하는 거죠.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와 저는 이런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로블록스 같은 게임은 더욱 이해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잼못타니 빡종타니 타워게임 이름만 들어보더라도 뭔가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아내는 딸이 하는 게임 플레이를 보며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입니다. 큐브로 만든 듯한 투박한 그래픽, 각종 미니게임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인터페이스, 심지어는 게임 속 게임이라는 개념까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는 낯선 세계입니다. 아내에게는 그냥 정신없는 게임으로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엄마가 싫어하기에 딸의 플레이는 조용합니다.


"너, 또 뭐 하고 있어? 로블록스 하지?" 아내는 여전히 로블록스를 하고 있는 딸이 못마땅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이렇게 말하면 딸은 곧바로 방어모드로 몸을 웅크릴 뿐입니다. 입으로는 아무 얘기를 하지 않지만 몸으로 이미 모든 걸 다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위 친한 친구들도, 같이 놀러 가는 친구네 가족의 언니도, 모두모두 즐겁게 즐기고 있는 이 로블록스를 자기만 집에서 맘 놓고 즐길 수 없습니다.


사실 저도 로블록스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습니다. 업무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접속하고 자료를 모을 때만 가끔씩 들어갔을 뿐이었습니다. 계정을 만들고 게임에 접속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법적요건은 잘 갖췄는지 혹은 인앱결제를 할 때 부모 동의는 받고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로블록스 이름만 아는 거지 실제로는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였죠. 어느 날 제 옆에서 조용히 로블록스를 하고 있던 딸을 보며 전 궁금했습니다. 그 수많은 로블록스 게임 중 딸은 어떤 걸 하고 있는지 또 왜 재밌는지에 대해 말이죠.


하루는 딸에게 물었습니다. “딸, 뭐 하고 있어?” 이때 조심해야 되는 게 있죠. 뭔가 부정적인 뉘앙스로 얘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정말 궁금해서 묻고 있다는 느낌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딸, 이거 맵 이름이 뭐야? 이거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래?” 이 한마디에 딸은 신나서 설명을 이어갑니다. 저도 시험 삼아 몇 번 해봤습니다. 처음에는 캐릭터 조작도 버겁고, 점프도 제대로 못 해서 계속 떨어지고 캐릭터가 죽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그런데 제 딸은 한 번도 짜증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웃으며 말했죠. "아빠, 점프는 타이밍이야! 내가 먼저 해볼 테니까 따라와 봐." 조금씩 익숙해지고, 한 단계씩 클리어할 때마다 딸은 하이파이브를 청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가 관심을 가질 때 누가 싫어할까요


전 궁금한 걸 계속 물었습니다. 그리고 딸은 애정을 담아서 설명했습니다. 이 맵과 저 맵의 차이점에 대해. 그리고 자기는 한 번 떨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그 맵을 왜 싫어하는지에 대해 쫑알쫑알 귀엽게도 설명했습니다. 전 궁금한 걸 묻고 딸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가볍게 참여했을 뿐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딸은 주어진 시간 동안 화면만 쳐다보고 조용히 했을 텐데 그날만은 달랐습니다. 그날 딸의 플레이는 시끌벅적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도, 게임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겠다고 말이죠. 그것이 자녀가 사용하는 언어라면, 부모로서 최소한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종종 ‘가치 있는 시간’이란 말을 합니다. 독서나 공부, 운동 같은 활동을 떠올리죠. 하지만 로블록스를 하며 함께 웃고, 부딪히고, 도와주고, 심지어 좌절을 함께 겪는 이 시간도 분명 가치 있습니다. 이건 단지 게임이 아니라, 아이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자 감정을 표현하는 창구이며, 부모인 제가 그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초대장이었습니다.


물론 로블록스를 매일 같이 하자는 건 아닙니다. 저도 여전히 게임을 오래 하면 피곤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딸과 함께한 그 30분의 로블록스 플레이가 우리 사이에 어떤 다리를 놓았는지를요. 그래서 말하고 싶습니다. 게임을 싫어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몰라서 멀어지지 않게" 한 번쯤은 시도해 보세요. 그렇게 관계는 시작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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